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정부가 자녀 1인당 출산 양육비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79

나의 길(48) *여자라서 행복하다...*


BY 쟈스민 2001-10-25

그녀의 집에는 그릇들이 참 많다.
그건 아마 오래전부터 그릇집이 그 여자의 참새방앗간이
되어버린 탓일게다.

그렇게 만나 한 식구가 된 그릇들은 저마다 가지런한 자태를 뽐내며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다른 모양새의 삶을 살아간다.

머그잔만 해도 들꽃무늬가 그려진 것, 아무런 장식이 없이 깨끗한
아이보리 잔, 아주 화려한 과일무늬잔, 정렬적인 꽃무늬잔 ...

밥그릇도 야생화가 그려진 것, 작은 장미무늬가 보일듯 말듯 한것,
테두리에 깔끔한 줄무늬가 둘러진것 ...

유리잔은 은은한 보라빛, 투병한 화이트 잔, 크리스털 등등
빼곡히 들어찬 그릇장에 이젠 더이상 빈 자리가 없는 듯 하다.

그 여자는 그 그릇들을 닦고 또 닦는다.
마음을 청소하듯 그렇게...

가만히 바라다 보고 있으면 저마다 다른 삶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우리네 삶이 담겨져 있는 듯 하여 정겹다.

커피잔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매일 커피만 마시고 살 사람처럼
커피잔만 보면 예쁘다 한다. 그래서 또 갖고 싶어 한다.

아무도 못말리는 그릇 욕심을 그래도 이즈음엔 한동안 잠재우며
살았던 것 같다.

은은한 브라운톤의 유리장 사이로 보이는 그 그릇들을 바라다 보는
시간에 그녀는 삶에 어린 추억 한장을 꺼내어 보기도 한다.

그 그릇들은 모두 한때 그녀의 마음을 붙든적이 있는 것들이어서
그녀에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시집올 때 그녀에게는 챙겨줄 친정엄마도, 언니도 없어서인지
달랑 홈세트 하나만을 마련하기도 버거웠던 시절에 비하면
오늘날의 그녀는 참 부자가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골라낸 것들을 메만져 볼 수 있는
마음의 부자인 것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좀 따뜻해 보이는 머그잔 가득
넉넉한 커피가 좋고 ...
무더운 여름날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잔에다
찰랑거릴만치 아이스커피를 즐긴다.

그리고 술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예쁜 와인잔이라도 대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분위기에 빠지고 싶어 한다.

삶이 지루해 보일 때 가끔씩은 쨍그랑 자축하는 축배를 들기도 한다.

언젠가 그녀는 도예촌엘 다녀온 적이 있다.
천편일률적인 반듯함은 없지만 질박한 그 느낌이 그저 편안하여
선택된 생선접시 한 점이 그녀가 특히 아끼는 그릇이다.

깔깔한 마 천을 그릇위에 눌러서 천 모양이 그대로 베어나오는
그릇인데, 노릇한 생선을 구워 그 위에 올리는 날엔
그녀와의 첫만남을 가지던 그날을 생각해 내고는 내심
흐믓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참 특이하다고...
사람의 손으로 빚어내었기에 사람의 숨결이 묻어 있고
마음이 들어 있는 그릇이라 더 정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할때면 참 좋다.

여자라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은 참으로 무한한것 같다.

향긋한 꽃 한다발을 꽂아둘 때 어디에다 두면 좋을까
고민할 수 있어 즐겁고,
읽고 싶은 책 몇권 머리 맡에 두고 손 닿을 때 꺼내서 읽을수
있는 자신이 익숙해 보일 때 그렇고,
듣고 싶은 CD 한장을 골라내어 가장 편안한 자세로 들을 수 있을때
그러하다.

눈이 아프도록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체리목 쟁반한점에
커피한잔을 내어 마시면서도 그녀는 그렇게 나름대로의 행복감에
젖어들수가 있는 것이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늘 곁에서 풋풋한 풀내음을 맡을 수
있을 때 그렇고,
애써 가꾸어둔 화분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꽃이 피어있음을 보게 된 때가 그러하다.

곳곳에 숨어 있는 생활속의 작은 향기는
늘 그녀를 여자라서 행복하게 한다.

일탈을 가져오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자유스러울 수 있음을 알게
될때 한없이 자유스러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매일을 같은 표정으로 살기보다는 작은 입김을 불어넣고서도
살아있음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댈 수 있을 때
그녀는 깨어있음을 느낀다.

기분이 우울할 때 그녀는
자신을 위하여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서도 할 수 있는
작은 선물을 준비하려 한다.

책 한권... CD 한장... 꽃 한다발의 향기...

조금더 사치를 부린다면
예쁜 잠옷 한벌정도 ...

이렇게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비워놓을 수 있다면 참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겨울녘이 되어지면
그녀의 손은 한층 바빠질 것이다.

집안 곳곳의 메무새를 가지런히 메만져야 하고...
그녀의 온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하여
그녀의 집에 사랑을 담은 표정을 조용히 다가가 그렇게
입혀주어야 하니까 ...

철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약간의 변화에도 민감할 수 있다면
그만큼 남다른 감각이 새록 새록 살아날 것 같다.

삶의 바다에서 지쳐 돌아온 이들에게
진정한 쉼터가 될 수 있는 그녀가 되고픈 까닭에
오늘도 그녀의 손은 늘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다양한 그릇들에 담겨진 공기만큼이나 가벼울지 모르는
삶의 무게감에도 애써 담담해 하며 만질수록... 가꿀수록...
그렇게 달라져 가는 재미에 푹 빠져서 그리 살고프다.

동글넙적한 그릇에 담기는 날에는 둥그렇게...

네모난 그릇에 담기는 날에는 네모나게...

때론 화려한 그릇에 담기는 사치까지 즐기면서...

그녀에게서 익숙한 삶의 향기가 묻어나게
그녀는 그리 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