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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46


BY 녹차향기 2001-01-21

오늘은 일년에 한번 뿐인 시어머님 생신,
설 명절과 날짜가 너무 가까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한분 뿐이신 시어머니 생신인데...
어제부터 장을 봐 오고, 늦게까지 손질하고, 다듬고
오늘 아침은 서둘러 음식 장만을 했어요.

어머님은 그런 며느리의 모습이 흐믓하시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하셨지요.
"됐다, 그만저만 해 두고 쉬지 그러냐?"
"예. 김만 좀 재워둘게요."
"힘든데.. 뭘 이것저것 그리 많이 하나, 성가시게...'
"하나두 안 성가셔요. 재미있는 걸요."

사실 손님들이 오셔서 잘하지 못하는 음식솜씨지만 맛있게 잡수시고 더 달라고 청하고, 어떤 음식이 입에 딱 맞는다고 칭찬해 주면 그걸루 일한 보람이 팍팍 느껴지잖아요.
더구나 저희집엔 오실 손님 또한 별로 많질 않아요.
어머님의 여동생이신 시이모님내외분과 그시이모님의 아들내외와 꼬마들 뿐이거든요.
외삼촌 조카분도 빠지지 않고 오셨는데 볼일이 있어 참석을 못하셨지요.

갈비니, 불고기니 하는 음식은 안키로 하고, 어머님은 아구찜을 상에 놓자고 제안하셨지요.
"어머님, 근데 저 결혼해서 어머님이 해 주신 아구찜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 하실 줄 아세요?"
"그럼, 먹어 본 음식인데 왜 못하겻냐?"
"그래구 아구찜은 좀 특별한 음식 같아서요..."
"자신있응께 걱정마라.."
어머님은 한본도 해 보신 적이 없는 음식이지만 용감무쌍하게 도전장을 내셨지요.

하지만, 새벽에 잠에서 깨었는데 갑자기 잘못 만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셨대요.
결국 아침메뉴로 우리식구끼리 먼저 아구찜을 해 먹었어요.
테스트용.
아구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낸 후, 콩나물을 삶은 전골냄비에 갖은 양념을 하며 아구를 넣어 볶아 마지막에 물에 녹인 전분가루를 살짝 섞으셨지요.
결과요????
무척 궁금하시지요?

"할머니, 이 콩나물 왜 이렇게 맛있어요?"
생전 처음 아구를 먹어보는 큰아들녀석 할머니 기분좋으시라고 너스레를 떨며 아침상인데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잘 먹었지요.
작은애도 할머니가 발라주시는 생선살을 넙죽넙죽 먹었구요.
그만 흐믓해 하시는 어머님.
"꼭 전문점 아구찜 같으네요. 3만원 벌었다."
"그치? 참 맛있지? 아구찜이 뭐 별거냐?"
생전 처음 해 보신 솜씨라는 그 말씀이 사실일까? 아닐까?

12시 정각 시보에 맞춰 시이모님 일행이 오셨지요.
싹싹한 시이모님 며느리는 저와 형님, 아우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함께 부엌에서 남편들 흉봐가며 상을 차렸어요.
얼마나 고마운지요.....(친동서가 없는 저는 그 아우가 꼭 친동서만 같다니깐요.)
맛있게 드시고 재미있게 지내시다 돌아가셨지요.

손님이 돌아가신 후 집안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침나절 할머니께 선물대신 편지 드린다고 몇자 적던 아이들이 할머님께 예쁜 편지봉투를 건네겠지요?
자리에 앉아 편지를 읽으시던 어머님은 아이들을 부르시더니 와락 껴안으시며 우셨어요.

편지 1 (큰애)
할머니께,
할머니,우선 생신 축하드려요. 생신인데도 오천원, 만원짜리 선물 하나 못해드려서 죄송해요. 신기 편한 슬리퍼 사려고 했는데 좋은 게 없어서 못 샀어요.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 요새 할머니하시는 일이 자꾸 늦어져서 속상하시죠? 그렇게 걱정하시다가 병이라도 나시면 어떡해요? 그냥 맘 편히 가지세요.
작년에 할머니께서 들어오신다는 소릴 듣고는 너무 좋아서 전날밤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벌써 가신다니까 정말 섭섭새요. 제가 할머니 장사 개업하고 나면 많이 갈게요.
할머니, 사랑해요. 생신축하드려요. 그리고 오래 오~~래 사세요.

편지 2 (작은애)
할머니께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그리고 생신 선물 안 사서 죄송해요. 할머니, 할머니가 5월달에 오셔서 좋았어요. 할머니 새 일 때문에 아프시잖아요. 신경 많이 쓰지 마세요. 만약에 일찍 가게 가시면 못봐서 섭섭해요. 할머니, 할머니는 비행기도 잘 접어서 날리시는 걸 보고싶은데 이사가면은 못 봐요. 할머니는 저보다도 글씨는 잘 쓰시잖아요.
할머니 이사 가셔서도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꼭이요!

편지를 다 읽으시고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같이 울었어요.
녀석들.... 속으론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고맙더라구요.
이렇게 멋진 아이들 있는 분 계셔요???
ㅋㅋㅋㅋㅋ

대한민국의 첫명절이 다가오는데, 다들 힘내시고,
열심히 일하시고, 씩씩하게 돌아오세요.
명절 = 아줌마의 죽음
이런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그 날을 위해!!!
모두들 좋은 밤 되시고, 고향길 안전하게 잘 다녀오세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