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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인연 2001-08-26

제2부 이별을 위한 외출

정태 남동생인 정인은 거실에 있는 열대어 수족관을 바라보다 흐려진 물에 답답함을 느꼈다.
수족관에 물은 2~3개월만에 한번씩 갈아주어야 하는데 물을 벌써 갈아 줄 때가 된 것이다.
수족관에 물을 한번 갈아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귀찮은 일임에도 정인은 자신의 일로 생각하며 누구에게 부탁 한번 하지 않고 때가
되면 스스로 물을 갈아주었다.
정인은 서둘러 저녁을 먹고 나서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수족관에 물을 갈 준비를 하였다.
먼저 뜰 채로 열대어를 건져내 다른 그릇에 물을 부어 옮겨 담고 모래와 자갈 속에 세워
놓은 인공 수초를 꺼냈다.
까맣게 내려앉은 열대어들의 오물이 먼지처럼 물속에 번지고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물을 갈 때마다 늘 경험한 것이지만 오늘따라 냄새는 더 역겨워 헛구역질이 난다.
정인은 입 속에 가득 고인 침을 변기에 뱉어 내고 인상을 찌푸리며 물을 퍼내 화장실
하수구를 통해 버리고 새로운 물을 욕조에 받아 중화재를 적당량 물에 떨어뜨렸다.
파란 원액의 중화재가 투명한 물 속에서 뭉게구름처럼 퍼지자 정인은 물 속에 손을 넣어
물결을 일으켰다.

어느새 중화재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물은 이내 투명해 졌다.
그리고 정인은 물이 거의 없는 수족관을 들고 세면실로 옮겨 모래와 자갈을 들어내어
깨끗한 물로 헹구고 수족관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은 후 다시 모래와 자갈을 수족관에 채워
넣었다.
무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 거실과 세면장을 몇 차례 왕복을 하다 보니 정인은 팔에 힘이
빠지고 다리도 휘청거리며 머리에서 현기증이 일어났다.
정인의 힘든 노동에 투명해진 수족관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놓고 정인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았다.
이제 9시 뉴스가 끝나고 10시가 되면 중화된 물과 인공 수초를 깨끗이 씻어 수족관에 옮긴 후
열대어를 다시 집어넣고 공기를 생성하는 기계에 코드만 콘센트에 연결하면 수족관의
물갈이는 끝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쉽지 않은 일을 정인은 수돗물에 약한 열대어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
9시 뉴스가 끝나고 국내외 스포츠 결과에 관심이 많은 정인은 스포츠 뉴스까지 시청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욕조에 담긴 물을 수족관에 조심스럽게 옮겨 담고 공기 생성기의 코드를 콘센트에 꼽았다.
원형 스위치를 왼쪽으로 돌리자 솟아 오른 물방울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투명한 물 속을
유형하다 사라져 갔다.

정인은 물방울들을 보며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투명한 구슬을 생각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작은 구슬 속에는 무지개 빛깔의 고운 색이 들어 있었다.
소나기가 내린 후 들녘에 내려앉은 무지개를 잡으려 빗물에 젖은 까만 고무신을 손에 들고
어린 정인은 들길을 달렸었다.
가까이 갈수록 무지개는 어느새 시냇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버리는 무지개를 보면서 정인은
후들거리는 무릎에 손을 얹고 거친 숨을 내쉬며 무지개 잡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인은 그런 무지개를 작은 구슬에서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 고운 무지개가 어떻게 그 속에 들어가 있는지 궁금하여 돌로 쳐서 아끼던 구슬을
깨보기도 하였다.
반쪽이 난 구슬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무지개는 나오지 않았고 투명한
유리는 그대로 있고 고운 무지개만 반쪽이 되어 버렸다.
손가락 끝으로 깨어진 구슬 반쪽을 만져 보아도 무지개는 잡히질 않았으며 거친 유리의
표면이 살갗만 간지럽게 하였다.
그때서야 정인은 무지개는 결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만져 볼 수도 없는
물건임을 알았다.
정인은 한참 동안 피어오르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대야에서 헤엄치는 열대어를 수족관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인은 두 손을 모아 바가지처럼 만들고 좁은 대야에서 유영하는 열대어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았다.

아이들은 열대어를 한가족처럼 생각하고 몸의 크기와 비늘 색깔에 따라 까만 열대어는 아빠
열대어, 빨간 열대어는 엄마 열대어 그리고 희고 노란색 열대어는 예진이 열대어와 연진이
열대어로 구분을 하였으며 더 작은 열대어는 아기 열대어로 명명하였다.
수족관 유리에 얼굴을 부비며 자유롭게 헤엄치는 열대어를 바라보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과
같은 열대어가 움직일 때마다 즐거워하며 눈동자도 그 열대어를 따라 다니기에 바빴었다.
구석에 몰린 열대어 중에 작은 열대어들은 정인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아빠, 엄마
열대어가 손 그물에 걸려들었다.
정인은 조심스럽게 손을 오므려 퍼덕거리는 열대어를 감싸며 일어나려는 순간 까만
열대어가 허공으로 솟구쳐 전율하다 거실바닥으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버렸다.
정인은 당황하며 바가지처럼 모았던 손을 풀어버리자 손안에 있던 빨간 열대어까지
거실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고!...이런!"
"무슨 일이에요?"
"아빠! 왜 그래요?...조심해야지!"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과 설겆이를 하던 정인의 아내가 놀라 떨어진 열대어 주위에
몰려들었다.
빨간 열대어는 가쁜 숨을 내쉬며 꼬리지느러미를 팔딱거리고 있었으나 까만 열대어는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고 한쪽 눈알은 퉁겨져 나와 거실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별일이네?....조심하지 그랬어요!"
"여지것 이런 일이 없었는데...참 이상하네?"
"아빠 열대어가 너무 불쌍하다. 금방 죽을 것 같애! 아빠."

