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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보고싶은 영경이 엄마!


BY 남상순 2000-10-12

지금도 보고싶은 영경이 엄마!

잊을 수가 없습니다. 퇴직금을 받아 빚잔치를 하고 부산 시댁으로 내려갈 때였습니다. 내 사정을 속속드리 아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바로 영경이 엄마입니다. 어제같은데 어언 25년 세월이 흘렀군요. 숨막히는 고비를 지나는 동안 영경엄마는 내 인생살이의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영경 어머니! 저 부산으로 이사갑니다. 저의 큰댁 전화번호입니다. 제가 곗돈은 보내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믿고말고! 내가 남선생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 암! 믿고말고! 염려말고 가서 잘 살아요. 옛이야기 할 때가 올꺼야! 난 그리 믿어요"

영경엄마의 말에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영경이 엄마 품에서 많이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그 때는 왜 그리도 계가 성행했었는지 모릅니다. 영경엄마의 부탁으로 나는 평생 처음 계를 들었습니다. 계주가 돈 떼어먹고 달아나기 일수였고, 곗돈 타먹고 잠적하는 경우도 많았었죠. 영경엄마는 계주였고 나는 3번을 이미 탔으니 영경이 엄마는 많이 불안했을 것입니다.

내가 부산으로 가면 흔적없이 사라질 수도 있고, 연락이 된다 하더라도 돈을 꼭 부칠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영경엄마는 타먹고 가버린 나의 곗돈을 책임져야 하며, 부산까지 수금하러 올려면 차비도 만만치 않던 세월이었습니다.

나는 굶더라도 영경엄마 돈은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도 어김없이 제 날짜에 그 돈을 부치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영경엄마를 섭섭하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훗날 인천으로 다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 영경엄마를 찾아서 만났습니다. 숭의아파트에 살고 계셨고, '그 때 나를 믿어주고 힘을 주었던 것을 평생 잊을 수 없노라'고 말했습니다.

영경이는 출가했고, 할아버지는(시아버님) 돌아가셨더군요.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상태지만 지금도 나는 영경이 엄마처럼 사람을 믿어준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되뇌이고 있습니다.

세상엔 이토록 잊을 수 없고 고마운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아직 살만한 세상인것 같습니다. "믿고 말고 남선생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 이 말은 평생 내게 힘을 주는 생명언어였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너무나 애를 썼던 것입니다. 그녀의 믿음을 깨뜨리면 온 세상이 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지금은 어디에 살고 계실까?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