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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먹는날,,,,,,,,


BY 개똥 엄니 2001-10-24

팔순을 넘긴 친정 엄마가 모처럼 우리집에 오셨다.
오늘은 뭐 맛난거를 해먹을까하다가
팥죽을 먹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예전같으면 빨간 팥을 곱게 고아서
직접 밀가루도 반죽하고
방망이 굴려서 납작하게 밀어 칼질햇을
엄마의 날렵한 솜씨가
이제는 동네 분식집에서 파는걸로 대체해야했다.
그래도 우린 팥죽에 설탕 듬뿍 넣어서
입술에 발라가며 맛나게 먹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났다.
내가 중학1학년쯤이었을 그 시절,,,
바로위의 언니가 여고를 다니고 있었다.
오후에 갑자기 비가 오는날이면
우산을 들고 언니네 학교를 가곤했던,,,
야간 학습으로 언제나 밤까지 공부하는 언니에게
난 저녁 도시락을 나르는 담당이었기도 했다.

하루는, 오후내 팥을 고시던 엄마가
커다란 솥에 가득 팥죽을 쑤셨다.
동지도 아니고 먹을 사람도 없는데
뭐러 저리 많이도 쑤시나,,,
엄마는 집에서 제일 큰 냄비에
팥죽을 가득 담아서 내게 주셨다.
"가다가 해찰하지말고 안쏟아지게 조심히
얼른 언니 갖다주거라."
아이구...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한테
도시락도 아니고 웬 팥죽!
가지고 가기도 쑥스러운데
먹어야 할 언니는 얼마나 쑥스러울까....생각하면서
그래도 죽이 퍼질세라 집에서 20여분 걸리는
언니네 학교로 부지런히 냄비를 들고 갔다.
학교안은 저녁 시간인지 언니들 떠드는 소리로
왁자지껄했고
교실을 찾아가는 내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언니가 친구들한테 부끄럽지나 않을지 걱정하면서..
그래도 언니는 언제나처럼 밝은얼굴로
냄비를 받아들었고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 팥죽을 친구들하고 맛나게 먹었단다.
그것도 화장실옆 빈터에서라든가...

지금은 ...
세월앞에 버틸자 없는지라
연로하셔서 다 쭈그러진 엄마의 팔둑을 보며
그 시절
배고픈 학생들의 몫까지 생각하셔서
냄비 가득히 팥죽을 담아주셨던
우리 엄마의 큰 마음을 되새기면서
이젠 엄마가 쑤어주시는 팥죽을 더 이상은
못먹겟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엄마가 쑤어주시는 팥죽은 못먹어도 좋으니
건강히 오래오래 사셔서
비록 사먹는 팥죽이라도 자주 함께 먹을수있기를
바라고 바랄뿐이다.
엄마! 오래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