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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오더 선율에 실려온 추억 한 자락


BY 말그미 2001-11-22


< 리코오더 선율에 실려온 추억 한 자락 >


길지 않은 생이지만 제 생애에서
아주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한 활동 가운데 하나가
초등학교 때 리코오더 합주부를 했던 일입니다.
저는 전남 해남군 황산면의 작은 시골 학교를 다녔답니다.

당시에 리코오더 합주부의 지휘를 맡으셨던 분이
바로 제가 존경하는 스승 가운데 한 분인
송근후 선생님이십니다.
송근후 선생님과 함께 한 2년 동안의 리코오더 합주부 생활은
시골 촌구석의 작은 학교에서 살아온 제게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지요.

음악을 전공하신 선생님께서는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그래서 음악에 대해선 생소하기 짝이 없는 시골 아이들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악기가 리코오더라 생각하셨고
이를 통해 아이들의 숨은 재능을 이끌어내고자 하셨지요.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피아노는 학교 음악실에나
가야 겨우 구경할 수 있었고, 면소재지에 딱 하나 있는
피아노학원을 다니려면 집이 아주 부자이고 학원과 거리도
가까워야 했기에 전교생 중에 극소수만이 피아노를 칠 수
있을 만큼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학교에서 탄생한 리코오더 합주부는
선생님의 열성어린 지도와 아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군내 콩쿨대회부터 시작해
도내 콩쿨대회까지 나가 1등을 하며 승승장구하더니,
결국 제 1회 전국 리코오더 콩쿨에서도 1등을 하여
방송에 나가기까지 했으니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할 밖에요.^^

학교 트로피 전시장엔
우리가 따낸 트로피들로 꽉꽉 채워졌었지요.
그래 학교에선 고생했다며 하루 휴가를 내주어
콩쿨 때만 입던 노오란 합주부 단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선
줄지어 광주에 있는 어린이대공원과 백화점에 견학을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
(지금 생각하면 좀 챙피하지만, 그 시절 시골 아이들에겐 대단한 경험이었죠)
게다가 6학년 가을엔 광주에 있는 남도예술회관에서
초청연주회를 가지기도 했으니
시골 아이들에게 이런 대단한 일들이 가능할 줄은...
아마 선생님 당신께서도 예상치 못하셨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리코오더 합주부는 황산초등학교의 자랑이자,
황산면민 모두의 자랑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1등 소식을 안고 학교로 돌아올 때면
학교에서 몇 백미터 전인 면사무소 앞에서부터
축하해주러 나온 면민들이 거리를 쫘악 메우고 박수 쳐주고,
학교 밴드부가 나와서 환영 연주를 해주기도 하였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밌고, 부끄럽고, 아련한 추억이지요.

우리에게 이렇게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신 분을
강산이 열 번을 변한들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덕분에 합주부원들간의 유대감이 깊어서,
졸업 후에 뿔뿔이 흩어졌어도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왔고,
선생님의 안부를 여쭤가며 살았지요.

그러다 94년에 선생님께서 사우디에 있는 학교에
교장으로 가시면서 한동안 연락이 뚝 끊기고 말았답니다.
근 7년 동안이나 소식을 모른 채 선생님을 그리워하다가
선생님의 근황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초/중학교 동창 모임 이후
(저희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그대로
같은 중학교에 올라간답니다. 근처 다른 초등학교
졸업생들과 합쳐져서 새친구들이 생기는 기쁨도 있구요.)
아이러브스쿨에 자주 들락거리다가
우연히 초등학교 동아리 중에
'송근후 선생님을 기억하는 리코오더 합주부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눈이 확 뜨인 저는 바로 회원가입을 하고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쭉 읽어봤고, 여러 낯익은 이름들과 사는 모습들을
보다가 선생님의 연락처를 입수하게 되었답니다.
현재 용인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중이셨습니다.

당장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밤 늦은 시각이라
다음 날 오후까지 기다려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단번에 절 기억하시고 반겨주시는데,
여전하신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자니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목소리가 막 떨려서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선 마침 이번 주 금요일에
선생님이 지휘하시는 경기지역교사 리코오더 합주부의
정기연주회가 있으니 오라고 초대를 하시었습니다.
일정이 좀 빠듯하긴 했지만, 선생님을 뵐 좋은 기회였기에
바로 초대에 응했지요.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합주부 동기들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가자고 꼬시었고, 다행히 몇 사람이 시간을 내보겠다고 했습니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다들 굴뚝같지만 결혼해서 애에 매여 있다거나,
직장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혹은 사는 곳이 지방이라 너무 멀어서...
등등의 이유로 촉박한 공연일정에 맞추기 어려운 걸 아쉬워했습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졸업 후 17년 만에
개인적으론 7년 만에 감격적인 재회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금요일 오후 6시 30분, 분당의 한 대강당.
공연시간보다 일찍 가서 선생님을 미리 뵐려고
집에서 4시에 출발했는데 가는 교통수단을 잘못 알고
헤매는 바람에 도착한 시간은 7시 조금 전이었습니다.

이미 연주가 시작된 관계로 입장이 금지되어
1부 연주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그 시간의 1분 1초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1부 공연이 비로소 끝나고 겨우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지휘복을 입으신 선생님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계시더군요.
아직도 젊으신 모습에 이마가 좀 더 훤해지셨더군요.
그 뒤로 1시간여의 연주가 계속되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옛 합주부원들 셋과 선생님과의 재회는
참으로 감격적이었습니다.
두 팔로 얼싸 안아주시고 반겨주시는 선생님의 환한 웃음에
그동안의 세월이 멀리 달아나버리는 듯했지요.
20 여년 교직 생활 동안 많은 학교를 거치셨지만,
황산초등학교에서 보낸 3년 6개월이 가장 기억에 남고
소중한 기억이라고 말씀해주시는 선생님의 특별한 사랑에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찾아오신 여러 내빈들을 접대하시고,
단장으로서 공연마무리를 하시느라
차분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진 않았지만,
한정식집에 데리고 가서 따로 식사를 주문해주시고,
거기에 함께 자리한 여러분들께 17년 전의 제자들을 소개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엔 시종일관 기쁨과 감격이 넘치고 있었답니다.

몇 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사우디에 교환교사로 뽑혔을 때보다
전국 콩쿨에서 1등을 했을 때보다 더 기분 좋은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선생님의 진심어린 말씀에
다음엔 더 많은 제자들이 함께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교사의 길을 걷는 많은 분들이 옛 제자가 당신을 찾아주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하신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지요.

학교 안팎으로 수 많은 활동을 정열적으로 하시면서
사시는 선생님을 뵙고 있자니,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선생님께서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시는
비밀이었겠지요.
열심히 사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마흔 다섯의 적지 않은 연세에도 당신 자신과 가정보다는
당신이 지닌 모든 것을 꺼내어 남과 공유하고,
학생들과 나누며, 더욱 높은 목표를 세워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들 하나하나가
제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못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는
동기들, 선후배들 소식을 접하고서
정말 결혼이란 울타리에 안주해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리코오더의 맑은 선율에 실려온 추억을 통해
존경하는 선생님과 보고 싶던 동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고, 또한 결혼 이후
한껏 느긋해진 제 자신을 점검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담고 집에 오는 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서
마치 구름 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기분이었답니다.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빌며, 긴 글... 이제 마치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도 행복과 평안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