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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한 번 들어볼래?'


BY ns05030414 2001-10-27

여편은 기가 막혔다.
이 남자가 정말 자기 남편이 분명한 지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을까?
"**년, **년,......"
남편은 분명히 그렇게 꿍얼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귀를 의심하였다.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여편의 의심을 씻어 주기 위해서 였을까?
남편은 다시 한 번 꿍얼거리고 있었다.
"**년, ......"
여편은 기가 막혀 대꾸할 말을 잃었다.
얼떨결에 당하고 끝났다.

여편에게 서로 경어를 사용하자고 제의한 것은 남편이었다.
여편도 그 것이 좋다고 동의했다.
몇 년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초등학교 동창끼리 만났으니 언어에 각별히 신경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여편은 남편에게 깍듯이 경어를 썼다.
그렇게 하고선 남편은 여편에게 반 말이었다.
다 큰 어른에게 말투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웃으운 일이어서 여편은 모르는 척 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문제 삼을 일이 어디 한 둘이랴.
여편은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남편이 사용하는 언어에 상관없이 자신의 언어를 선택하기로...
언어는 인간의 품위를 결정하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했으니 되도록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기로...

여편은 부부싸움을 해도 목소리의 톤을 높이지 않는다.
화가 날 수록 여편의 목소리는 낮아지고 침착해 진다.
평소에는 남편에게 어리광 섞어 반 말을 하기도 하지만 싸울 때는 평소보다 더욱 깍듯한 경어를 쓴다.
성미가 급한 남편은 이런 여편과 말 싸움 상대가 될 수 없다.
화가 나면 버벅거리는 남편의 말투는 화가 날 수록 또박또박 느려지는 여편의 말투를 당해 낼 수가 없다.

부부란 살다보면 의견 충돌이 없을 수가 없다.
싸우다 보면 부부마다 부부싸움의 패턴이 정해지기도 한다.
남편과 여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번에도 그랬다.
"**년, **년, ..."
남편은 또 욕설을 입에 담았다.
그 동안 남편이 사용하는 언어에 상관없이 여편은 언어의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몇 번의 부부싸움은 그래서 남편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남편이 욕설을 입에 담으면 여편이 입을 닫았으므로.
번번이 남편에게 당하던 여편은 화가 났다.
너무도 화가 나서 품위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편은 품위를 멀리 내 던지기 위해서 숨을 골랐다.
깊이 들이 쉬고 천천히 내 쉬고...
다시 깊이 들이 쉬고 천천히 내 쉬고...
그리고 한 음절, 한 음절, 힘을 주어 씹어 뱉 듯이 말했다.
"야,이 남편네야, 너도 한 번 들어 볼래?"
처음으로 여편의 입에서 '너'라는 단어를 들은 남편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흘렀다.
"너도 내가 무슨 놈, 무슨 새끼 할테니 한 번 들어 볼래?"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더 험한 말을 직접 입에 올릴 필요 조차 없었다.
남편은 풀이 죽었다.
여편의 품위는 그리 멀리까지 내 던질 필요도 없었다.
살짝 던지는 시늉으로 남편을 길들이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여편은 섭섭하기까지 했다.
사실 여편은 남편보다 뛰어난 언어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여편은 그 능력을 과시해보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충분한 명분만 주어진다면......
여편은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언어인 욕을 제대로 구사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모르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