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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수확


BY 귀부인 2022-03-29

올리브 수확



11월 한 낮의 태양이 뜨겁다.

올해는 작년보다 겨울이 늦게 찾아 올 모양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산들바람, 쨍한 햇빛. 야외 나들이 하기에 나무랄 데 없는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요르단은 우기와 건기로 나눠지기에 가을이란 표현 보단 건기의 끝자락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10월 중순부터는  우기가 시작되고 간간히 비가 내려야 되는데 이렇게나 청명한 날씨라니....

일상 생활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들이지만, 물 부족이 심각한 요르단 상황을 생각하면 우기가  늦어지는 게 걱정이 된다. 지난 수 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은 수도 암만은 모래 먼지들로 덮여있다. 목마른 길거리 가로수 잎들은 무거운 먼지를 견딜 수 없다는 듯 하나, 둘 힘없이 떨어지고 있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 북쪽 지역에 있는 성지를 다녀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마침 미국에서 선교사님 한 분이 오셔서 이틀간 동행을 했다. 그 분은 요르단에서 10년 가량 선교사역을 하는 동안 틈틈이 전국 구석구석 다니면서 성지를 연구, 답사를 하고 책까지 내신 분이다. 감사하게도 작가와의 동행이 된 셈이다.


첫 날은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데가볼리(데카폴리스)로 추정되는 6개 도시를, 둘째 날은 창세기 32장에 등장하는 마하나임, 브니엘, 얍복나루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르단 강을 건널 때 요단 강물이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여호수아3:16).... 에 등장하는 지역을 다녀왔다. 성지 답사를 통하여 성경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묵상하는 시간도 좋았지만 여정 중 베두인 가족들과의 만남과 올리브 수확 체험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성지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올리브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올리브 나무가 최초로 재배된 곳은 지중해 동쪽 연안으로 오늘날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 한다. 생 올리브는 쓴 맛이 강해 먹을 수가 없지만, 일정 기간 동안 물이나 소금물에 절이면 쓴 맛이 사라지고, 올리브 특유의 향과 고소한 맛이 살아난다. 전체 열량의 80~85%가 지방이지만 몸에 좋은 불포화 지방산이고, 항산화와 항염 성분이 풍부해 건강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아는 스페인 친구 하나는 스페인 여성들 유방암 발병율이 낮은데 실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올리브 덕분이라 했다.


올리브는 다양한 색깔이 있다. 품종에 따라 수확 시기를 결정하는데, 익은 정도에 따라 맛과 향, 식감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보통 초록색 올리브가 검정색 올리브보다 식감이 단단하고 아삭하다. 초록 올리브는 9월에서 11월 중순, 검정 올리브는 11월 중순에서 이듬해 1월 말 혹은 2월 초까지 수확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치 없이는 못살아, 정말 못살아' 라고 하듯 요르단에서 올리브는 우리나라 김치처럼 없어선 안되는 굉장히 중요한 식재료다. 매 끼니마다 다양한 올리브가 식탁에 오른다. 올리브 절임 전문 가게가 곳곳에 있고, 대형 슈퍼에도 올리브 절임 코너가 따로 있다. 크기와 색깔, 여문 정도 등 아주 다양한 올리브를

맛 볼 수 있다. 그런데 잘못 사면 너무 짜기(진절머리 처질 정도) 때문에 구매하기 전에 한 두개 맛을 보고 입에 맞는 것을 사야 한다.


올리브 기름은 만드는 과정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첫 번째 압착에 의해 얻어진 엑스트라 버진은 오일(extra virgin oil)은 녹황색을 띠며 샐러드 드레싱으로 이용한다. 가격도 가장 비싸다. 그 이후 얻어진 순도가 조금 떨어지는 기름은 퓨어 오일( pure oil), 담황색으로 투명하며 담백한 맛이 난다. 추출 마지막 단계에서는 CS2 용매 추출을 하는데 S-oil(sulfur oil)이라 하며, 염색 공업 등에서 날염제로 사용된다.


고대 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역에서 없어선 안되는 올리브는 구약 성경 창세기에도 등장한다. 노아가 홍수 이후 물이 얼마나 줄었나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 보내는데, 비둘기가 올리브 순을 입에 물고 돌아 와 물이 줄어든 것을 가늠케 하는 내용이 나온다.


11월의 요르단 시골에선 올리브를 수확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첫 날, 6개 데가볼리 중 마지막 지역으로 가기 위해 먼지나는  비포장 길을 달리는데, 한 무리의 올리브 수확 농부들이 우릴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현지어에 유창한 선교사님이 차를 잠시 세우고 인사를 건네자 일손을 멈추고 우르르 몰려왔다. 시골에서 만나기 힘든 동양인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올리브 수확에 동참 할 것을 권유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수확을 하던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모였다. 어린애들부터 어른까지 20 여명이나 되었다.


그들을 흉내내어 올리브 나무 아래에 두꺼운 비닐을 깔고 커다란 머리빗처럼 생긴 도구로 올리브 열매를 머리빗듯 긁어 내리자 통통한 올리브가 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우박처럼 쏟아졌다. 농부들은 와르르 웃으며 더 세게, 더 힘 있게를 외쳤다. 10여분 수확의 재미를 맛 본 후 떠나려하자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20여명의 사람들과 이 포즈 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어린아이에서 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얼굴이 해맑았다. 고된 노동을 하는데도 찡그림 없는 평온하고 순박한 미소가 얼굴 가득했다. 올해는 가물어 수확량이 작년에 비해 현저히 작다면서도 그들의 얼굴엔 근심 걱정이 없어 보였다. 어깨를 한번 으쓱 들어 보이며 인샬라! 신의 뜻이야 어쩔 수 없어! 했다.


자연을 어떻게 바꿔보려 애쓰기보다 그대로 순응하며 자족하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요즘 시대와는 동떨어져 보였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올해 흉작이었으니 내년에 풍년일거야 라는 덕담을 해주고 갖고 있던 사탕 한 움큼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내년엔 비가 좀 더 많이 와서 이들이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