조회 : 1,028

[제7회]


BY 마음 2001-11-20

아침 출근길에 그녀는 내게 더 없이 다정했다.
저녁에 보자며 살짝이 팔장까지 끼웠다 빼곤 제 근무지로 가버렸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웃는 얼굴에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매캐한 연기가 내 숨통을 죄이는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나는 안절부절 했다.
도무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미 엎질려진 물이 되어 버린 어젯밤의 일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 종일 마음을 졸이다가 내 직속 상관이었던 강주사에게 먼저 말을 내 놓았다.
“다 큰 성인이 한방에서 지내는 게 불편한 점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 성격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더 사이가 나빠지기 전에 따로 기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왜? 싸웠어요? ”
“아니, 싸우기 전에 미리 대책을 마련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마침 옆방도 비워 있고 하니까...”
“혼자 자는 거 무서울텐데...”
강주사는 장난치는 걸 무척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 속엔 벌써 호기심으로 잔뜩 채워져 있었다.
“살아보다가 정 힘들면 바깥에다 자취방을 알아봐야죠. 뭐!”
“계장님한테 말씀은 드리는데...글쎄, 영 개운찮네...”
그의 표정이 조금 전 보다는 많이 굳어져 있었다.
내 말이 단호하게 듣겼던 모양이다.

상관의 지시도 떨어지기 전에 나는 서둘려 짐들을 옆방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미스리에게 먼저 말을 했었어야 했지만 그게 순리이지만 난 그러지를 못했다.
짐이래야 벽장속에 들어 있던 침구며. 옷장도 따로 없어 미스리 자취할 때 썼다던 비키니 옷장에다 함께 넣어 둔 내 옷가지, 몇 권의 책, 내 커피 폿트, 대충 그게 전부였다.
나는 말대신에 먼저 그녀에게 내 변화를 먼저 보여 주고 싶어 했다.
굳이 그녀가 퇴근하기도 전에 그 짐들을 옆방으로 옮겨 놓은 것도 그녀에게 더 강한 충격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곤 그녀보다 먼저 퇴근해서 들키기라도 할까 조바심까지 내면서 서둘려 숙소를 빠져 나왔다.
‘시장부터 가서 다시 살림도구를 챙기고 무엇보다도 서점에 들려서 신간책도 좀 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이참에 그녀를 완전히 내게서 떼어 놓는거야.
내가 왜 그런 질 낮은 여자를 상대해서 똑 같아져야 되는 거지.
그런 류의 여자와 내가 어떻게 같아질 수 있단 말인가.
그래. 모양새가 우스워져 버렸지만 저도 다른 말은 못 할 꺼야.’
내 발걸음에 다시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는 사람이 하고 있는 수입품 전문매장에 잠깐 들렸다.
시간을 떼울 생각으로 찾아간 것이 뜻밖에 한 아가씨를 만났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녀를 만난게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토요일에 청년회에서 신입회원들을 위한 환영회가 있었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인데다가, 간만에 가져보는 자리여서 그런지 약간은 상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언발란스로 자른 머리가 매우 특이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쪽은 완전히 귀 뒤로 단정하게 고정시키고 다른 한쪽 머리는 길게 한쪽 눈이 거의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더 클듯 말듯한 중간키였고 목소리 또한 허스키해서 한번 들으면 그녀의 목소리를 분명히 기억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분명 그녀의 모습은 눈에 띄었다.
미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강한 개성이 사뭇 진지했고 신선하게 내게 보여줬었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는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큰 소리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중간에서 우리의 이름을 서로에게 말해 준 사람은 가게 주인이었다.
“이쪽은 박 미희, 이쪽은 장윤미, 나이가 아마 비슷할 걸...”
가게안쪽으로 커텐을 치고 다리라고 좀 뻗고 쉴 수 있도록 장판을 깔고 해서 만든 방이 하나 있었는데 손님이 없을 땐 흔히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었다.
주인의 넉넉한 인심 때문인지 수시로 들락거리는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녀는 자칭 페미니스트요, 그래서 결혼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성격 좋은 노처녀였다.
처음에 이 가게에 들렸을 때에는 이 주인이 내가 나가는 교회 교인이라는 걸 모르고 단지 커피를 사기 위해 들렸었다.
그 때 그녀가 단번에 날 알아봤고 날 보자마자 차 대접부터 했다.
왠지 타지에서 와서 자취 한다고 하면 마음이 더 간다는 그녀는 커피 생각이 나면 내가 진짜 오리지날 커피로 대접을 하겠노라고, 그러니 부담 같은 것 갖지 말고 지나가는 길에 들리라고, 그렇게 말해준 그 연으로 옥수수식빵까지 사 가지고 다시 찾아온 것이다.
“지난번에 듣긴 들어 놓고도... 미술학원에 다니신다면...”
“예...미술 전공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수줍음이 조금 섞여 있었다.
“나는 보건소에 나가고 있어요.”
“그러면 간호사?”
“아뇨, 행정쪽이예요.”
“아...예에...”
그녀는 보기하고 다르게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많이 웃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참하게 생겼어요.”
나보고 하는 소리였다.
참하다는 표현이 제일 적합한 표현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나 보고 이쁘다는 표현 보다는 곱게 생겼네. 참하게 생겼네 여자답게 생겼네 영락없는 여자네 했다.
나 역시도 그녀에게 매력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며 찬사에 가까운 말로 대응해 주었다.
그것은 그저 해본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