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히도 보여주기 싫은 듯한 서울의 눈은 주말 아침 그나마 싸라기눈으로
뿌려주고 있었다.
결코 이제는 더디기만을 은근히 바라는 세월의 흐름탓 인지라 그다지 봄을 기다리는
마음보다는 겨울다운 겨울...하얀 겨울을 흠뻑 만끽하고픈 욕심이 아직 남아 싸라기눈이
금새 함박눈으로 변해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쫑이 녀석 학교 데려다 주고 와서 산에 가자~...”
옆지기는 이 정도의 눈으로도 산비탈 응달에는 상당히 눈이 쌓여 있다고 나를 꼬득이며
등교하는 녀석을 데리고 기분 좋아라하며 나갔다.
학교를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옆지기는 김밥 한줄 떡 한팩 사오고 난 귤 다섯 개를
비닐팩에 묶어 배낭에 넣었다.
산 초입 양지 바른 곳은 생각보다 따스해 입고 온 파카가 덥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래 나서길 잘했다 생각하고 바람이 불면 찬볼을 면장갑 낀 손으로 감싸고
양지 바른 오솔길을 지날때면 털모자를 들어 지그시 얹고 아직 파시락대는 갈잎 무더기를
주어 좋은 향내를 맡아 보려고 코를 킁킁 거렸다.
옆지기 말대로 응달에는 제법 눈이 하얗게 쌓여 발밑에서 뽀드득 소리를 내었고
여러 사람들이 벌써 많이 지나간 곳에는 단단히 굳어져 빙판을 불사했다.
옆에서 짜그락 짜그락 소릴 내며 아이젠을 착용하고 용감하게 걸어가는 등산객들을
우리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빙판언덕을 산 자락에 고정되어 있는 밧줄을 잡고
시도해 봐야 했다.
난 부질없는 고생이라고 뒷걸음질 하려했고 옆지기는 도전후 성취감을 맡보라고
벌써 저만치 올라가고 있었다. 아니 웬걸 앞서가는 옆지기...밧줄을 잡고도 쭈르르
미끄러져 기웃뚱 거렸다.
“여기 이렇게 미끄러지니까~...조심해..”
“..........................!......?.....”
“......어....그래...그래..........그렇게~...”
“낼 자고나면 다리며 겨드랑이 얼마나 아플까 몰라...~...이게 무슨 고생이야...”
위를 올려다 보며 갈길이 막막해 난 연신 긴장속에 투덜대었고 옆지기는 마눌이
어벙벙 하다가 미끄러질까봐 수십년전 육군하사 최하사가 되어 마치 부하 훈련
시킨것처럼 나를 향해 소리 지르며 명령하고 있었다.
참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지만 오도가도 못한 이상황에서 그의 불호령(?) 같은
호령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우스워 웃으면 웃는다... 잘못한다... 난리가 아니다.
‘쳇, 나 한명을 두고도 저렇게 보스 기질을 발휘하고 잘 난척하고 싶을까..???’
겨우 겨우 위험한곳을 통과 하고 난후에는 수십년전의 군대 이야기를 늘어 놓으며
흥분되었다.
군밖으로 작업 나갈 때 달랑 찌게꺼리는 취사반에서 준비해주지만 밥해먹을 것은
세숫대를 가지고 나가 해 먹었다는 얘기...
넙적한 세숫대에 누른 누룽지가 얼마나 맛있었다는 얘기...
한참을 걸었을때 양지 바른 산자락에 아이젠을 파는 장사가 나타났다.
아까부터 조금가면 아이젠 장사가 있을거라는 옆지기는 “두개 주세요..”하고는
만원을 지불했다.
시범 보이랴 조교하랴 은근히 힘들었나부다....ㅋㅋ..
비탈길에 접어 들어 당장 아이젠을 끼라 하더니 이제는 눈이 쌓인 빙판으로
다져진곳만을 찾아 걷는 것이었다.
최하사가 이제는 동네 개구쟁이가 되어서 아이젠의 위력을 실험 한다며 성큼성큼
겅중겅중 야단이 아니다.
세시간을 걸었더니 배가 고팠지만 커피 한잔에 김밥을 먹자는 나의 제안을 춥다며
물리치고 언젠가 찾아 갔던 간이 산장을 찾아 참고 더 걸었다.
산장에 들어서서 도토리 묵 한접시, 막걸리 한병, 싸가지고 온 김밥 한줄을 내 놓았다.
막걸리 맛은 식혜처럼 달았고 도토리묵이랑 김밥은 꿀맛이었다.
따끈한 국물을 아쉬워 한 나에게 잔치국수 한그릇을 더 시켜 반반씩 나눠 먹자 해 다먹고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변함없이 들려오는 통키타 음악에 취해...
친구들을 못 데리고 옴을 안달복달 하며(친구들이 동조를 안해서...) 겨울산을 내려 왔다.
‘......ㅋㅋ...따라 오길 잘했네...!...겨울산!!!....’
‘.......수고 했네요~....고맙고........최하사님~...ㅎ.....’
♣지난 2월 언젠가 한때 눈을 보고파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