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이 어언 12년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는데 결혼생활이 12년째니 강산이 한번 변했을 세월이 흘러버린 요즘,난 많은걸 깨우치고 산다.
30대후반에 접어든 이 나이에 겨우 철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남편이 자란 환경과 내가 자란 환경의 차이가 너무도 심해서 난,시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수도없이 황당해하고 놀라고 몇번의 상처도 받으면서 힘겹게 이제 겨우 적응하고 있다.
내 마음속에서 포기하는 일이 이렇게도 힘든 일일줄은 몰랐다.
가끔 남편이 말한다.싸운다는건 미운정 고운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내가 지금까지 잘 가정을 지켜올수있었던건 나의 노력만은 아니다.당연히 남편의 힘이 무척 컸음을 나는 인정한다.
요즘 남편이 직장에서 대회준비차 밤낯없이 바빠서 귀가시간이 밤 열두시를 넘거나 거리가 멀어서 회사에서 잠자고 아예 들어오지 못하는 때가 많아졌다.
귀가시간이 거의 일곱시반을 넘기지 않던 남편이 요즘처럼 늦어지고 아예 들어오지 못하니까 나는 하루가 너무도 길어졌다.
남편의 부재가 이렇게도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줄 몰랐다.
저녁준비를 야단스럽게(?) 할 일도 없어졌고,집안일도 줄었다.그러나 웬지 생활의 활력이 없어진것 같다.
일년내내 거의 밥맛이 없어본적이 없던 내가 요즘 밥맛을 잃었다. 내 친구도 밥맛이 없다는 내가 믿기지 않는단다.
며칠전엔 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갑자기 뷔페가 가고 싶단다.좀 망설여졌지만 저녁에 가자고 대답 해 놓고보니 남편도 없는데 우리끼리 외식하는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도저히 아이들만 데리고 나혼자서 뷔페에 외식하러 갈 자신이 없었다.외식만큼은 남들을 의식하게 되었다.그래서 큰 아이에게 아빠가 오시면 가자고 잘 달래서 대신 피자를 시켜 주었다.
운전을 잘 못할때는 남편없이도 아이들 데리고 어디든 못 갈곳이 없다고 생각했고,남편과 심하게 다툴때는 나 혼자서도 잘 살수있다고 당당했었는데 나 혼자서 아이들과 외식도 못가는 내가 너무 우습고 믿겨지질 않았다.
그날 나는 새삼스레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겸손해졌다.또 남편의 소중함도 느꼈다.
불과 열흘전만해도 사업이 잘되서 수입이 많아졌다는 내 친구남편과 비교하면서 괜히 남편한테 짜증을 부렸었는데........
그 생각을 하니까 내 자신이 또 한심해졌다.
남편은 내가 짜증을 부려도 얼굴 붉히지않고,오히려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는데.........
남편의 부재가 내게 이렇게 많은 깨우침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지금도 대회준비차 초를 다투며 컴퓨터앞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안스럽고,미안하고,고맙다.
오늘 최종회 방송이었던 드라마'그 여자네 집'에서 탤런트 이효춘이 남편역을 맡은 박근형(암환자역)을 붙잡고 죽지 말라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잠시 흐느끼며 울었다.마치 내 일인것처럼.......
가끔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나서 몇백년을 살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싸우고 살아야하는 마음으로 후회를 한적도 많은데 요즘은 더욱 싸우고 지낸게 후회가 된다.
다시 결혼한다면 정말 잘 살수 있을것 같은데.......
요즘 내가 정말 철이 드나보다.주말도 아랑곳않고 일하는 남편을 위해서 오늘 저녁에 남편의 휴대폰에 내 마음을 전해주었다.다른때 같았으면 분명히 응답의 메세지가 왔을텐데 얼마나 바쁜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그러나 나는 이미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다.마음으로는 수도없이 내게 응답해주었음을...........
남편이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정말 따듯하게 반겨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