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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담그기는 왜 이렇게 손에 안 익을까


BY 칵테일 2000-10-05



김치담그기는 왜 이렇게 손에 안 익을까



내가 처음 김치를 담아본 게 언제던가.

결혼 전에는 회사생활하느라고 전혀 살림을 익힐 새가 없었다.

우리나라 무역의 르네상스시절이라 할 수 있는 80년대 초반에 무역회사를 다녔으니 일은 어찌나 많았던지.

어쨋든 나는 북한의 새벽별보기 운동을 몸으로 실천하는 생활을 거의 하다시피해서 집에서는 대부분 잠만 잤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김치를 담아본 건 결혼하고 난 후.

그것도 팔자겠지만,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나는 허니문베이비를 가졌고, 입덧은 또 왜그렇게 심했던지.

내가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입덧으로 헛구역질을 해가며 안해본 김치를 담그려니 정말 고역이었다.

요리책을 펴놓고 요리책대로 시늉을 하긴 했었는데, 간을 볼래도 무슨 맛이 어떻게 나야 이게 제대로 된 것인지를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었다.

그래도 그렇게 몇년 착실히 김치를 담가보니 나름대로 이력이 나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쉽다는 나박김치는 영 담을 적마다 맛이 다른 거다.

도대체 어떤 게 알맞게 맛이 든건지, 매번 다양한(?) 맛이 나오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다고 수시로 반찬으로 담가먹는 것도 아니고, 제사때나 명절때 겨우 쓰려고 담그는데 맛이 그 모양이니 영 찜찜할 수밖에.

나는 얼마전부터는 아예 꾀가 나서 포기김치는 그야말로 '포기'하고 사먹는다.

농협 김치를 하나로클럽에서 사다 먹거나, 농협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는데 맛이 정말 '끝내준다.'

내가 담그면 죽어도 그 맛이 안 나올 거 같아서 얼씨구나하고 사 먹는다.

게다가 우리 집 세식구는 전부다 김치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야말로 식탁에 모양으로 김치를 놔도 될 정도다.

남들 김장김치할 때 우리집은 단 3~4포기로 한 겨울을 난다고 그러면 다들 뭐 먹고 사냐고 그런다.

그런데도 우린 정말 그 정도로 충분히 김치가 해결된다!

나나 남편은 익지 않은 김치는 아예 손대지도 않고, 아이는 김치볶음밥이나 해야 겨우 김치를 먹는다.

나도 반찬으로 김치를 집어먹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내가 김치를 처음 먹기 시작한 것도 중학교 시절때인데, 초등학생인 아들 녀석이 김치를 먹는 걸 보면 내 눈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괜히 중학교때부터 먹었나. 하두 애들이 김치도 못먹는다고 놀려대서 체면때문에 억지로 먹기 시작한거지, 아마 놀리는 애도 없었다면 난 아마 아직도 김치 모르고 살았을 지 모른다.

이번 일요일에 시할머님 기제사가 있어 손주며느리인 내가 그때 쓸 나박김치를 담궜다.

조금 넉넉하게 담구기는 했는데, 과연 시댁에 갖다주고 남은 나머지를 우리 식구가 먹어서 없앨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먹어볼 것도 없이 잔손질이 많이 가는 김치를 아직은 '반 식량'이라고 사람들은 그러는데, 왜 나는 김치가 싫은 걸까.

특히나 물김치는 아예 입에 대고 싶은 생각이 안드니, 내 입맛이 이상한 것인지 물김치가 이상한 건지?

다른 건 그래도 살림하면서 어느 정도 다 손에 익어 이제는 어려울 게 없는데, 아직도 나에게는 김치담그는 일만큼은 골머리가 아픈 일거리임에 분명하다.

내 제삿상에는 나박김치고 뭐고 올리지 말라고 며느리에게 유언을 단단히 해놓던가 해야지, 원.

나중에 얻게 될 내 며느리도 나처럼 김치 담그는 거 힘들어하면 그냥 사먹거나 아예 먹지 말라고 일러줘야지.

아~ 김치는 먹는 것도, 담그는 것도 정말 힘들어!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