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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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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이그, 돈이 썩었냐?'


BY ns05030414 2001-10-25

발렌타인 데이가 가까워지니 미국이 온통 소란스럽다.
슈퍼에 가면 발렌타인 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장미꽃 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온갖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로 치장한 카드들도 수북하다.
아이들도 친구들하고 나눌 선물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하다.
미국에서는 발렌타인 데이가 젊은 사람들 만의 축제가 아니다.
모든 사람, 남녀노소 구별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날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친구 사이에, 부부 사이에......
여편이 영어공부를 하는 곳에서도 그 날은 사랑을 나타내는 붉은 색 옷을 입고 오란다.
주위가 온통 발렌타인으로 들썩이니 여편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구니 누구니 해도 '사랑하는 사람' 하면 여편에게는 남편이 떠오른다.
평소 그 들에게 꽃은 사치스러운 것이지만, 이런 날은 장미 한 송이 쯤 주고 받아도 ?I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낯 간지러운 카드는 제껴 두고라도 말이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열심히 텔레비젼을 시청 중인 남편에게 여편은 말했다.
"여보, 발렌타인이라고 온통 시끌시끌 하지요?"
"글쎄 말이야. 그러네."
여편은 이 번에는 말 소리를 좀 더 부드럽게 해서 부탁해 본다.
"당신도 내게 장미 한 송이만 선물하지 않을래요?"
"뭐라고? 돈이 썩었냐?"
남편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마치 준비한 대답을 하듯 그렇게 말했다.
여편은 웃고 말았다.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기가 막혀 그저 웃고 말았다.

여편이 영어 공부를 하는 곳에서 발렌타인 데이에 남편에게 무슨 선물을 받았는 지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여편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그 들의 반응은 여편이 기대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여편은 그 들도 여편처럼 기가 막혀 웃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 들은 무슨 공포스토리라도 들은 듯 놀란 표정이었다.
여편은 슬며시 부끄러웠다.
남편에게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고 사는 자신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 일은 잊혀졌다.
그 일이 아니라도 여편의 마음 속에 섭섭함으로 남을 일은 너무도 많았으므로......

해가 거듭 바뀌었다.
여편의 마흔 번 째 생일이 되었다.
여편은 그 날이라고 별 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무드 없는 남편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여편은 남편이 자라온 환경도, 현재 자기들의 형편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남편과 여편은 형편에 맞게 검소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배달 왔습니다."
여편은 문을 열었다.
어떤 남자가 장미꽃 바구니를 안고 서 있었다.
"뭐예요?"
"배달시켜서 왔습니다."
여편은 꽃 바구니를 받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꽃 바구니에는 와인도 한 병이 꽃혀 있었다.
조그만 쪽지 같은 것도 있었다.
여편은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쪽지를 펴들었다.
그 곳에는 여편이 기대하는 사랑의 표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신 이런 것이 쓰여있었다.
꽃 바구니 값, 와인 값, 배달료, 합계.
검소한 단벌숙녀 여편에게 눈이 튀어나올 만한 금액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금액을 여편은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 숫자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그 곳에 있었다.
다시 봐도 여편과 남편의 형편에는 거금이었다.
여편은 속이 상해 자기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 나왔다.
"흐이그, 이 남편네야, 돈이 썩었냐? 돈이 썩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