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 할 때가 종종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길을 가다 낯선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칠때면 인사를 하려는 습관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목을 반 쯤 숙이며 '안녀'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올 뻔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지난 30년 세월을 해외에서 살면서 이웃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지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곤 했다. 비록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인사는 기본 이었다. 그리고 쇼핑몰이 되었든, 산책을 하는 길이든, 어디가 되었든 지나가다 마주 오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웃으면서 자연스레 '하이' 라고 인사를 주고 받았다.
특히 산책 길에 이야기가 이어지면 날씨 얘기에서 어디서 왔느냐로 부터 시작해 한국 이야기까지 선 자리에서 5분에서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헤어질 땐 좋은 하루를 보내라 던 가, 우리나라 온 것을 환영해 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 반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에 아는 이웃이 없다. 지난 8월, 이사떡을 돌렸는데 문을 열어 주는 집이 겨우 두 집이었다. 어떤 집은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가 이사 왔다고 요즘 떡 돌리는 집은 거의 없다고, 굳이 떡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 얘기가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이웃들 얼굴은 알아야지 싶었는데 괜한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려다 멈칫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무관심이 지나쳐 마치 적의라도 품고 있는 듯한 그들에게서 재빨리 등을 돌렸다.
20년도 전의 일이 생각났다. 두바이와 모로코에서 수 년 간 지내다 한국으로 들어와 10개월을 산 적이 있다. 당시 16층에 살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사람들을 만나면 웃으면서 아주 상냥하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인사를 받아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받아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 쳐다 보았다. 눈치 없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대로 인사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자 나이 지긋한 앞집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 새댁,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 만나면 굳이 인사 안해도 돼."
"아니, 왜요?"
"16층에 남편 없이 아들 둘 데리고 사는 젊은 여자가 이사 왔는데 웃음을 흘리고 다니니까 조심하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마침 남편은 지역 전문가로 국외로 나간 상황이라 애들과 나만 살고 있었는데 인사 잘 한 죄로 그런 황당한 소문이 돌다니 민망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해외 생활 마지막은 손님 환대 문화가 강한 중동의 요르단에서 살았기 때문에 또 다시 인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이젠 새댁 소리 들을 나이도 아니고, 남편이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아도 인사를 잘 한다 해서 20년 전과 같은 소문이야 돌리 없겠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 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불편한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도 안되는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모르는 사람은 일단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이 안전하다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인데도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인사를 안해도 아무렇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이사 온 동네에는 친구도 없고, 지인도 없다. 좋은 이웃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좋은 이웃을 만나기도, 되기도 어려운 상황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