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라비언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UCLA 대학의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 교수가 1971년에 발표한 법칙이다. 그는 대화하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하여 누군가와 첫 대면을 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는 요소(메시지의 전달 요소)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감을 주는 결정적 요인은 상대방의 말의 내용이 아니라 이미지였다. 상대방의 인상이나 호감을 결정하는데 목소리는 38%, 바디랭귀지(body language)가 55%(표정이 35%, 태도가 20%)의 영향을 미친 반면, ‘말하는 내용’ 그 자체는 겨우 7%의 효과만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전화로 상담할 때는 목소리의 중요성이 82%로 올라간다고 한다.
이 이론에 근거하면, 말의 내용 보다 목소리가 대화하는 상대방에게 더 좋은 인상과 호감을 줄 수 있다는 게 된다. 여기서 목소리라고 할 때 단순히 소리만을 의미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어투, 말의 속도. 말의 높 낮이, 이 모두가 포함되어 내는 소리라는 의미 일 것이다. 아무튼 유창하고 현란한 말솜씨가 없는 나로서는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목소리에 대한 언급을 처음 들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국어 시간에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자 선생님께서 너는 어쩜 목소리가 꾀꼬리 같구나, 아나운서를 하면 좋겠다 라고 하셨다. 당시 장래 희망이 아나운서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칭찬으로 듣지 않았던 터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 이후 목소리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다가 다시 한 번 목소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L전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평소 타 지방에서 근무하던 직원과 업무적으로 통화할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일 적으로 관련이 없는데도 전화가 오기 시작하더니, 계속 출장 한 번 오라는 얘기를 했다. 아니면 자기가 일거리를 만들어 출장을 오겠다 고도 했다. 그럴때마다 눈치 없던 나는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며 그냥 웃어 넘겼다.
그러다 업무 차 일이 생겨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출장을 다녀 온 이후로 연락이 뜸 해 지더니 일 외적으로 연락해 오는 일이 없어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옆자리 동료의 말이, OO씨가 사귀어 보고 싶다 했는데 출장 다녀오고 나서 어떻게 됐어요? 사귀게 되었나요? 라고 물었다. 그제서야 전화 연락이 뜸 해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내 목소리를 듣고 어떤 모습의 나를 상상했던 걸까? 어찌됐든 목소리를 듣고 호감을 가졌다가 얼굴을 보고 실망하여 급 관심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그리 이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생겼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는데 황당했다. 하지만 그 직원에게 별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금방 잊어버렸다.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는 것을 온전히 깨달은 것은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면서 부터이다.
"어머, 가이드님, 목소리가 어쩜 그리 좋아요? 예전에 아나운서라도 하셨나요?"
"설명하시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와요."
"목소리가 차분하시니 들으면서 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아주 집중이 잘 되요."
"남편 분은 얼마나 좋으실까요? 가이드님처럼 상냥하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니 싸울 일도 없겠어요."
부작용도 있었다. 장거리 긴 버스 여행에서 나긋나긋, 낭랑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자장가 처럼 들려 설명을 듣다가 잠을 잤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불만의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니었다.
중학생 때 이후 평생에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리에 대한 찬사를 들은 셈이었다. 한, 두번 들었으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인가보다 하고 생각 했을텐데, 워낙 여러 차례 듣다 보니 그제서야 내 목소리가 사람들이 듣기에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직업이라 목소리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일단 듣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니 좋은 목소리를 물려주신 엄마에게 새삼 감사하는 맘이 들었다.
남편에게 순례객들이 한 칭찬에 대해 얘기 했더니 별 감흥없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일 테지 라고 했다. 하긴 내 목소리로 듣기 싫은 잔소리도 하니 남편한테는 그리 좋은 목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작년에 법적으로 작은 문제가 있어 변호사에게 전화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다행이 문제가 해결 되어 변호사를 직접 대면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변호사를 소개해 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얘, 변호사님이 네가 문의한 사건이 수임료도 얼마 안되면서 복잡한 사건이라 별로 맡고 싶지 않았는데, 니 목소리 때문에 꼭 사건을 맡고 싶었다고 해. 하도 목소리가 특이해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라"
순간, 옛날 일이 떠오르며 사건이 미리 해결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전화로 상담할 때는 목소리의 중요성이 82%로 올라간다는 메라비언의 법칙이 얼마나 딱 맞아 떨어지는지....
이쯤되면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다. 자화자찬이 심해 민망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보이스 트레이너로 부터 내 목소리가 어린아이 목소리 같다 라는 평을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중동에서 산 경험과 성지 순례 가이드를 한 경험을 토대로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와 별개로 치매이신 어머니를 돌보면서 조기 진단과 예방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치매 관련 강의를 위한 공부도 하고 있다. 강의를 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싶어 명품 강사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데, 보이스 트레이너를 통하여 아랫배에 힘을 주고 호흡을 조절하며 좀 더 굵은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알려주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만은 않다. 그렇지만 꾸준히 준비를 한다면 기회는 주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주어지지 않는다면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마 내 목소리가 평범 했다면 이런 일은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게 되는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나만의 컨텐츠를 전문화 시키고, 시의 적절한 바디랭귀지를 사용하여 강의 전달력을 높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