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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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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실유감


BY 솔바람 2001-01-31

모처럼 작은아이만 데리고 서울 나들이 길에 올랐다.
일요일 오후라 김천역은 혼잡했고 당일의 상행선은 모두 매진되고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입석표를 샀다.
도리 있나. 한 번 나선 길인데....
혼자라면 몰라도 두 돌 짜리 아이 때문에 내심 불안했지만, 한시간 동안 타고 온 버스를 다시 타고 되돌아 갈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석표를 사서 개찰구로 들어가기에 난 좀 덜 복잡한 곳에 자리잡기로 마음먹고 앞쪽으로 걸어나가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이윽고 열차가 들어 왔는데 우리가 선 자리에는 특실표시의 열차 칸이 멈춰 섰다. 하필 왜 특실 앞이람....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다음 칸의 승강구로 달려가 열차에 올랐는데 서있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고 빈자리도 간혹 있었다.
열차 칸의 제일 구석자리 뒤에 신문지를 깔고 아이와 둘이 앉아서 가기로 했다.
열차가 출발하고 한참 후, 두 서너 개의 역을 지난 뒤쯤 아이는 일어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놀기 시작했다.

잠시 뒤 차장이 지나가다가 아이를 보며 앞에 앉은 아저씨에게 닿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곤 앞의 아저씨에게 오늘 차가 무척 복잡하니까 양해해 달라고 하는 거였다.
순간, 나는 몹시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며, "아이가 뭘 잘못했나요?"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아이가 조심하라고..." 말을 얼버무리며 차장은 지나갔고, 나는 앞의 아저씨가 무슨 특별한 사람인가? 똑같은 표를 사고도 좌석이 없어서 몇 백원 덜 주고 탔을 뿐인데 왜 무임승차한 승객 대하듯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기분은 점점 나빠져서 나는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 냈다.

아이에게 책도 읽어 주고, 노래도 부르고, 차가 빨리 안 간다고 투정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얘기도 해가며 몸살을 앓다보니 어느덧 수원.
수원에서는 자리가 많이 비게 되어 우리는 중간쯤으로 걸어가서 좌석에 안았다.
이젠 더 이상 탈 사람이 없겠지.
그런데 이게 웬 일! 좌석에 앉아 우연히 앞을 바라보니 특실 2호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그제야 모든 상황을 깨닫게 된 나는 그만 스스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그 차장 아저씨는 오히려 우리를 봐 준거로구나. 아이가 있어서 특별히 생각해 준거였구나........

작은 아이 네 명이 모두 자리를 차지한 채 하고 싶은 대로 장난치며 가는 특실에서 호화로운 좌석들을 둘러보며 누구에게랄것 없이 마구 욕을 하고 싶어졌다.
왜 특실을 만들어 놓은 거지?
차라리 장애인석이나 경로석을 만들던지..
빼꼭이 들어찬 서민칸을 뒤로하고 특실에서 여유롭게 앉아 가는 건 무슨 취미냐.
여기에서도 빈부격차를 느껴야만 하는거라니.

이를 악물고 서서 홍익회 밀차가 올때마다 비켜주느라 몸을 비틀고, 잡을 곳도 없이 흔들리며 가는 저 일반칸의 사람들과 이곳에 앉은 사람들과는 뭐가 다른거냐.
차라리 새마을호를 탈것이지.
여기가 일반칸이라면 오륙십명의 사람들이 더 편히 갈 수 있을 것을....
나처럼 아예 몰라서든지 아니면 정말 뻔치좋은 사람 아니면 좌석표 없이 들어서지도 못하는 특실은 마냥 호화판이고 돈 많은 집 어린 아이들은 머릿수만큼 자리 차지하고 가는 그 불합리에 갑자기 짜증이 밀려 들었다.

**기차 타본지가 꽤 오래 되었네요. 93년 겨울 이야기 입니다.
요즘도 기차는 여전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