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나쁘란 법은 없는가 보다.
요 며칠 기분이 어째 좀 그랬는데 전혀 뜻하지 않은 횡재수가??
봄 꽃이 피고져도 큰 딸은 멀리 있어 꽃소식에 달려 와 줄 리 만무하고
남편이랑 둘이서만 새 잎 돋는걸 신기해 하며 들여다 본다.
\"그대향기 머무는 곳...\"
그 곳에는 요즘 남편이 나보다 더 오래 머문다.
생각지도 않은 분재들이 우리 곁에 왔고 봄철에 가지치기며
소나무 같은 경우엔 잎 따기를 해 줘야 하는게 많아서
잎도 시기가 있어서 급하고 철사걸이도 바빠서 연일 야간근무까지 ....
그 전 같으면 컴퓨터로 작업일지 정리나 바둑을 할건데 분재가 오고부터는
거의 매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물주기며 수형잡기를 하고
밤에는 철사걸이를 하면서 불을 밝히고 있다.
낮에는 업무시간이라 손도 못 대고 밤마다 즐거운 작업을 한다.
꽃보다 더 까다로운 분재들이라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아주 엉망이 되는 관계로
매일 들여다 보고 잡아주고 솎아 내 줘야 한다.
일을 만들은 셈이다.
그래도 남편은 조용히 알 전구로 불 밝힌 옥상에서 소나무를 마주 대하고
세상 시름 다 잊고 오로지 그 소나무랑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몰입.
남편의 모습은 몰입 그 자체.
가끔 이리저리 돌아가는 작업대를 회전 시키면서
잡을 솔가지가 자세가 맞나 ??? 안 맞나???
이 가지와 저 가지 사이에 남겨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지가위를 들고 고개를 갸웃갸웃~~
싹뚝싹뚝...가지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간
아차차차차...
혼자서 내 뱉는 아쉬운 탄식소리까지 간혹 들린다.
분명 잔가지를 잘못 자른거겠지.
나중에 굵어졌을 때 그 가지가 자리를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나무 전체의 모양이 달라지는데 잘라 놓고 보니 실수한게 보인 모양이다.
요즘 남편은 그러고 산다.
나한테 몇번이나 고맙다고..행복하게 해 줘서 고맙단다.
집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모아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산 분재들이
남편의 하루 생활을 완전히 뒤 바꾸어 놓았다.
아주~좋은 방향으로.
며칠 전에 직원이 갑자기 그만 둔다고 하는 통보를 해 왔다.
뜨악~~~
이번 달 말에 필리핀을 가기로 했는데 집 지킬 직원이 없어지다니???
의료봉사팀의 일원으로 필리핀 일주일 여행이 무산되고 말았다.
16년 근속 보너스 차원으로 의료봉사팀의 일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행이라는데 얼마나 신나 하다가 그만 울상이 될 지경이었다.
비행기 삯을 보너스로 받는 거 였는데 안 간다는 남편을 몇날 며칠 졸라서
협박하고..애교작전에...주윗분의 공동작전까지....
남편은 완강히 버티다가 드디어 가겠노라는 확약을 받아 둔 상태에서..
일이 힘들어 그만 두겠다고 하니 잡을 수도 없고 필리핀은 물건너 가고 말았다.
할머니들만 계시는 집을 완전히 비울 수도 없고 안간다고 말을 하는데
아니지..못 간다고 말을 하는데 얼마나 서운하던지..
여러 해 전부터 우릴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못 갔고 안 간 필리핀 의료봉사.
올해는 간신히 가는 구나...마음이 좀 바쁠라고 그랬었는데...
그만 마음 속 기대탑이 와르르르르.........
큰 소리내며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왕 벌어진 일 포기를 했다.
나가는 사람들한테 나쁜 인상 남겨 줄 수는 없지.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했지만 어째??
우리 욕심만 차릴 수는 없지.
에효....
외국여행 복은 지지리도 없네~~
단념에 포기까지.
그러고나니 기분은 좋아졌고 평정심이 찾아왔다.
뭐 이번에 못가면 다음에 가지 다른 곳으로다가..
그랬는데..그랬는데...
못가는 마음이 숭~숭~`바람 구멍 난 숯검뎅이 같았는데
오늘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기쁜 소식.
이번에 필리핀 못 가게 된 일 아쉽지만 나중에 딸이 있는 과테말라에 보내준단다~~
끼야호~~~~
이 무슨 대박나는 소리???
가고싶고 보고싶고 안아주고 싶은 딸이 있는 나라에요?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이야긴 줄로만 알았다.
필리핀보다 훨~~씬 먼 나라 과테말라.
딸이 있고 그리움이 가 있는 나라.
흘러가는 하늘 구름 한 조각에다가 딸한테 보내는 이야기를 싣기도 하고
창을 조용히 때리며 내리는 봄 빗줄기에 딸 보고픈 마음 전해 달라고
혼잣말 하던 날이 얼마나 많았었는데 너무너무 멀고도 먼 나라 과테말라.
막내학비며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못 갈거라 믿고 있었던 나라 과테말라.
그 나라로 보내주신다니 감사하고 또 신나는 일이다.
이런 경우엔 그냥 웃음이 나올 뿐.ㅎㅎㅎㅎㅎ.
입이 벙싯벙싯....가슴이 벌렁벌렁....손가락이 꼼지락꼼지락(딸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아하하.....
이런 일도 있구나.
즐거울려다가 망쳤다고만 서운타 했는데 이런 더 큰 즐거움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냥 위로 삼아 아시는 분들이 더 좋은데로 보내주셔려나 보다..라고.
나도 그렇게라도 위안을 받으며 애써 서운한 맘을 추스리곤 했다.
감히 그 먼 나라로 갈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전화위복은 이럴 때 하는 말이지 싶다.
새 직원이 들어오고 자리를 잡으면 딸을 만날 수 있는거다.
보내 놓고 노심초사 걱정근심이 그칠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잘 적응을 한다기에 안심은 되었지만
엄마의 입장에선 늘 미확인 유토피아처럼 딸이 사는 나라가 상상 속의 나라.
뭘 먹고 사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는지 ..어떤 집을 어떻게 꾸며 놓고 사는지..
그 궁금증이 한방에 날아가게 생겼다.
이왕이면 내년에 이쁜 애기가 태어나고 그 때를 맞추어서 가면 좋겠다.
첫 애기 때는 친정엄마가 곁에 있어줘야 안심이 될건데..
올해 보내주실 계획이시라면 내년으로 미루어야겠다.
지금까지도 잘 참았는데 조금만 더 참지 뭐.
약속만 있으면 기다림도 즐거움이지.
입덧이라도 안 했으면...
엄마인 나는 세 아이 한번도 안 했는데 날 닮지..그래주면 좋으련만.
인생이란 이렇게 가끔 뒤 바뀐 행운으로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