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냐? "
" 헉! "
'틱-'
늦겨울과 초봄사이의 햇살속에서 진재 오빠를 그리고 있던 난 화들짝 놀라, 붓을 떨어뜨렸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만큼 집중해 있었나?
아님, 도둑고양이처럼 살금 살금 들어온 하현수의 의도였을까...
'씨익-' 웃고 있는 그를 불쾌하게 쳐다보다가 도화지를 쳐다봤다.
진재오빠의 검은 눈동자.
그밑으로 곧게 뻗은 검은선 하나가 마치 눈물을 흘리듯 그려져, 나를 슬프게 쳐다보고 있다.
난, 주섬 주섬 화구를 챙겼다.
" 해인인 나만 보면 자꾸 피하네 "
" .......................... "
" 한달하고 보름이 지났는데, 대화다운 대화 나눴었나..우리.. "
" 아줌마 말로는, 일주일에 한두번 올까말까 한다던데, 자주 오네. "
" 야아~ 그럼 우리 이쁜 해인이 여기다 두고 내가 어떻게 집에서 두발 뻗고 자냐.....
니 얼굴이 아른거려서 말이지. "
난 스케치북을 턱에 낀채, 방으로 향했다.
턱의 스케치북을 '스윽' 빼서 펼쳐보는 하현수.
" 무슨 짓이야! 이리 내! "
번쩍 치켜든 손에 닿지 않아 그의 다리를 사정없이 때렸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않고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
" 흠......
이 비슷하게 생긴 놈하고 경진이가 같이 있는걸 본적이 있어. "
난 흠칫 놀랐다.
" 한번은 우리 학교앞에서 경진이랑 지나가는거 봤고....
니네집 문앞에서는 여러번.....
경진이의 새로운 애인인줄 알았는데.....
이게 그놈이 맞는거......
음....... 맞군!....
짧은 스포츠 머리에, 단단한 목........큰 입술하며...... "
하현수는 놀라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빈정거리듯 말했다.
" 뭐야!
너희들 삼각이냐........? "
경진이와 함께.......
진재오빠가........... ?
난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리를 한번 흔들었다.
빤히 쳐다보는 하현수에게 정색을 하며 물었다.
" 혹시.......
우리집 소식 들은거 있어? "
" 음..
잠잠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
난 허공에 시선을 둔채 넋빠진 사람처럼 건성으로 " 그래.... "
한마디 던져놓고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궜다.
" 이해인...... "
" 생각할게 좀 있어서 그래.
가만히좀 놔둬! "
문밖에서 부르는 징그러운 하현수의 목소리에, 얹혀산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의무적인 대답을 해야하는 내 자신이 못견딜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밀려드는 억울함.......
배신감....
서운함........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진재오빠가 왜 경진이랑.......
정말 이해가.......
혹시, 내 안부를............
아니면, 경진에게......
벌거벗은 경진앞에 만취된 진재오빠가,
유혹하는 경진을 '덥썩' 끌어 안는다.
그리고...........
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
경진이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어.
이런 상상을 하는 내 자신이.......
하현수의 오피스텔에서 온통 그런 장면들만 듣고 있으니,
이상한 생각만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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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거칠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떳다.
한번도 초인종 소리를 들은적이 없는데......
난 벌떡 일어났다.
' 누굴까 ? '
' 혹시....... '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끈기있게 기다려 봤지만, 잠깐 멈췄다 계속 이어지는 초인종 소리.........
' 어쩌지...... '
눈이 어둠에 익숙해 지자, 협탁처럼 사용하고 있는 트렁크 위에 손목시계를 눈에 바짝 들이 댔다.
새벽 2시를 향하고 있는 초침.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거칠게 문을 따는 소리와 열쇠꾸러미의 '찰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쿵....'
내 심장소리와 함께 '쿵쾅 쿵쾅 쿵쾅....' 울리는 발자욱 소리가 온 집안을 울렸다.
이어, 잠겨있는 내 방문 손잡이를 비틀어대는 소리....
'짤깍 짤깍! 짤깍 짤깍 짤깍........'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열쇠 꾸러미의 찰랑 거리는 소리.....
난 순식간에 침대에서 뛰어내려 문손잡이를 움켜잡았다.
" 이해인.....
문열어.......
빨리! "
하현수 였다.
" 왜그래?
무슨일이야? "
" 빨리 안열어...... "
" 왜 그러는 거얏! "
난 소리를 질렀다.
" 왜 그러냐고.....
너, 벌써 두달 넘었어.
이제 보답할때가 된거 아냐.
빨리 열어.... "
" 뭐라구? "
" 뭐라구.....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으면, 보답이 있어야지.
약속은 약속이야! "
" ...................... "
그래........
난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보답이
이런거라는걸........
그를 불렀을때, 이미 난 모든걸, 내 모든걸 포기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포기' 라는건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설마,
그가 정말 이런 모습의 나를.........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포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불타는 내 분신들의 불기둥이 벌겋게 확대되어 아른거렸다.
마치 내 두다리가 잘린듯, 흙에서 부터 파헤쳐져 슬프게 나를 올려다보던 나의 화니......
10여년을 내 마음의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주던 화니상자.....
비명을 지르며, 화염속에,
그 불길속에 있었던 나의 분신들......
그때,
나도 화형 당했었지.
그래......
이해인.......
넌 포기했었잖아...
지금의 니 모습을 봐...
아무것도 없는.......
마지막 하나 가지고 있는 '여자' 라는 것을 나를 도와줬던 남자가 달라잖아......
그리고,
약속했었잖아...
저 남자가 원하는걸 주기로......
다시
무서울 정도로 담담해지는 나................................
'딸깍!'
문을 땄다.
순식간에 나를 덥치는 그!
바닥에 그를 안고 쓰러진 난, 그의 역한 술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속이 뒤집어질듯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그의 입술이 거칠게 덥쳤다.
" 웁! "
그는 미친듯 내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남방이 쉽게 벗겨지지 않자, 그는 그대로 '찌이이익-' 찢어버린다.
난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벌겋게 핏발이 선 그의 충혈된 눈.
숨을 몰아쉴때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
잘린 허벅지를 가리고 있던 짧은 바지가 쉽게 벗겨져 내려갔다.
.............................
마지막 남은 속옷을 벗기는 그의 거친 손아귀에서 내 작은 몸뚱아리가, 내 흉물스런 몸뚱아리가.......
초라한 나의 알몸뚱아리가 가엽게 느껴지는 순간,
그는 바지를 대충 허벅지에 걸친채 나를 껴않았다.
...............................
순식간에 느껴지는
무서운 통증!
목젖을 울리는 커다란 비명을 삼켜버렸다.
입술을 깨물며, 나의 표정을 지배할것 같은 그 무서운 통증을 담담하게 담아내려고 애썼다.
그 남자의 모든것이 폐부를 날카롭게 유린하며, 나의 작은 몸뚱아리를 삼켜버렸다.
' 해인아................
내 감정이 사랑이라는걸 깨달았어.
니가 좋아.
나는 너의 모든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 '
진재 오빠.....................
천정의 꽃등 다섯개를 멍하니 쳐다봤다.
" 헉헉헉......으헉.............허허허허어억........
허억..............헉헉헉..... "
난 눈을 감았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