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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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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겨울아침의 회상 (9)


BY 영광댁 2001-02-01

변두리 겨울아침의 회상 (9)

벅구.

뻥새야 .
새끼를 낳은 벅구는 점점 마르기 시작하였단다.
제 몸도 추스리고 젖도 잘 나오라고 끓여주었던 명태 넣어 끓인 밥도 바라만 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았고 냄새만 맡다가 말때도 있었어.
한 두 마리도 아니고 대여섯마리나 되는 새끼를 달고 있는 에미가 그렇게 굶는 것을 바라볼 수만 없어서 벅구 한테 참 많이 물었던 것 같아.
벅구야, 밥 먹어. 그래야 새끼들 키우지.
벅구야 어디 아퍼? 말 해봐. 말을 해야 알지?
벅구야...
벅구야..

철모르는 자식이란 것은 어디까지가 동물적 본능인가를 가끔 생각한단다.
지금의 네 엄마인 나도 삶의 길 어디까지 철없이 살았을까.
외할머니에게서부터 출발하여 형제들을 비껴나와서 내 마음이 가깝다고 여긴 사람들에게,
늘 걷던 자리의 풀포기나 숱한 나무들, 나를 싸고 돌아 키웠던 바람이며 하늘이며 달과
별들에게까지 참 철없이 굴었을 거야.
그렇다고 지금도 가슴이나 머리 가득가득 철이 들었다는 건 아니란다.

그렇게 암것도 먹지 않고 눈만 휑하니 살아있던 벅구는 그래도 제 새끼들이 있는 곳에
누워 젖을 먹이곤 했어. 새끼들은 에미가 다가온 기척만 나면 우우 거리며 달려들어서
이미 늘어져서 다 나올것도 없어 보이는 젓을 빨곤 했어.
엄마는 새끼들이 밉고 벅구가 불쌍해서 부러 새끼들을 떼어놓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썼던 것 같다. 방에다 가져다 놓기도 하였다가 동생들하고 놀기도 하였지만, 강아지들이 깽깽 거리는 소리도 신경이 곤두서고 벅구가 정잿간에 서서 줄곧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만 눈을
돌려 바라보는 것도 짜증이 나서 너 알아서 해. 하곤 다시 넣어줘 버리고 말았어.

어제 돌아오는 길에 4호선 전철역 이수역에서 내려 패스를 밀어넣고 나오는 길과 마주선 곳에서 너희들만한 아이들이 상처가 꽃처럼 돋아난 커다란 액자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서 있는
그냥 돌아서서 갈 수 없는 애처러운 얼굴들을 만났단다.
아동학대라는 제목이 걸렸더구나. 한국이웃 사랑회에서 주최한다며 젊은 청년 한 명과 여자한명이 서서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단다. 엄마를 기다릴 너희들을 위하여 빨리 가야지
마음은 바쁘면서도 그 사진들 앞에 발이 멈췄고, 많이 자라나 이마 부분을 다 덮어 버린 머리칼과 눈 아래까지 온 얼굴을 다 덮은 목도리 때문에 저절로 흘러 내린 눈물을 가릴 수가 있었단다.
그래 세상은 우리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이 참 많아, 너무 많단다.
하마 짐승도 제 새끼를 땅에 부릴 때 사람의 귀에 들리는 깨갱 소리로 산고의 모든 고통을 피눈물 말아 넣으며 새끼들을 낳아 기르는데, 사랑 속에서 태어났을 것이며, 사랑 받으며 자라야 할 아이들이 어쩌자고 저렇게 버려지거나,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어야 하는 지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라니...개만도 못하다느니에 마음이 닿았단다, 벅구 생각에...
이 나이에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그래 우리 마음 모으자.
후원 회원 가입하고 왔단다.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고맙고 낯짝 없지만 작게 모은 것들이 얼마나 힘이 되겠냐만 작고 낮게 먼저 흐르자꾸나.
밥 안먹는 벅구를 어쩔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하고 뱃가죽 달라붙은 에미 젖가슴에 달라붙어
한없이 젖을 빠는 새끼들을 어쩔 수 없이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더 이상 힘쓸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것들이 어찌 그 한가지 뿐이겠냐만...

