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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 새벽에 죽은 여자


BY 이쁜꽃향 2002-01-07

퇴근 하려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폼새가
아마 밤중에는 꽤 쌓일 듯 싶다.
전 같으면 눈 온다고 좋아서
남편과 함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칵테일 앞에 두고
라이브를 즐기며 밤을 맞을 것을
아들녀석 군인 된 후로는
날이 궂으면 영 맘이 편칠 않다.
운전병인 녀석은 차 바퀴를 붓으로 털어서 닦는 다던가...

별로 부지런하지 못한 에미 때문에
방학 때면 늘 부엌데기 신세를 면하지 못하던
착하기만 하던 녀석이
군에 가서도 고생하나 싶어
눈 오는 게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뿐
마음이 스산하기까지 하다.
창밖을 내다 보며
아들 생각에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가 왔다.

눈이 많이 오니
지하주차장 만원 되기 전에
조심하여 귀가하라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속된 송년 모임으로
년말은 우리 부부 둘 다 소금 절인 파김치가 되었었다.
하여 마지막 날은 둘만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새벽녘에야 돌아 와
어렵사리 잠이 들었다.
막 깊은 잠 속에 빠지려는데
갑자기 남편의 흐느낌이 들려 왔다.
아마도 잠꼬대인 듯 싶은데
몸까지 떨어가며 꽤 오래 계속된다.
'여보, 왜 그~래~?'
꿈에서 깨라고 그의 몸을 흔들었다.

드디어 대망의 임오년 첫 날.
늦잠에서 깨는 날 바라보던 남편이 웃으며
'있을 때 잘 해야지'한다.
나한테 잘 하라는 것인지
자기가 잘 해야겠단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아
'그걸 인제 알았어?
정말 있을 때 잘 해야 돼.
없을 때 땅 치고 통곡하지 말고'
받아 넘겼다.

열심히 청소를 하던 남편이 다시 날 향해 말을 던진다.
'새벽에 내 울음 소리 들었어?'
'으응~. 대체 무슨 개 꿈 꿨던거야?
한참을 흐느낀 거 같던데.'

남편의 꿈 이야기인즉,

여행길이었는데
차 한 대가 낭떠러지로 굴렀단다.
내려다 보니 백여미터는 됨직한 아득한 낭떠러지였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길래
자기도 내려가 보았단다.
처음에 그 차엔 분명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다.
사람들이 사망사고라고 웅성거려
대체 누가 죽었냐고 물었더니
바로 자기의 와이프였다나.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통곡만 나오더라나.
꿈에서도 자기의 실제 울음 소리가 귀에 들렸다니
심한 잠꼬대였던 거 같다.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에~그. 나 장수하겠네...하며.
꿈 이야기 끝에 남편은
'정말 있을 때 잘 해야 해'
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다음날 친분이 두터운 이웃 부부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남편은 전날의 꿈 얘길 다시 꺼냈다.

마누라의 주검을 확인한 순간
어찌나 죽은 마누라가 불쌍하단 생각만 들고
하염없이 눈물만 나더라고.
'아이들 생각은 안 나던가요?'
앞에 앉은 부부가 물었다.
그저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질않고
그동안 호강도 못 시켜 주고
이십여년을 고생만 시킨 불쌍한 마누라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더란다.

남편은 정말 꽤나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 후로,
그러잖아도 세심하고 자상하기로 소문 난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 체크 전화를 한다.
후배들은
'정말 중증이야. 못 말려.
아니 이십대유, 삼십대유?
신혼으로 착각한 거 아뉴?'라며 아우성인데
정말 눈에 보이게 신경을 쓰는 거 같다.
'언니, 꿈에 죽으면 신분 상승하는 거래요.'라며
꿈보다 해몽이 좋은 그네들의 얘길 들으면서도
아무튼 별로 기분 나쁘진 않다.
(사실 나 죽으면 보험금이 얼만데 ㅋㅋㅋ...)

신년초부터 감기 몸살로 조금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난 좀 엄살이 심한 편이라
집에 들어서면 상당히 괴로운 척 한다.
라일락님 말씀대로 오빠라고 불러주고 싶어
'이궁~오빠!
아무래도 이쁜 마누라 오래 몬살란가벼...'라고
장난 삼아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니
'왜? 무슨 일 있어?'
시외 운전 중이라며
놀란 목소리로 화급하게 전화 해 온 그에게
장난이라 하기엔 넘 미안하여
일부러 목 쉰 소리로
'몸살이 더 심해진 거 같아서..'라고 웃었더니
당장 병원에 들러서 주사 맞고 오라며
밖에서 맛있는 거 사주겠단다.

암튼 남편 꿈에서 죽어보기도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어~이, 님들아!!
님들도 남편 한 번 놀라시게 해 보시는 게 어떠신지...

올해에는 님들 가정에 모두 좋은 일들만 있으시기를
부~~자 되시기를,
모든 소망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하오며
이쁜꽃향 신년인사 올립니다.
모두들 행복하소서...

이쁜꽃향

<그간 둘째녀석이 컴을 멍구 만들어버려
이제야 왔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