정인은 죽어 가는 열대어를 치우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가족 모두가 아끼던 아빠 열대어는 한 순간의 방심으로 그렇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이들은 아빠 열대어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으며 정인의 아내는 별일이
다 있다며 죽은 열대어를 무척이나 아쉬워하였다.
죽은 열대어를 서둘러 치웠지만 정인의 눈에는 열대어의 잔상이 한참 동안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열대어의 잔상을 지우려는 듯 정인은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하나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단숨에 식도를 통과한 알코올의 기운이 술에 약한 정인의 몸을 점령하고 졸음을 몰고 왔다.

정인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아내가 잠들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세찬 바람에 볏단이 넘어지듯 거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정인은 한참 동안 몽롱한 현기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다 벽에 몸을 기대고
일어나 아내가 잠든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몸을 눕혔다.

"이상하다? 맥주 한잔에 정신을 잃고 맥없이 쓰러질 정도로 내 몸이 허약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열대어는 왜 그렇게 참혹하게 죽었을까?"

정인은 불길한 예감을 한참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수 없이 몸을 뒤척이다 자정을 훨씬 넘긴
후에야 잠이 들었다.

한편 정태는 아내와 함께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왕복 1차선의 좁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아크라 시내를 비롯한 고속도로 톨게이트 주변에는 평일보다 현저히
증가한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정태의 승용차가 도심을 빠져 나오는데 만 30여분이 걸렸는데도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도착하자 교통체증은 더욱 심했다.
언제나 복잡한 톨게이트지만 주말이 되면 특히 복잡스런 곳이다.
신호등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잘못 설계된 도로 때문에 몰려든 차들은 지옥의
가마솥에 빠진 영혼들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정태는 묵묵히 앉아 이런 상황을 주시하며 하루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잠겼고, 지숙 또한 교통상황이 짜증스러웠는지 고개를 들어 전방의 교통상황을 살펴보며
정태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갔어요?"
"모르지? 홍박사 차는 우리 뒤에 따라올 것이고 박영사 차는 지금쯤 고속도로에 진입해
있을 거야!"
"지지리도 못사는 나라에 주말이면 무슨 차들이 이렇게 많은지, 원!"

지숙은 나라의 경제 상황에 비해 허영심 많은 아크라 도시민들을 속으로 비아냥대고
있었다.
정태는 현지에서 고용한 기사에게 빨리 빠져나가라고 큰소리를 쳤고 그 기사는 정태가
소리에 놀라 진땀을 빼며 줄줄이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를 곡예 하듯이 힘겹게 빠져나갔다.

"자영이를 데려 오는 건데 잘못했나 봐요!"
"무슨 소리야! 그렇게 버르장머리없는 녀석을 뭐 하러 힘들게 데리고 다녀! 이젠 자영이도
어린애가 아니잖아!"
"빨리 도착해서 집에 전화 한번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자영이가 문이나 잘 잠그고 있는지?"

지숙은 아침부터 정태에게 혼나고서 텅 빈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지낼 자영이가 걱정이
되었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승용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정태는 끝없이 펼쳐지는 사바나의
초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신이 내려준 드넓은 땅을 바라보며 이용할 줄도 모르고 나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동물적인 근성을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에게서 정태는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였다.

정태는 고국에 계시는 부모님의 삶이 떠올렸다.
부모님은 이들의 삶과 대조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전답을 최대한 경작하기 위해 조석으로
피와 땀으로 온몸이 젖을 정도로 삽질을 하여 딱딱한 손바닥은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이들이 게으름의 노예라면 부모님은 가난의 노예였던 것이다.
부모님은 평생을 흙과 씨름하며 평생을 보냈지만 가난의 멍에는 벗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가난의 멍에를 자신은 벗지 못할 지라도 자식들까지 가난의 멍에를 씌울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힘든 노동을 마다 않고 묵묵히 일하며 일생을 보내야 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가난의 멍에와 인연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육이라는 일념으로
자식들의 공부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식들이 공부에 소홀히 할
때마다 엄하게 꾸짖으며 가차없이 매를 들기도 하였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를 항상 무서워하며 원망만 하였지 아버지의 속내를 파악할 여유도
없었으며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느낄 겨를도 없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는 것조차 두려워하였으며 늘 엄격하고 정 없는 아버지로
각인 되어 성년이 되어서도 자식들의 두려움은 소멸되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뜨던 날, 정태는 핀란드 근무 중에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접한 정태는 영생할 것만 같았던 아버지의 생전을 모습을 상기하며
아버지의 죽음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슬픔 또한 느낄 수가 없었으며 설사 돌아가셨다 할지라도 또다시 살아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는 아무리 강인한 인간일지라도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허무한 생각만 들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오른 비행기 안에서 10시간이 넘도록 아버지의 생전의 외침과 표정은
귓전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미련한 놈! 내가 돈이 썩어 나서 허리 휘도록 고생하며 너 공부시키는 줄 아느냐!
이렇게 공부하려면 책가방 불싸 질러버리고 농사나 지어 이놈아!"

정태는 이런 아버지 덕분에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를 거쳐 외교관이 되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다 정태는 깊은 잠이 들었다. 꿈결에서 본 아버지는 여전히 강직하였다.

정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서도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아버지의 표정이 생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지긋이 웃고 있는
표정이 인자하기 그지없고 자신을 안아 줄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정태는 너무나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순간,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도로를 벗어나면서 나뒹굴었고 정태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자마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태는 옆에 앉았던 지숙에게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아버지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제3부 상실의 세월]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