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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내 가여운 사랑


BY allbaro 2001-11-07

당신이라는 내 가여운 사랑

상당히 어색하군요. 이제 새로운 서식지에 짐을 풀고 고단한
팔 다리가 쉬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두뇌가 지향하는 바
를 따르자니 팔 다리에게 많이도 미안합니다. 부지런한 아우
들이 아침부터 이러저리 고생을 많이 하여, 그다지 바쁘고 힘
든 일도 없었는데, 늘 팔을 고이던 책상을 앞에 두고 컴퓨터
의 전원을 넣고, 오디오를 설치하고 4개의 스피커가 모두 이
상이 없는지를 확인하고서는 그저 의자에 깊이 몸을 눌러 버
렸습니다. 의자와 함께 땅속으로 가라 앉는 느낌입니다. When
I need you 라고 절규하는 Celine Dion의 뜨거운 음성이 새로
운 공간의 창가에 머무릅니다. 네 지금 당신이 참 많이 필요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대충 짐을 풀고 고기와 숯을 사다가 불을 피웠습니다. 아직은
그런대로 야외의 별식을 즐길만 합니다. 이내 생명을 얻어 살
아오른 오렌지색 불꽃이 고기를 핥습니다. 기름이 떨어지고
불꽃은 높이 솟아 오르며 춤을 춥니다. 동그랗게 앉은 아우들
의 얼굴도 오렌지색으로 일렁입니다. 불꽃은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 있대지? 조용히 불꽃에 집중하는 시선들입니다. 아마
도 작은 상념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 마다의 손에
잡히지 않는 현실들과 저마다의 Cadet Blue 빛 근심과 아직
말하지 못한 그늘진 이야기 들이요.

몇 잔의 소주가 돌아가고 불에 익은 고기는 맛이 배이기 시작
합니다. 와아아~ 멋지네요. 즐거운 미소를 띤 아우들의 머리
뒤로 단풍이 너울거리며 쉬임없이 내려 옵니다. 너 말이야.
오늘 자세히 보니 예술이다. 숯불에 비친 얼굴은 일렁이고,
가을 바람은 메마르고, 낙엽은 뉴우튼의 법칙에 따라 우아한
낙하를 하는구나. 그렇지? 잔을 들 때마다 머리위의 별과 눈
이 마주칩니다. 한 결 같은 별자리이고 투명한 늦가을의 밤하
늘입니다. 자아 마시자구, 그동안 참 격조 했지? 그래도 불민
한 형의 이사짐이라구, 너희들이 애면글면 매달려 주었구
나... 고마워.

조금 취한 아우가 이야기 합니다. 형 첨에 되게 이상 했던 것
아세요? 뭐가? 젤 친한 친구가 말하기를 이러저러한 형이 있
는데, 나를 알아준다. 그리고 이야기가 잘 맞고 오늘은 어느
Bar에서 처음보는 술을 마셨다. 그래 뭐하는 사람인데? 음 직
업은 없어. 그러니 무슨 사교집단의 사람인가 했겠구나. 하하
하. 지난번 불우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형을 보고 아하! 이런
분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음주에 우리 애인이랑 함께
올께요. 그래? 빨래꺼리 많이 모아두마. 어우~ 안되요. 우리
애인 귀한 여자란 말예요. 그럼 델구 오지마, 하나도 안궁금
해. 하하하... 웃음이 작은 고기판 위를 떠오르고 연기는 맑
은 가을의 밤하늘로 오릅니다. 그리고 낙엽은 계속 엿듣기라
도 하듯이 우리의 주위를 Slow Motion으로 조용히 날립니다.
마치 운치 가득한 낙엽의 비라도 나리는 듯 합니다.

먼곳 중부고속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지납니다. 뭔가 가지 않으
면 안될 사연들을 지니고 바람을 가르며 지납니다. 우리도 우
리의 길을 갑니다. 아닌 듯 하면서도 가지 않으면 안되는 필
연의 연속입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심쩍기도 하고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은 용기를 내고 또 어금니를
무는 결심을 만들고 새로운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어
차피 비현실적인 삶이야. 나의 라이프는 일관되게 설명하기가
어려워. 아니 어쩌면 간단한 삶이지만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
은 것인지도 모르지. 나는 배제되어 있기두 하고, 지나치게
깊숙히 연관이 되어 있기도 해. 그런 것은 누구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 행, 불행의 결정도 결국 자신의 마음에 달린 것
이라고 생각해. 누구나가 그런 것쯤은 다 알아! 라고 이야기
하지만 결국 그들은 진짜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자 생각해봐. 아침에 학교를 간다. 늘 지하철을 탄다. 그러나
마침 가는 길에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탈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대로 정류장을 지나쳐 지하철로 간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떤 맹목적인 대상과 마주치기도 한다. 말을 걸고 싶다. 나
란 사람이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고 웅변이라도 하고
싶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그
녀가 내리고, 그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교문앞
에 선다. 친구들을 만난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까
맣게 잊어 버리고 지극히 사소한 일들에 다시 마음을 기울인
다. 결국 이야기는 집에서 출발하여 전철을 타고 무사히 학교
에 도착했다. 그것이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에도 수 많은 드
라마가 존재하고, 드라마가 생길 뻔 하였고, 무한한 가능성만
내재한 채, 생겨나지 않고 잊혀진 드라마 되고 마는 것이지.

