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선 주로 시댁에 많이 머물렀는데 시부모님께서 연로 하시다 보니 이것저것 농사일을 돕게 되었다. 일 나가시기 전 시어머니는 항상 말씀 하셨다.
"야이, 너는 나오지 말고 쉬어라. 엄마, 아빠가 얼른 끝내고 들어 올텐게."
하지만 그게 어디 그럴 수 있는가? 대답은 "예."하고 얼른 시어머니의 허름한 일복을
꺼내 입고 시부모님을 따라 나섰다.
때론 마늘을 심고, 때론 들깨도 심고, 때론 고추를 따기도 하며 매 년 몇 월 달에 한국을 방문 하느냐에 따라 일거리가 달라지곤 했다. 그리고 출국할 땐 반드시 시부모님 정성 가득한 1년치 먹을 고춧가루와 들기름 2병씩을 챙겼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 머무르면서도 시부모님의 고춧가루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모든 농사는 접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장을 하기 위해 고춧가루를 주문하다 고추밭의 풀을 뽑던 날이 생각 났다.
아버님이 살아 계시던 몇 년 전 7월의 일이다. 몇 십년만에 초등학교 동창회 간다고 남편은 마치 소풍 전 날의 초등학생처럼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런 남편을 위해 행여나 몰골이 초라하면 마누라 잘못 만나 그렇다 흉볼까 봐 건조하고 푸석한 얼굴에 수분 크림 듬뿍 발라 억지로 촉촉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흰 와이셔츠에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정도로(그래봐야 기찻간에서 구겨지겠지만) 빳빳이 다려 주었다.
아침 일찍 첫 기차를 탄 남편은 대전으로 떠나고 하릴없이 앉아 있다 보니 며칠 전, 시아버지께서 고추밭의 풀도 곧 뽑아야 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시부모님 계신 안방을 살며시 열어보니 두 분이 드러누워 계셨다. 시부모님께선 워낙 일찍 일어나셔서(보통 아침 5시 기상), 아침 식사는 새벽 6시 반경 먹었다. 그리고 식사 후에 별 일이 없으시면 시부모님들께선 도로 방으로 들어가셔서 한 두 시간 쉬시곤 하셨다.
결혼하고 해외로 떠돌아 다니느라 맏며느리 역할 제대로 못한게 늘 미안했는데 이 참에 점수 좀 따야겠다 싶어 조용히 집 앞에 있는 고추밭으로 가 밭 고랑 사이로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았다. 한 시간 반 쯤 땀 뻘뻘 흘리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긴 했지만 잡풀이 사라져 깨끗해진 고추밭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루에 앉아 계시던 시어머님이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으셨다. 고추밭에 가서 풀을 뽑고 왔다 하니 눈이 둥그레 지셨다.
"언제 갔디야?, 어허이 참!"
곁에 계시던 시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듯 만면에 웃음을 보이시니 왠지 뿌듯하기까지 했다. 점심때가 되어 시어머님이 끓여주신 맛있는 된장찌개를 평소 내가 먹던 양보다 많이 먹고 마루에 나와 앉아 있자니 피곤이 몰려왔다. 마침 읍내에 볼 일 있으시다며 시부모님들께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셨다.
마루에 벌러덩 누워 매미 소리 자장가 삼아 꿀 같은 낮잠을 잤다. 그러다 끈적이는 한 여름 더위에 깨어보니 벌써 오후 4시나 되었다. 시부모님은 아직 돌아 오시지 않았고, 인터넷도 안되고, 밖에 나가자니 덥고, 무료하여 따분하기까지 했다. 자연히 눈에 띄는 핸드폰으로 손이 갔다.
본인은 극구 아니라 하지만, 첫사랑 동창도 참석한다고 한껏 들떠 있던 남편이 지금 뭐하고 있나 궁금했다. '아니 마누라 시댁에 던져 놓고 소식도 없이 감감하다니....' 잠시 괘씸한 생각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십년 만에 만나는 동창들이랑 함께 있다 보면 늘 옆에 있는 마누라 따위 뭔 생각이 나겠냐 싶기도 했다. 그의 첫사랑이 낀 단체 사진은 찍어오겠지.....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어땠는지, 그의 첫사랑 그녀는 어땠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녁 9시나 다 되어 돌아온 남편한테 잘 갔다 왔느냐는 인사보다 먼저
"동창들이랑 사진 찍은거 있어?"라고 물어보며 전화기부터 낚아챘다. 앞, 뒷집 살며 초등학교 6년을 함께 등교했다던 그의 그녀. 10 여명이 쭈욱 늘어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첫 눈에 누가 그녀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남편이 보는 미인의 기준이 왜 얼굴이 통통한 여자 인가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쉰이 넘은 나이 인데도 주름살 없이 통통하니 팽팽한 얼굴, 눈에 확 띄는 뛰어난 미인이랄 수는 없었지만 모여 늘어선 동창들 가운데 단연코 이쁨 돋는 얼굴이었다. 내 곁으로 오셔서 사진을 함께 보시던 울 시어머니,
"아이고 **이는 아직도 얼굴이 고대로 이쁘네." 하셨다.
동창회 다녀온 남편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그의 친구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뭐하고, 누구는 못 나오고, 누구는 술버릇이 어떻고 등등 기분 좋은 수다가 이어졌다. 은근슬쩍 첫사랑 그녀는 어땠냐고 물어보니, 그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드는지 첫사랑 아닌데 왜 그러냐고 펄쩍 뛰었다. 그 모습이 재밌어 더 놀릴까 하다 괜히 기분 좋은 남편이랑 쓸데없는 다툼이 생길까 그만 두었다. 질투라도 나야 할텐데 참으로 오랜만에 어린아이 마냥 해맑은 얼굴로 웃는 남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나의 동창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초, 중, 고, 대학까지 졸업 이후엔 그 어떤 모임에도 나가본 적이 없다. 외국에 살아서 라는 핑계를 대보긴 하지만 그동안 내가 너무 내 아이들과 남편에게만 집중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이제 슬슬 나의 인간 관계를 조금씩 넓혀 가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동창회 나가볼까? 나처럼 나이 들었을 친구들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수 십년 연락 없이 지내다 선뜻 연락 하기도 참 어색하다. 조금 더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