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을 찾는 방문객들 중에 '이 나라 남자들 진짜로 4명의 부인이랑 사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슬람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나 지식이 있어 무슬림 남자들은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게 사실 그러한지 믿기지가 않아 물어 보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다른 이웃 중동 국가의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요르단의 경우, 현지 남성 압둘라(전직 공무원, 현 여행 가이드)씨의 말에 따르면 약 92%의 기혼 남성들이 한 명의 부인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오직 부인을 평생 사랑해서 라기 보단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두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4명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2명의 부인 얻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과거 텐트를 치고 이동하며 살던 유목민 시대에는 2,3명의 부인을 두어도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두 부인을 두고 한 집에 살거나, 아니면 한 건물에 사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요즘은 각 부인마다 집을 따로 사 주거나, 얻어 주어야 한다. 게다가 다른 여느 중동 국가에 비해 교육열이 높은 요르단은 자녀 교육에 열심인 편이라 아이들 교육까지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에겐 4명의 부인을 허락한다 한들 4명은커녕 2명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1명의 부인도 얻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마음만 맞으면 밥 숟가락, 젓가락만 들고 결혼 할 수도 있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남자들은 아내 될 여자에게 반드시 신부가 요구하는 지참금을 준비해야 한다. 보통 이혼을 하면 위자료조차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여자들은 결혼할 때 최대한의 지참금을 요구한다고 한다. 요즘 일자리가 부족해(청년 실업율이 30%를 웃돈다)변변한 직업을 가지지 못한 남자들이 증가하여 평균 20세 전후였던 결혼 적령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극히 일부를(시골 지역의 베두윈)제외하고 2,3명의 부인을 두는 건 대개 부자 남자들이다. 아마도 나이 든 돈 많은 남자들이 겠거니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젊은 남자도 경제적 능력이 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일 잘하고 똑똑해 남편이 총애 하는 현지인 직원이 한 명 있다. 아직 서른 살이 안되었지만 초등생 아들 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얼마 전 목요일(이슬람은 금,토 쉰다.) 이 직원이 하루 종일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한다.
"주말에 뭔 가 좋은 일이 있나 보지? "
"아, 네. 우리 형이 내일 두 번째 부인을 얻어 결혼하는 날이거든요."
"그럼, 네가 결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기분이 좋아?"
"이제 형이 두 번째 부인을 얻으니 저도 두 번째 아내를 얻을 수 있잖아요."
"네 부인이 그걸 허락할까?"
"아내에게 말은 하겠지만 굳이 허락 안 받아도 상관 없어요. 법적으로 허용되는 일이니까요."
"결혼해서 두 번째 부인을 얻으면 퇴근은 어디로 해?"
"공평하게 하루는 첫 번째 아내 집으로, 그 다음날은 두 번째 아내 집으로 퇴근하면 되요."
그의 부인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남편이, 직원의 아내가 도시락도 정성껏 사 보내고, 참하고 얌전하니 지적으로 보이던데 왜 두 번째 부인을 얻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남편의 이야길 듣고 그 부인은 자기의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얻을 꿈에 부풀어 행복한 하루 종일을 보냈다는 걸 알까? 하는 생각에 나는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부인에 대한 안 쓰런 맘이 생겼다. 아무리 종교적, 관습적으로 허용되는 결혼 제도라 지만 남편을 나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무슬림들이 4명의 부인을 두는 건 이슬람교 초창기 포교를 하면서 전쟁을 통하여 많은 남자들이 죽자 고아와 과부들이 늘어나게 되어, 생계가 어려워진 그들을 보호해 준다는 좋은 의도에서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4명의 부인을 두려면 그 조건이 각 부인에게 차별 없이 똑 같이 경제적인 지원을 해 주어야 하고, 똑 같이 사랑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물질이야 정확하게 나눌 수야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음 만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예언자 모함마드도 그것을 알았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여러 명의 부인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전시 상황이 아니지만 일반법 위에 있는 그들 종교법 상 4명의 부인을 두어도 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력이 된다면 제2, 제 3의 부인을 얻는 것에 무슬림 남자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듯 하다.
문득 30년 전 두바이에서 만난 아주머니 한 분이 생각난다. 사우디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환자로 입원한 사우디 남성과 결혼 하신 분이다. 한 건물에 살아 엘리베이터에서 오다 가다 만나긴 했지만 외모가 워낙 독특해 한국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목례만 주고 받는 사이였다. 일단 그 분 체격이 내 몸의 두 배인데, 뚱뚱하다기 보단, 운동으로 다져진 건장한 몸에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이목구비가 큼직큼직 했다. 특히 압권인 것은 그녀의 헤어 스타일이었다. 영화에서 본 클레오파트라 스타일의 숱 많은 단발머리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 더 되돌아 볼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어느 날, 건물에 달린 스쿼시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큰 체격에 어울리는 괄괄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왔다. 가능하면 자기는 한국 사람을 모르는척 하는데 새댁은 인상이 좋아 보여 인사를 한다고 했다. 그 이후로 서로의 집을 오가며 차도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아들 둘과 남편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기는 집에서
마치 여왕처럼 대접 받고 산다며 새댁도 남편한테 여왕 대접 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중동엔 남자가 여러 명의 부인을 두기도 하는데 자기 남편은 그럴 일 없다고도 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두 아내가 있는데 자기 남편은 시아버지 두 번째 아내의 아들이라 했다. 시아버지는 첫 번째 부인에게서 7명의 아이를, 두 번째 아내인 시어머니 에게도 7명의 아이를 얻어 일주일은 큰 부인 집에서, 일주일은 작은 부인 집에서 사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아버지가 큰 부인 집에 갔다만 오면 시어머니가 그렇게 바가지를 많이 긁었다고 한다. 행여나 남편이 조금이라도 큰 부인 자식들에게 뭔 가를 더 해 주진 않았는지 의심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 남편이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서로 싸우시는 걸 많이 봐서 결혼하면 절대로 두 번째 부인을 얻지 않는다고 맹세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걱정이 없다고, 그렇지만 자기는 남편이 한 눈 팔지 못하게 늘 노력을 한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 번씩 밤에 야한 옷을 걸치고 오직 남편만을 위하여 밸리 댄스를 춘다고 했다.
그땐 어리기도 하고 중동 문화도 잘 모르던 때라 그 분 이야기에 공감이 가지 않는 것도 많았다. 아무튼 그 분과는 거의 1년 간 서로 오간 덕분에 첫 해외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이후 남편을 따라 모로코로 떠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지금도 두바이에 계신지, 아니면 사우디로 들어가셨는지 알 수 없지만 70대가 되셨을 그 분이 아직도 두 아들과 남편에게 여왕처럼 떠 받들려 살면서 남편 사랑 독차지하고 계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