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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들이


BY 갈뫼 2001-10-27

길모퉁이에 황토 먼지를 고스란히 얹고
쪽마루에 검불이 바람따라 쓸려가고
싸릿나무는 비슴듬이 돌담장에 기울어진채
마당이라야 손바닥 만 하고 찌그러지고 때묻은
노란 양은 세수대야가 그나마 마당의 허허로움을 메워줍니다

길떠나고 싶어서
아무곳에나 떠나고 싶어서
국도를 따라 이렇게 온 곳이 지명도 모르는곳에 왔고
한적한 곳 을 가리고 가려서 온곳이라
요즘 보기드문 풍경하나 건졌습니다
초가집은 아니지만
싸릿나무로 얼기 설기 울타리 세운것도
마당이라고 이름지어진 손바닥만한 곳에 그래도
절구통이 파란 이끼가 낀채 자작하게 물을 담고 서있고
노란 양은세수대야는 시커먼 때가 끼여서 본 모습 상상키도 어렵습니다만
그런 풍경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참 많이 봐왔던 탓 일테지요
다만 서운한건 이웃이 없이 뎅그마니 혼자있는 집이라는 거지만

가을이 한적한 마당에 깨끔발로 머물다가 빠르게
스쳐갑니다
해가 기울고 먼지쓴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사방 휘휘 새삼 돌아보다가
한평 남짓한 터밭이 눈에 띄었습니다
집 뒤란 으로 나가는 길인듯 엉성한 판자문이 있기에
문이 아니더라도 다 보이는 손바닥만한 밭엔
영양이 부실한 채소드리 드문 드문 힘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부추는 하얀 꽃을 매달고 가지는 끝물이라 손가락만한 열매를 달고
있고 고춧대는 거의 말라있습니다
배추는 벌레구멍이 보이고 무우는 아예 뿌리조차 들지 않았나 봅니다
이런 밭 구경도 예전에 많이 보던 모습입니다
무공해로 농사짓던 옛날에 말이지요

어디서 두엄냄새가 나는가 했더니
내가 뒤란쪽 허술한 창고거니 하고 기대선 곳이
변소 였나 봅니다
이런 구조도 많이 본것입니다
이 집에 없지만 변소와 이어서 소 외양간이 있음직하고
외양간 담 모퉁이쯤 땡감이나 단감나무 한그루쯤은 으례히
서있었지요

아직 주인은 들에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단으로 들어와서 참 많은 것 을 보고갑니다
차속에서 매실음료하나 들고 와서 살며시 마루에 두고갑니다
소박한 살림에 군더더기 없는 삶
주인은 아마도 욕심없는 청빈한 삶을 사는 사람같기만 합니다

억새가 나부끼는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노을이 지는 서쪽하늘을 봅니다
참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난 또 회색빛 도심으로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