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7일-눈치 없이 가을은 푸르기만 하다
한낮에는 아직 여름의 흔적이 묻어난다. 긴 소매를 걷어야 햇볕 아래서 충충 걸을 수 있다. 여름과 가을이 꿰맨 자리 없이 겹쳐지다가 나뭇잎이 노란색 돼야 진짜 가을. 정반합, 모든 변화는 그렇게 긴장 속에 찾아온다. 아마도 인간이 적응할 시간을 주려는 것인가 보다. 준비 없이 있다가 어느새 찬 공기가 살에 닿을 때쯤이면 또 한 해가 끝을 향해 가고 있겠지.
그나저나 정말 입을 게 없다. 옷장에 거지라도 들어앉아 있단 말인가. 채워도, 채워도 입을 게 보이지 않으니. 10월이 코앞인데 한낮엔 땀방울이 주르륵. 여름옷을 입자니 아침저녁엔 춥고, 가을 옷 입자니 한낮의 햇볕이 두렵고. 따스한 저 스웨터는 언제쯤 입을까. 올가을 유행이라는 레깅스는 어떻고.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 했는데, 정말 눈치 없이 가을은 푸르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