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용서 (2)
"가게 내 놓으려 구요...급하진 않으니까 천천히 알아봐 주세
요."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 나는 다짐했지만, 이모를
혼자 그렇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충 물건을 정리하고, 수
술 전에 서울에 도착하기 위해서 나는 서둘러 일들을 마무리 지
으려 했다.
"아주 서울로 갈려고?"
신애는 아쉬운 눈빛으로 물어 왔다.
"아니야,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그래. 다시 돌아 올꺼야."
"나은이도 없꼬, 무신 낙으로 사나 내는?"
"언니, 이모 괜찮아 지시면 다시 온다니까 그래요."
가뜩이나 심사가 편치 못한 언니는 눈물로 우리를 배웅하고 신애
는 내가 없는 동안 가게 정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나에게는
남이면서 가족인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김태희 씨가 이모라고 하셨죠?"
"네, 저 밖엔 가족이 없어요."
"혼자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 병원에서도 알아주는 산부인과 전문의라는 그 여의사는 부드
럽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나를 언
니처럼 다정하게 위로해 주었다.
"수술은 해 봐야 알겠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가 돼 버린 상
태라서, 좀 어렵겠어요.열어 보고 만약 들어내도 소용이 없으면
그냥 닫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수술을 해 보긴 해야 겠지요.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편이 좋겠어요."
"그럼 얼마나 더 오래. 사실 수 있을까요?"
"글쎄요, 장담은 못 하겠지만 아마, 한 3개월쯤... 그리고 참,
이모님께 들으니까 어머님은 안 계신다고 하고, 이모가 저러시니
까 손영인씨도 검사를 한 번 받아 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저요?'
"네, 정기적인 산부인과 검진은 받아 보셨나요?"
"아니요, 아직, 전 건강한 편인데요..."
"물론 지금은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그리고 꼭, 유전이라는 건
아니지만,가족력 이라는 게 있지요. 어머니는 이미 돌아 가셨으
니 확인할 수 없지만 이모가 자궁암이라면 손영인씨도 다른 사람
보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거든요."
"지금은 제게 그럴 여유가 없네요..."
"제 명함 이예요. 몇 달 후에 개업을 하거든요. 시간이 나거든
꼭 전화하고 들리세요. 건강해 보일 때 항상 체크하는 게 좋아
요."
"그러지요."
병실로 돌아오자 이모는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보며 시비를 걸어
왔다.
"나은이는 어떻게 하고 여기 이렇게 죽치고 있는 거냐?"
병자답지 않게 화려한 화장까지 하고서 특실에 왕비처럼 누워 있
는 이모가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모든 걸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이모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중인지도
몰랐다.
"아줌마가 봐 주시고 계세요. 혼자 잘 놀아요."
"너보다 간병인 아줌마가 더 나아. 가서 나은이나 잘 돌봐."
"괜찮아요. 수술 끝날 때까지 제가 있을 께요."
"애 혼자 그렇게 공 굴리듯 하면 안돼."
"제가 알아서 할께요."
"니가 뭘 알아서 해. 항상, 제가 알아서 할께요! 그래서 뭘 그렇
게 잘 알아서 했니? 잘난 척은 혼자 다 하고 나은이도 너나 니
엄마 닮았다고 생각하면 가던 정도 뚝 떨어진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참기로 했다. 참아야 한다고 그렇게 다짐했
다. 나를 흘겨보던 이모는 자리에 힘없이 누우며 중얼거렸다.
"내가 죽기는 죽는 모양이지.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걸 보니..
하지만 그렇게 너 답지 않게 굴지마. 저승사자가 바로 문 앞에
서서 부르는 거 같으니까."
"제발 이모...."
사람에게는 서로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거 라고 나
는 생각했다.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이모와 나는 서로 사랑하지만
언제나 엇갈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잘해 보려고 하면 할
수록 어디서 부터 꼬인 줄 모르는 매듭은 항상 더 얽히기만 했었
다. 그게 이모와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서이지 않을까,
이즈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언제나 타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
보게 하고야 마는 그 끝없는 히스테리를 나는 너무나 경멸했었
다. 하지만 이모는 그렇게 자신을 무장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
다. 항상 내 방식이 옳다고 고집할 수는 없는 거 아닐지. 가장
약해 보이는 이모는 그러나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저렇게 의연
할 수 있다니..내가 만약 이모라면 그럴 수 있을지 가늠되지 않
았다.
가망 없는 수술조차 결국은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이모는 실
려 나왔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이모의 짜증과 변덕을 얼마나 참
아야 할지 힘들어하면 서도, 자리를 뜰 수 는 없었다. 그렇지만
또,긴 병에 효자 없다고 두 달이 다 되기도 전에 나는 지쳐 갔
다. 신애가 서울까지 올라와 가끔 나은이를 돌봐 줬지만 그 큰집
에 혼자서 놀 나은이가 이모보다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영인아, 영인아...."
간이 침대에 쪼그리고 누워서 겨우 눈을 붙이고 있는 나를 이모
는 실날처럼 가는 목소리로 불러 깨웠다. 그 가는 음성을 그래
도 나는 기적처럼 알아듣고 일어 나곤 했다.
"왜요? 뭐 불편하세요?'
"아니, 아니야...영인아, 이리 와봐..."
"왜 그러세요?"
달빛인지 가로등불인지 이모의 얼굴로 비쳐 들었다. 죽음의 그림
자가 어리는 얼굴, 쓸쓸한 모습이었다. 움푹 패인 눈자위로 눈물
이 번졌다.
"영인아, 영인아, 용서해."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이모는 겨우 겨우 말을 이어 나갔다.
"이모 왜 그러세요? 뭘 용서해요...괜한 소리하지 마시고 주무세
요. 전 이모한테 아무 감정도 없어요."
"영인아, 승준이...."
"이모 잘못 아니예요. 누구 탓도 아닌 다 제 운명인걸요. 이모
괜찮아요, 전 괜찮으니까 이제 편히 주무세요."
"승준이 엄마한테....너를 며느리 삼으면 안된 다고 ....내
가 ....그랬다..."
"네?"
"집으로 찾아온 그 여자한테,,,,내가...이모부까지 홀린...그런
년이라고....영인아...영인아...용서해..."
이모는 끊임없이 오열하고 있었다. 나는 잡았던 이모 손을 힘없
이 놓쳤다. 눈을 감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 못 된 걸까. 무
엇이 내 삶을 이렇게 헝클어 놓았을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죽
어 가는 이 사람,,, 이모의 삶도 이렇게 망가졌을까...
정신없이 뛰쳐나와 거리를 헤메였다. 내 몸은 이미 허공에 뜬
것처럼 그렇게 그림자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래도, 용서한다
고, 말해야 하는 거겠지..그 말을 해서 편안해 진다면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지 않는다고 해
도. 그런데 내가 정말 용서하지 못할 건 또 뭐가 있는 건지 나
는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내 아이에
미래에 대한 꿈까지 망쳐 버린 사람이라고, 그래서 용서하지 못
한다고 해야 하는 걸까. 결국 이모가 그러지 않았어도 그의 어머
니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모
괜찮아요...다 잊고 편안하게 생각하세요...라는 말. 하기 어려
운 것도 아니지 않을까. 이모는 죽어 가는 사람인데...하지만 이
모 앞에서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
다. 어떻게 신은 내게 이리 가혹한 걸까. 병원 앞 벤치까지 와서
도 나는 이모의 병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성였다. 그렇지만,아
침이 밝아오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너무 없어. 그냥 용서한다고 말해야돼...그래도 내 이모잖아.
하지만, 용서한다는 그 말, 그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이모와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