강아지들이 엄마젖에 양이 차지 않았고 많이 자랐으니까 밥을 먹기 시작하더구나.
소화가 안되는 새끼들을 위해서 벅구는 제가 먼저 깨물어 삼킨 것들을 새끼들 앞에 다시 토해 내서 새끼들을 먹이더라.
개들은 날이 궂을라치면 풀들을 뜯어먹고 사람들 앞에 그것을 개워내서 다시 먹기도 했어 . 비가 오겠구나 , 어른들은 낮게 말씀들하셨단다.
강아지가 젖이외의 다른 것을 먹고 싸놓은 똥과 오줌은 더 이상 벅구가 먹어치우지 않더구나. 냄새만 맡고 말이지.
새끼들은 참 이상도 하지, 왜 제 밥그릇에 밥을 주는데도 엄마 밥그릇에 머리를 넣을까 몰라. 벅구가 마침내 혀로 핥아 키운 제 새끼를 캉 물어 버리고 말았어.
복실복실 털이 곱고 살이 통통 오른 강아지들이 하나 둘 없어지기 시작하더구나.
보살핌의 사랑은 거기까지였어, 벅구도 더 이상은 힘들지. 그도 사육되고 있는 처지였으니.
그 한계성뿐인 벅구를 사랑했던 것은 그 애처러움 탓이였을까.
벅구 이 바보, 새끼들 다 없어졌는데 소리내어 울지도 않고 ... 이 바보.

새끼를 잃어버린 벅구는 한참을 더 밥을 마다하고 새끼들의 흔적을 ?아 코를 킁킁 거리다가 ... 마침내 털갈이를 시작하더구나.
세월이 흘러 다시 번지르르 한 몸을 한 첫배를 낳은 벅구는 그래 한뼘이나 더 자라 있었단다. 그런단다,짐승이란 첫배를 낳고 나선 조금 큰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더라.엄마도 그랬을거야.

학교에 가는 길 절반까지 따라왔던 벅구,
그래 학교 같이 데려가라 누가 그랬더라.
양방향으로 늘어진 논에 가려고 중간에 서 있다가 먼저 돌아간 발길 하나만 보고 먼저 앞서 길을 가던 벅구,
봄날 은이의 키가 벅구만 했을때 , 고구마를 먹던 은이 옆에서 봄바람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눈을 껌벅이던 벅구는 은이가 한번 베어먹은 고구마를 제가 한번 베어먹고 다시 은이가 베어먹고 그러다가 외할머니한테 걸렸겠지.
어쩌기는 ...은이 손에 들린 고구마는 그냥 벅구가 받아먹었지. 좀 혼나기도 했을거야.

벅구는 참 질투도 많았단다.
벅구집 옆에 돼지우리가 있지 않았겠냐. 그 우직스런 돼지라니.
미련한 돼지, 지지리 일어나 밥먹고 제 머리맡에 똥 싸고 그 똥 아래 누워 잠자는 돼지가
있었는데. 벅구가 밥을 안먹으니까 벅구밥을 돼지한테 부어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니니
그런데 벅구가 그 꼴은 못보는거야, 벅구 밥을 쩝쩝 거리며 먹던 돼지 코를 으르덩
대더니 콱 물어버렸어..
아, 외할머니랑 엄마는 이 편도 저 편도 들 수 없어서 감나무 밑에 서서 두 짐승을 욕했지.
코에서 피를 철철 흐르던 돼지.
꼬리 감추고 제 집에 들어가 웅크리고 들어 갔으나 아직도 눈빛이 맹렬하던 벅구.
벅구.
벅구.

1월 어느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