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게다가 고 3 겨울방학부터 옆집 동생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해서, 학교다닐때는 아르바이트로 직장에 다닐때는 조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는 직업으로 중고생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매력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은 정말 솜과 같다.
무엇이든지 흡수하고, 때로는 날라가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쉽게 더럽혀 지기도 한다.
내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두 아이에 대해서 몇 가지 비교를 해가며 쓰려한다.
윤주와 성진이(이름은 가명입니다.)
이 둘을 가르치면서, 나는 훗날 내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겠다라는 다짐을 했다.
먼저, 윤주는 너무도 해맑고 예쁘고 행복한 아이였다.
성진이는 잘생기고 똑똑한 아이였지만, 항상 불만이 있고, 불행한 아이였다.
윤주네 집은 처음엔 무척이나 힘든 작은 구멍가게를 해온 집으로 어렸을때부터 거의 혼자 크다시피 지낸 아이다.
성진이는 부모님이 약국을 경영하고, 교양있는 친할머니와 박식한 엄마가 혼신을 다해 교육해온 아이였다.
윤주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에 어느정도 기반을 닦는 부모님들이 이웃에 살고 있던 내게 특별히 부탁하여 무척 저렴한 보수로 결혼해서 인천으로 올 때 까지 무려 6년을 가르쳤던 아이다.
성진이는 중학교 3학년이던 때에 비로소 알음알음으로 꽤 높은 보수를 받고 채 6개월을 가르키다 말았다.
윤주는 항상 웃고 다녔다.
아래 두 동생을 돌보는 것도 엄마 가게일을 돌보는 것도, 심지어 내게 와서 공부안했다고 얻어터지는 것도 낄낄대며 재미있어 했다.
성진이는 자존심이 무척 세고, 항상 주위의 소리에 민감한 아이였다.
윤주는 처음엔 반에서 중간치 정도를 밑돌았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공부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반에서 7,8 등 정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성진이는 초등학교에서는 올100도 가끔 맞았다고 했다.
중학교에서는 반에서 4,5 등을 하던 아이였다.
교육학자들이 내 의견에 어떠한 반박을 할지는 조금 두렵기는 하다.
하지만, 내 짧은 경험으로 모든 아이는 천재이고 그들은 교육에 의해서 천재이고, 영재가 된다는 것에는 동감할 수 없다.
모든 아이가 천재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천재성이란게 글자를 알고, 수를 셈하고,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두에게 내재되 있는 천재성은 그것을 파헤치지 않아도 아이를 사랑으로 살펴만 본다면 스스로 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지, 교육과 투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윤주엄마는 윤주를 무척 사랑으로 길렀다.
"아유~. 쪽팔려, 이걸 성적이라고 가져왔냐? 나같으면 접시물에 코박고 있겠네..ㅎㅎ"
가끔 내가 윤주에게 이렇게 농담을 하면, 윤주는 이렇게 웃으며 답한다.
"내 짝은 나보다 2개나 더 틀렸어요~. 그래도 난 틀린것 보다 맞은게 더 많네~. 전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이렇게 공부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있고, 공부 못해도 이쁘다고 옷사주는 할머니도 있고,...
내가 왜 접시물에 코박는데요?"
하지만, 성진이는 몇 개 안틀린 시험지를 가지고 와서도 항상 울상이었다.
"잘 봤네. 이정도면. 괜찮아~. 이것 아는 것 틀렸네?"
이렇게 위로하는 내게 성진이는 코끝을 찡그린체 이렇게 말했다.
"우리반에 100점 짜리 있어요. 엄마 알면 혼나는데, 아는 것 틀렸다고,.."
결국 윤주나 성진이나 비슷비슷한 대학에 들어갔다.
난 윤주엄마를 어떤 교육철학자보다 더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