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끄러운 집안 이야기 >
앞에서 이어서........
4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생활 면에서 여전히 엉망이었다.
이제 고학년이라고 생각하니 성적이 걱정되었다.
아이가어릴 때는 그저 기저귀만 떼고 제 손으로 밥만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는데 두발로 걷고 제멋대로
놀러 다녀도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걱정은 아이가 자라는 만큼
자란다더니 정말 그랬다.
'수학이 이제부터 어려워질 텐데……,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하다니 일기는 매일 빠트리지 말아야
하고,
아참! 가방을 제대로 쌌을까? 어제도 산수 책을 놓고
갔던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문은 입 밖으로 제멋대로 튀어 나와서
그대로 아이에게 명령으로 퍼부어졌다.
"숙제 다 했니?"
조금 있다가
"연필은 깍았어? 눈높이 수학은?"
또 조금 있다가
"내일 국어 시간 들었니? 꼭 싸라. 어제는 산수 책을 빼놓고
갔더라."
"일기는 언제 쓸건대? "
이렇게 질문인지 명령인지 모를 지시를 하는 동안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불안해졌고
질문의 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아이는
"엄마, 저 쉬가 마려운데요?"
라며 화장실 가는 것까지 물어보고 허락을 받으려했다.
그러면 화가 나서
'도대체 화장실 가는 것까지 가르쳐 주어야 한단 말이야?'
하며 또 한번 화를 냈다. 아이에게 유일한 자유는
화장실뿐이었다. 큰일을 본다고 책을 들고 화장실을 들어가면
한시간씩 화장실에 있는 것은 보통이었다. 이것도 못마땅해서
빨리 나오라고 난리를 치곤 하였으니……
이제 지난 일이니 쉽게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는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답답하여 불만스럽기만 했다. 아랫집 동윤이 엄마는
내 경험담을 듣고 손벽을 치면서
'맞다! 맞아! 우리 애하고 똑같애.'
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 혼자만의 실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아이를 그 지경으로 몰아대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고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아이는 좋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유난히 꼼꼼해서 머리털 뽑아
제자리에 다시 박아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남편까지
가세를 해서 아이를 마치 쥐잡듯이 쪼아댔다.
내가 챙기지(?) 않으면 남편이 챙긴다.
급기야 남편과 내가 한번씩 번갈아 가면서 애를 추궁한다.
엄마: "산수 풀었니? "
아빠: "바이올린 연습해야지?"
다시 엄마: "가방은 쌌어?"
다시 아빠: "연필 깍았어? 일기는?"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단순히 질문으로
끝났겠는가? 해놓지 않은 것에 대해서 종아리를 때리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문밖으로 쫓아버리기도 하고.
정말 왜 그렇게 심하게 했는지, 또 왜 그렇게 잘못된 방향을
느끼지 못했는지 정말정말 한심한 부모였다. 그렇지만 아이의
공책은 모두 종합장이 되어 있었다. 어떤 공책도 한과목만 쓴
공책은 없고 국어 공책에 한문, 자연이 써 있고, 산수 공책에는
실과, 국어가 써 있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단과 잔소리가 아이를 더 좋게 낫게 만든 것은 없었다는
각성이 들었던 것이다. 1학년 때부터 글씨가 엉망이었던
큰애를 위해서 담임을 맡았던 여러 선생님이 글씨체를
잡아주려 노력했고 글씨본을 쓰게 하거나 야단도 치고
때로 입에 발린 칭찬도 하면서 깨끗이 쓰게 해 보았지만
여전히 아이의 글씨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떤 선생님은 머리 좋은 애가 글씨를 못쓴다거나
아이들 세대는 컴퓨터를 쓸 테니 글씨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깨달았다.
안 되는 것도 있으며 안 되는 것은 내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또 하나 아이가 이미 많이 컸다는 사실이다.
10살이 넘고 보니 더 이상 꾸지람에 수긍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눈에는 불만이 가득 하고 분노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이와 남편의 사이도 이미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남자아이에게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데 부자지간이 저렇게
껄끄러우니 정말 앞일이 막막해 보였다.
머지않아 사춘기가 닥칠 것이고 소위 사회문제가 되는
무서운 10대 중에 하나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냉냉한 가정의 분위기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고
한집에서 살되 마음은 멀어져서 서로 외롭고 고독하여
얼마나 힘들게 살 것인지 불 보듯 환했다.
남편과 끊임없이 아이들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 싸움으로 끝나기도 하고 술이라도 한잔 마시는 날엔 함께
잡고 울기도 하였다. 정말 엄마 노릇, 아빠 노릇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인가!
정말 잘 키우고 싶다, 잘 키워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아이들을 이상하게 몰아 붙였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