결국 남은 것은 일상의 수 많은 기회와 이야기 꺼리중에 빙산
의 一角(일각)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가려진 빙산의 多角(다
각)도 무의미 한 것은 아니야. 그것들이야 말로 우리가 진실
로 바라는 것들일 수 있지. 우리의 인생이 소심과 변덕으로
가리워 질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닌 것은 아니야. 차라리 그것
들이 좀더 진실한 우리지. 그렇게 우리의 삶은 뭉그러져 흘러
가는 것이야. 물론 용기를 내어 어떤 것을 용감히 선택한다면
그때부터 더 많은 고민과 인내를 삶의 원료로 삼아야 하겠
지... 삶은 대부분 에너지 등급이 매우 낮은 낡은 소형차에
다름 아니니까...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진지함에 대한 이야기이고, 하나밖에 없는 삶이니까, 좀더 자
신을 소중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랑도 줏대있게, 적어도
내가 마음을 허락할 만한 그런 사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였
다. 그러므로 나는 쉽게 포기 하지 않는다는 그런 강인함과
때로 필연적인 포기에 대한 유연함을 가져야 하겠지. 어차피
선택은 매 시간, 아니 매 초마다 우리에게 주어져, 하지만 매
번 하나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지. 시간은 때로 차가워.
얼마나 깜짝 놀랄 만큼 낯선 차가움으로 다가오는지 몰라. 모
닥불이 사위어 가고, 이야기는 바닥으로 낮아 지기만 합니다.
가슴의 맨 아래쪽에 밀봉 되어 있던 이야기들이 농밀한 향기
를 지닌 채 항아리에 담아져 나옵니다.

또 얼마나 당신과 멀어 졌는지 모릅니다. 스칼라든 벡터이든
당신과 실질적인 거리가 한 참이나 멀어졌슴은 분명하게 감지
합니다. 내가 이사를 하든, 고기를 구우며 오렌지색 불꽃에
그을리던, 마시는 소주잔 너머로 얼마나 아름다운 낙엽이 지
는지는 당신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울하거나, 때로 즐겁거나, 술에 취하면 늘 떠오르는
그 얼굴은 나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어느 모
질게도 그리운 밤, 다른 세상으로 뛰어 건너가 버리고 싶을
때에도,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오직 당신의 Steel Blue 로
공간에 인물화 처럼 멈추어버린 미소입니다. 아마 당신은 내
가 당신의 미소를 아직도 쥐고 있는 공허함을 모를 것입니다.
어쨋든 우리는 확실한 타인이니까요. 많은 부분 함께 하였다
고 하지만, 결국 알 수 없는 일부는 그렇게 가슴에 묻어 두어
야 하겠지요. 다시 가슴속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이라는 내 가여운 사랑을 생각하면 푸른 그리움의 향기가
코끝에 머무릅니다.

조금 더 외로움이 짙어졌으므로, 오늘 밤은 그다지 많은 꿈을
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여 피곤함과 비례하여 더 많은 잔을
기우렸습니다. 아무런 꿈도 없는 백지 같은 밤이었으면 합니
다. 새벽이 창가에 다가와 창을 두드릴 때까지, 혼절한 듯 그
렇게 이 밤엔 꿈마저 깊이 잠들었으면 합니다. 햇살이 잘게
쪼개어지는 맑은 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는 무지개 송어
처럼 유유히 흘러 가 버리길 바랍니다. 그래두 당신 잘 자요.
그냥 진공속의 마음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술이 많이 취했기
때문이니까. 마음에 둘 것은 없어요. 늘 그런 것 잘 알잖아
요. 나는 당신의 행성과 아주 먼곳, 그러니까 96. 54. 76
.12. 31. 에 있답니다. 오늘 당신의 눈망울은 유난했어요.

아니요. 다시 말하지만 마음에 두진 말아요,
결국 우린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측백나무 숲을 따라간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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