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잰걸음으로 걸어가면서도 늘 흘끔거리던 미장원에
맘먹고 왔다.
늘 가던 곳으로 갈까
새로운 곳에 갈까하다가
출근길에 늘 마주치는 그 미용실에 왔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연핑크베이지톤의 실내가 깔끔하다.
단골은 많은것 같다.
다른 동네에서 여기까지 오는 걸 보면
실력도 실력이겠지만
서로간의 정과 믿음이 아니겠나 싶다.
미장원에 오면서 뻥튀기를 간식거리로 사다주고
미장원 오는 날에 맞춰
미장원에서의 점심 약속을 잡고
원장님의 친언니와도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몯는 사이.
나는 아직 그런 친분이 있는 단골 미장원은 없지만
때때로 이런 다정다감한 미장원에 와도
그 이야기 속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지만
오고가는 왁자함 속에서
가만히
그 얘기를 듣는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에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오늘 처음 간 미장원에서는
머리 염색하던 이가
항상 둘이 단짝으로 다니던 친구가
얼마전 폐암4기 진단을 받았는데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며 연신 출입문을 살피는 모습,
원장님이 일을 마치고 밤에는 공부를 한다는 얘기,
그래서 살이 빠지고
그게 또 걱정이 돼서 그이의 언니가 오늘도
직접 키운 상추랑 갈비탕을 끓여왔다는 얘기,
아플 때 챙겨주는 이가 제일 고맙다는 얘기,
1층에서부터 2층 창문을 넘어 들려오는
"딸기 사 가세요!"라는 호소력 강한 목소리에
딸기를 사가야겠다는 얘기,
직장 그만둔지 4개월 되어가는데 월요일에 출근을 안하니
일요일 밤 늦게까지 텔레비젼도 볼 수 있고
그래서 너무 행복하고 자유롭다는 얘기,
하고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한다는 얘기들이
끝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는 모습이 다를 뿐
결국 생각은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다.
보고싶은 사람 보면서
하고싶은 일 하면서
욕심 없이 살자는 그 생각...
나도 잠시 시간을 잊었다.
거기에는
미장원에 흐르고 있는 김광석의 노래도 한 몫했다.
목소리가 크고 높아서 시끄럽기도 하고.
가사가 들리지 않는 요즘 아이들의 노래였다면
기다림에 조급증이 났을지도...
김광석 그이의 잔잔하고 묵직한 음성,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들린 덕에
지루하지도 조급하지도 않고
잠시 시간을 잊었다.
탁월한 선곡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