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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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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꽃 같던 청춘은 가고


BY 봄비내린아침 2001-01-31

난초꽃 같던 청춘은 가고,,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난초꽃 같은 분이셨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그리고 무언가를 열망하듯 반들반들 동그랗던 큰 눈..

치마정장에 광이나는 구두를 신고 늘 손에 먹을것을 잔뜩 들고는 유년의 내 집에 손님처럼 들러시던 분..

근데, 앙상하니 뼈만 남아 곧 어스러질 것 처럼 누워있는 그녀를 보며, 난 그녀의 머리맡에서 우습게도 성급한 내 노년을 그려보았다.

삐죽이 자라나오기 시작하는 흰머리와 누군가 들여주었는지 연갈색으로 물들인 윤기빠진 짧은 머리가 얽힌 그녀의 인생을 말해주듯 꼬이고 끊어질 듯도 하다..

"아이구, 빨리 죽어야 하는데.."
그녀를 만나러 가는 차안에서 연신 울 엄마는 눈물을 찍어내신다.

한참을 못 보았기에 나와 동생은 의무적인 느낌으로 설렁대고 따라나섰는데..

나, 그녀의 냉한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흠칫 뒤로 발을 빼고 싶었다.

나, 왜 여기에 왔을까??

차라리 보지말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언니,, 빨리 죽어.. 차라리 빨리 죽어라.."
엄마는 거기서도 자꾸 자꾸 그 소리만 한다.
그 소리 조차도 그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것인지.
그냥 엄마 입과 내 얼굴, 동생과 동생이 끼고 온 동글동글한 녀석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힘없이 웃으신다.

"나, 빨리 죽어야 하는데.."
"나,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문을 닫고 엘레베이트를 타면서도 나는 그녀의 말을 자꾸 자꾸 씹었다.

반갑게 전화 한통이 왔는데,,
거기, 웃지방에는 지금 펑펑 소담스런 눈이 온다고 한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
근데, 왠 눈..
내맘처럼 인상만 잔뜩 구긴 하늘이 울음을 금방이라도 쏟아낼듯 내 머리꼭대기위까지 내려와 앉아있다..

늙는다는 것,
병든다는 것,,

지금도 속에 커다란 돌멩이 하나 걸린듯 마음이 엄청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