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
"여보세유?”
"어머나, 오늘은 왠 일로 이렇게 전화를 빨리 받으신데요? "
"여보세유? 여보세유? 아, 누구신지 잘 몰르것는디유?"
"어머니, 저예요. 큰 며느리!"
"이잉, 그렇구먼. 니가 하도 전화 안 해서 목소리도 잊어버렸네."
어색하게 웃으시며 안부 전화도 안 하는 못된 며느리 만드셨다.
어제만 해도 우리 메누리 전화했구먼 하고 좋아 하셨는데....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고 일상적인 안부 전화만 하다 보니 기억력이 늘 그만그만 하신가 보다 했다. 그런데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하시는 게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약으로 치매 증상을 늦출 수야 있겠지만 진행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지, 전에 없이 횡설수설 하시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너는 언제 내려 올래? "
"어머니, 애비 몸이 좀 회복되면 같이 내려 간다고 어제 말씀 드렸잖아요.“
”아, 참 그렿지이. 나이 먹응게 자꾸 깜박깜박 한다.“
”근디, 나, 배고파 죽것다아. 냉장고에 먹을 것도 한나 없고 배고퍼어.
니 시동상도 요샌 통 안 오고 외로와아.”
“네? 시간이 몇 신데 여태 저녁을 안드신 거예요?”
저녁 8시가 훌쩍 넘었는데 식사를 안 하셨다니 걱정이 되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냉장고에 먹을게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마음에 걸렸다. 순간, 매일은 어머니 집으로 올 수 없는 시동생이 그저께 다녀 간 걸로 알고 있는데 빈 냉장고 만들어 놓고 가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형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시동생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나마 시동생에 대해 안좋은 생각을 한 게 미안했다. 아마도 내가 어머니를 모셔보지 않았다면 시동생을 오해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드라마에서 보던 미운치매 시어머니들이 며느리가 밥을 안 준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장면이 떠 올랐다. 행여 누군가 전화를 했는데 어머님이 배고프다 하셨다면 졸지에 두 아들이 천하에 몹쓸 불효 자식이 되겠다는 생각에 등골이 써늘했다.
“어머니 냉장고에 먹을게 없을 리가 있어요? 그저께 삼촌이 다녀 가면서 반찬 잔뜩 채워 넣고 갔을텐데요?”
“그렇기야 허지. 혼자 있응게 밥맛도 없고 그려서 그러지. 알았써어, 밥 먹을겨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시는 어머니. 아마도 큰아들 빨리 내려오라 투정부리신게 아닌가 싶다.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어머니 얘기를 하자 시골로 하루 빨리 내려 가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술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시골로 내려간다는 남편을 나는 붙잡았다.
대 수술까지는 아니여도 전신 마취로 한 수술인데다 살까지 빠져 우선 몸을 회복한 뒤에 내려가라 말렸다. 어머니를 하루, 이틀 돌보고 말 일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하니 우선은 당신이 건강해야 어머니를 돌보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니냐고 주저 앉힌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큰 아들 보고 싶다 우시고, 아들은 못 내려가서 안달이고. 아휴, 중간에 끼여 나쁜 짓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는 24시간 내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어머니같은 초기 환자들은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일상 생활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상태가 더 진행된 경우에도 하루 종일 정신이 없지는 않다. 주로 낮 시간에는 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낮 보다 정신이 혼미 해지는 경우가 많다.
한 시간 쯤 지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 했디야?”
“저녁은 드셨나 궁금해서 전화 드렸어요.”
“그럼, 저녁은 버얼써 먹었지이, 아, 지금 시간이 몇 신디, 아홉시가 넘었는디.”
불과 3,40분 전에 나와 통화한 것을 까맣게 잊으신게 분명하다.
“언제 올래?”
“애비 몸이 좀 회복되면 이번에는 같이 내려 갈게요.”
“그려, 하냥 와라. 그라고 엄마는 잘 있응게 너머 급하게 오지 말고 애비 몸이 회복되거든 그때 천천히 오나라. 엄마는 아침 먹으믄 센타 가서 하루 종일 있다 옹게 걱정 안해도 돼.”
나도 처음 통화 하는 것처럼 능청스레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을 사시는 어머님의 치매 진행이 굼벵이처럼 천천히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