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산소에 올라 가는 길 옆은
온통 밤나무들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밤들을 몇개 주웠고
떨어진 밤송이를 몇 개 까서
할머니 산소 앞에 놓았다
돌아 가신지도 벌써 일년하고 육개월
할머니 산소는
할머니 머리처럼 잔듸가 조금씩 벗겨져 있다
어느 산소보다 잘 치장된 산소
돌아 가신후에 호강하시는 구나
여지없이 까치 울음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가 돌아 가신 후로는
늘 내 주위에서 까치들이 멤돈다..
금쪽같이 여겼던 큰아들
그 큰아들은 우리 아버지셨고
할머니는 돌아 가시기 직전까지도
아버지 진지를 걱정하셨다
건강하실 때에는
아버지 찬이 마땅치 않으면
시장을 세번씩은 다녀 오셔서
식탁을 준비하셨다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셔서
늘 가정일을 돌보셨던 할머니
하지만 내게는 그리 따뜻하지 않았던 할머니
처녀 시절
나는 할머니와 유독 많이 싸웠다
딸만 여섯인 손녀 중에서도
유독 나와 동생을 미워하셨고
위로 있는 언니들 넷은
자신이 직접 키우셔서 인지
끔찍히도 위하셨다..
그것이 늘 서러웠고
자라면서 할머니에 대한 미움은 커져갔다
결혼을 하고
나는 다시금 친정 아래채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첫 아이를 낳고
첫 아이가 할머니를 따르고
할머니는 내 첫 딸을 유독 예뻐해 주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화해를 해 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삐끄덕 거렸다..
할머니..
할머니라고 불러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
큰아들은 그렇게 금지옥엽 위했건만
병들고 기운 잃은 할머니를
자신이 받은 것 만큼
그것에 절반에 절반 만큼도 돌려 드리지 못했다
할머니는 늘 뒷전이었던 효자 작은 아들에게
더 칭얼 대셨고 모든 화풀이를 착한 작은 아들에게 퍼부었다
한의원하시는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의 히스테릭한 부름에 언제든지 달려왔고
작은 엄마는 그렇지않아도 삐끄덕거리는
큰집과 시어머니로 인해 괴로워했으리라..
그렇게 몇번의 그 대쪽같은 성격으로
입원시켜 달란 아우성으로
작은 아들은 일인실에 삼인실에
몇번을 입원시켜 드려야만 했다
당신의 건강을 무척이나 염려하시고
어린아이처럼 보채고 안달내 하시던 할머니..
하지만..
작은 아들도 작은 엄마도..
입원비는 내줄 수 있어도
병실에서 간호하는 건 꺼려했다
그렇게 아끼시던 위의 네 언니들도
바쁘다는 이유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가끔씩 사골 국물을 끓여 오고
손을 잡고 달콤한 몇마디를 던지고 달아나 버렸다
연년생 세살 네살의 딸을 둔 내가
모든 병수발을 해야만 했다
한 아이는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딸 하나와 병실에서 지내면서..
아버지는 그런 내게도 병든 할머니에게도 냉담했다
아니 모두가 할머니에게 냉담했다
자신들이 받은 걸 잊을걸까?
그렇게 몇달을 퇴원해서 다시 병원에서 몇달을..
그러다 결국
할머니는 집안에 몸도 가누지 못한 상태로
노환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도 받아 주지도 않아
집에서 병수발을 해야만 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귀챦아 하셨고
아버지 역시도
할머니 건강 하실때 따르던 언니들도
모두 엄마편이 되어 엄마 힘들까봐
그것에만 염려했다
할머니는 식사도 대 소변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셨다..
그렇게 몇달을..
나는 두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과 친정집을 오르 내리며
목욕을 시켜 드리고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세끼를
넘기지도 못하시는 그 마른 입술에 죽을 떠 드렸다
욕창이 생기기 시작하고
집안은 해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환자가 있는 집안 특유의 냄새..
아무리 청소를 해대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이제 천덕꾸러기 존재가 되었다
아무도 할머니를 애정으로 바라 보지 않았다
그저..
언제 돌아가시려나 하는 염려섞인 시선들로 바라볼 뿐
할머니의 임종은 점점 현실 앞으로 다가왔다
동네분들이 다녀가고
친척들이 끊임없이 오고 갔다..
엄마와 아버지는 남의 눈을 의식했는지
갑자기 효심에 넘친 행동들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면 엄마는 과일을 수저로 긁어
할머니 입에 넣어 드렸고
아버지는 할머니 옆에서 밤이면 주무셨다..
돌아 가시기 꼭 일주일전부터..
가끔씩 눈을 떠 나를 보시는 할머니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 아이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기도를 해 드렸다
우리는 아침 청소를 마치면 할머니 방에서 살았다
아이들과 몸은 쓸 수 없어도 정신은 그대로인 할머니와
병 간호하는 몇달..
그 몇달을 우린 정말 따스하게 지냈다
나는 할머니가 잠에서 깨시지 않으면
그 앞에서 울었다
"할머니 그만 주무세여.. 이제 일어 나셔야지요.."
할머니는 깨어 나지 않을 것처럼 주무시다가도
내 손을 잡으시며
"나 안잔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삼일을 주무시고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할머니의 임종이 가까워 온 것이다
나는 차라리 덤덤했다
하얀 수의를 입으신
잠든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느때보다도 평화로워 보였다
냄새난다고..
바라 보는 것만으로 지쳐 있던
가족들도 모두 왔다
너무나 슬프고 비통한 표정들로
난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 속에서 너무나 외로웠다
할머니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시고
그렇게 떠나셨다
시원하게..
이젠 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차라리 너무나 잘.. 가셨다
할머니 초상에는 몇 천명의 문상객이 왔고
호상이라고..
초상은 그야말로 대 성황리에 치러졌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작은 아버지가 몇 천만원을 들여
비석과 산소띠를 해드렸고
그렇게 일년 사개월이 지났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앞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했고 또 얻었다
생밤을 좋아 하시던 할머니..
나는 할머니 산소에 가는 일이 좋다
돌아 가셔서 호강하시니 씁쓸하게 기쁘기도 하다
죽음은 모든 걸 용서하게 되고 미화시킨다
죽음은 기억상실이란 병을 주는지
그리움만 남게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