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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68) *가족의 사랑*


BY 쟈스민 2001-12-03

바쁘다는 남편대신 운전을 하여 아이들과 함께 시댁에 갑니다.

올해도 지난해처럼 맛있는 김장을 하기 위하여 ...

그곳엔 이미 와 있는 조카들로 시끌벅적하고,
시부모님께서는 요며칠 준비하시느라 그런지 많이 피로해 보이셨습니다.

자식들 온다고 준배해두신 떡과, 시원한 배즙으로 요기를 하고서
비닐하우스 안에 옹기 종기 앉아 양념거리를 다듬으며 근간의
살아가는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기 시작합니다.

늦둥이 아들을 뒤늦게 본 시누이는 아기 키우는 재미에 한창이었고,
얼마전에 어린 아들을 먼 곳으로 보낸 울 동서는 아직도 그 얼굴에서
그늘을 채 걷어내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한 집안에서도 사는 것은 이렇게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습니다.

난 그럭 저럭 지내고 있는 것조차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울 동서는 여기 저기 아프다고 합니다.

나도 요즘 감기 몸살로 영 몸이 좋질 않았지만 나의 그런 아픔은
울 동서의 아픔과는 다른 것이려니 하여 차마 아프단 말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 조카를 보면서 얼마나 그 마음이 짠했을까를 생각하니 그 아픔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고나서인지 올해는 시누이들도 모두들 왔습니다.
먹음직스런 김장양념을 버무리면서 서로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한 가지에서 나고 자란 잎새처럼 그런 마음으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을 치워가다 보니 어느해 보다 쉽게
김장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절여둔 배추를 씻을 작정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눈을 뜨게 된 시각이 2시 30분 ...
둘러 보니 잠잠하여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어느새 두 어른들이 다 씻어 놓으셨다 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마치고 조금이라도 쉬었다가 가라는
그것은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시아버님께서는 하루 동안 애썼다 하시며 가족 모두 읍내로 나가
외식을 시켜주마 하십니다.
트렁크 가득 가득 김치통을 채워 싣고, 따뜻한 저녁을 먹으러
조금은 이른 시각에 읍내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서로 밥을 사겠다고 한바탕의 실랑이가 있었고,
다들 얼굴이 발그스레 해지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는 부모님의 자리가 그토록 따뜻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건강하신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셨으면 하는
욕심도 내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그런 것이 행복임을 알았습니다.

좀처럼 야간운전을 해보지 않아 서툴기만 한 며느리를 보내시며
몇번이나 조심해서 잘 가라고 손흔들어 주시던 그 분들의 사랑을
난 고스란히 받고 거기 서 있었습니다.

바빠서 못 온 아들을 위하여 보쌈 고기 한 덩어리를 정성으로 주셨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배즙 한 박스를 주셨지요.

이것 저것 챙겨주시는 바람에 짐이 얼마나 많던지 누가 보면
마치 이사라도 하는 듯 했습니다.
바리 바리 싸주신 사랑을 싣고서 나는 그렇게 어두운 밤길을 달려
집으로 왔습니다.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끼고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김치냉장고 가득히 겨우내 먹을 맛깔스런 김치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니 밤이 늦었고, 허리는 좀 뻐근했지만 지금 내게 온 그 사랑에
난 참 감사했습니다.

몸은 너무나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때보다도 가벼워지고
있었습니다.
가족간의 사랑은 험난한 세상에 어쩌면 가장 든든한 돌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서로 이집 저집 전화해서 하루동안 수고많았다고 토닥이는 모습에서
난 정말이지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다른날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월요일의 밀리는 차량행렬을 뚫고서 한 주의 시작을 느긋하게 보내고 싶어서입니다.

입맛없는 아침이지만 애써 그 사랑이 확인하고 싶어져서인지
어제 담근 겉절이며, 벌써 알맞게 익은 동치미, 탱글거리는 알타리무 김치를
담아내어 맛있게 아침을 먹습니다.

아이들도 맛을 아는 건지 오늘 아침엔 제 몫의 밥그릇을 거뜬히 비워내고
조금 이른 시각에 학교로, 학원으로 향합니다.
할머니께서 해 주신 배즙 한봉지씩 챙겨들고서...

사는 것은 이렇게 사랑이 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아닐런지요.

많은 일을 하고서도 이 아침에 이렇게 하나도 힘들지 않게 하루를
시작해낼 수 있는 것은 그 모두가 가족 사랑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나와, 내 아이들과, 우리 가족 모두가 그 사랑의 힘으로 하나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며 가족의 사랑으로
살아갈수가 있나 봅니다.

차창밖으로 싸레기 눈 같은 것이 따닥 따닥 부딪습니다.

약간은 을씨년스러운 아침에도 난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즐겁습니다.

그런 사랑을, 그런 즐거움을 주신 그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한 해가 다가려 하는 길목에서도 이처럼 편안함을 내게 주시는
그 분들께서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