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딸들이 맘에 담아 놓았던 옛날 얘기를 쏟아놓는다. 얼마만의 여유인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에미의 험담으로 방향을 잡는다.
"엄마. 지금도 속옷을 수건에 덮어서 말리우?" 큰딸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는 듯이 그 큰 눈을 더 크게 하고 묻는다. 이야기의 진의를 몰라서 나도 가는 눈을 세우고 바라 만 본다.
"너, 그거 알아? 우리 속옷은 일 년 열 두 달 햇볕은 구경도 못해보고 살았다는 거. 남자 동생들 왔다갔다하는 데에는 널지도 못하게 했잖아.." 큰딸이 너는 기억이나 하느냐고 제 동생에게 묻는다.
"언제나 구석에 널고 수건으로 덮어서 말렸잖아."
"속옷이란 건 햇볕에서 뽀송뽀송 말려야 하는 건데 말이야. 하여간 우리는 생각도 안하고 남자들만..."
고만고만한 두 딸과 두 아들을 기르자니 신경쓰이는 게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아들들은 아들들대로 자랄 때 이야기 거리가 많더구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늦게 돌아오는 딸들의 에스코트를 맡았던 영감이 일이 있을 때는, 아들들은 그래도 저들이 반드시 무사히 귀가를 책임졌었지. 그래서 엄마는 딸들만 귀히 여겼다는 볼멘 소리를 자주한다. 아무튼 넷이나 되는 그들이 말썽없이 사고 없이 잘 자라 준 것이 참 고맙기만 하다.
"우리 엄마는 하여간 알아줘야 해. 대학 다닐 때도 절대로 올나이트모임은 하지 못했으니까. "
"우리는 참 착했어 그치?! 아빠 엄마가 때려주는 것도 아닌데 왜 거역을 못했을까."
"지금만 같았으면 맞아도 나갔을 텐데."
"엄마가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몰라." 두 딸은 죽이 맞아서 떠들어댄다.
"남들은 자매끼리 여행도 다니고 하던데 우리는 그런 것도 한 번 못 가보고. 잉. 잉."
"가라. 지금 가라. 그래도 열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유럽베낭여행도 한 달씩 보내고 했는데."
"신랑들한테 허락 받아라. 내가 지금이라도 보내 줄 게."
"저거 봐. 엄마는. 이 나이에 신랑 허락 받고 다녀요? 우리 엄마는 못 말린다니까."
사위들을 중간에서 만나서 움직이는 게 좋겠다. 그녀들은 미니스커트만 입혀 놓으면 아직 20대로 보이니 말이다. 그런데 사위들이 시간을 낼 수가 없다 한다. 큰사위는 곧 독일로 전근을 갈 것 같고, 작은 사위는 연구실의 바쁜 논문을 맡았다 하지 않는가. 큰딸의 두 손녀딸은 진즉에 독립들을 했고 작은 딸은 딩크족인데다가, 마침 방학이라 강의도 없으니 안성맞춤인데 말이지.
영감의 병문안을 왔지만 딱히 할 일은 없다. 이래서 그녀들만의 해외여행이 준비 됐다.
"어디로 갈 거냐. 경비는 얼마나 가져야 되냐?"
"정말 엄마가 주실 거유? 됐슈. 벼룩이 간을 내 먹지. 하하하." 허긴. 경비가 걱정인 아이들은 아니다.
"엄마는 아빠 땜에 못 움직이시지요?" 아빠가 아니드라도, 지금은 끼일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