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68

봉숭아 물들이던 날


BY 풀씨 2000-08-01



봉숭아 꽃잎을 백반,소금,을 넣어 절구에 찧었다

막내딸 손톱에 굵은 콩알만큼 떼어 얹고

비닐을 감고 실로 동여 맸다

요즘은 이런 봉숭아 물들이기를 그냥 여유로운 시간에

옛것에 대한 향수어린 작업쯤으로 여기지만

예전 이맘때는 울타리께나,사립문 곁, 아님

장독대,나 우물곁,에 누구집 없이 봉숭아,분꽂,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일부러 씨뿌려 아침,저녁, 물주며 가꾸고 키워주는 것이

아님에도 저들끼리 봐 주지 않아도 형형색색의

꽃잎을 피우곤 했다

늘 그렇게 핀 꽃은 집안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고

놀이감이 귀했던 그 댄 방학중이라 계집애들 ?p명모여

봉숭아 꽃을 치마폭에 따서 편편한 돌위에 얹고

돌멩이로 찧어 서로 손톱위에 얹어주고 봉숭아 잎으로

돌돌감아 실로 칭칭 묶어 주곤했다

꽃물이 들때까지 열손가락을 쫘악 펴고 행여 옷깃에라도

걸려 떨어뜨릴까봐 평상위에 눕거나 앉고서 그때만큼은

도란도란 얘기들을 나누거나 손이 필요치 않는

고무줄 놀이나 깨금발뛰기등을 했었다

봉숭아 꽃잎물이 손톱에 진한색으로 물이들땐

손톱아래 보드라운 살까지 온통 불그스레 물이들곤 했다

요즘은 무색 메니큐어가 있어 손톱주변을 무색 메니큐어를

발라 경계를 지어 이쁘게 꽃물을 들일수 있어 한결

수월하다

여름이면 누구네집을 떠올리지 않아도 봉숭아 물들이던

여름방학이 생각나고 어쩌다 아파트 화단에 여러 종류

꽃과 섞여 몇포기 봉숭아가 볼품없는 꽃잎을 달고

서있는걸 보면 우리 고향에 피었던 꽃잎이 풍성한

봉숭아가 생각나서 한참을 서성 거리게도 된다

요즘 자라는 애들이야 봉숭아는 그저 꽃의 한 종류 일뿐

다른 감상이 있을수 없으리라

손톱에 그렇게 공들여 물들이지 않아도 색색의 메니큐어가

있고 광택마저 있어 멋스러우니까 애써 누가 손톱에

봉숭아 꽃잎 얹어 ?p 시간씩 참아가며 물들이려 할까

오늘 막내딸 손톱에 봉숭아를 얹어주며 봉숭아 물을

들여주는 에미야 옛날이 그리워 그냥 그렇게 해주고

싶었지만 손을 내밀고 앉은 막내딸은 엄마가 심심해서

지들 붙잡고 그러는줄 알리라

먼 훗날 이 애가 내 나이쯤 되어 혹시라도 봉숭아 꽃잎으로

물들이는 그런날이 있다면 이 애는 무얼 생각하고

할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