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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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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뒷문을 열면...


BY 들꽃편지 2001-12-09




뒷문을 열면
앵두나무 밑에 장독이 보였습니다.

가난했지만 가난을 몰랐던
내 유년 시절은
지나고 나니 추억만 묻어 있습니다.

덜렁덜렁 거리는 창호지 문을 열면
봄엔 앵두꽃이 하얗게 피어 오르고
어디선가 매미가 무심이도 울던 여름과
가을이 오면 장독대엔 가랑잎이 서성이던...
겨울엔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내렸던 뒷마당이 보였습니다.

항상 손이 트고
볼이 후끈거리고
코를 훌쩍거렸던
불쌍했지만 불쌍하지 않았던 유년시절.

화롯불에 머리가 아프도록 불을 쬐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부실한 뒷문을 열면
하얀눈이 펄펄 내리던 동요속이였던 산골 마을의 겨울.

"퍼얼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산을 하나 넘어 학교 갈 걱정도 잊어 버렸던
불편했지만 불편한 줄 몰랐던 유년 시절.

키 순서대로 장독들을 줄 세워 놓고
밤새도록 하얀눈을 머리에 받아 이고선
아침이면 나를 깜짝 놀라게 했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이 다 갈 때까지 고향마을은 눈마을이였습니다.
산으로 둘려 싼 마을에서 갈 곳도 없고
어데 갈 줄도 몰랐던
순박했지만 순박한 게 무엇인지 몰랐던...
뭐가 뭔지도 몰랐던 유년.

아버지가 없어도 엄마가 서울로 돈 벌러 떠났어도
엄마는 언제 오시냐며 물어 보지도 못하고
말없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어쩌면
응석을 받아 줄 여유있는 어른이 없어서였겠지만요.

때가 되면 외숙모가 해 주던 밥 먹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받아 먹었던
외로웠지만 외로움이란 단어도 몰랐던 유년시절.

밖이 보이지 않는 창호지문이라
눈이오면 덜렁거리는 뒷문을 열어 보곤 했습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눈물을 흘렸는지 어쨌는지 기억은 없지만
쪼금은 마음이 헐렁거렸던 앵두나무 사이로 내리던 눈.

아버지가 없어도 엄마가 떠났어도
슬펐지만 슬픔이 뭔지 몰랐던 긴긴 산골짜기 유년의 겨울이였습니다.


지금, 뒷문을 열면...
고향 산골에서 내리던 함박눈이 퍼얼펄 퍼얼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했지만 가난을 몰랐던
불편했지만 불편이 뭔지 몰랐던
슬펐지만 슬픔이란 감정이 먼저 울지 않았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