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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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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목장갑은 왜 끼는건데......


BY 분홍강 2001-10-19



한 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은 숨까지 컥컥 막히게 하고
가만 있어도 흐르는 땀은 멈출 줄은 몰랐다.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여고 동창은 결혼 후 처음으로 남푠,자식
다 떼어 놓고 여자들끼리 여행을 가자고 작당 아닌 작당을
모의 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같이 집안일에 시달리고 남푠,자식들에게서
언제 한번 자유로웠던 적 있었던가...

출발은 계획대로 순조로웠다.
우린 여행 경비도 줄일 겸 J의 소형차(중고 중에서도 엄청 중고)로
움직이기로 했다.
무려 이박 삼일의 자유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었다.우린
차안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얘기 꽃을 피워댔다.
여자 셋만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옛 말이
틀린건 아니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쉬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은
우릴 한껏 들뜨게 하였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린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우릴 막을소냐, 우린 다시 십대로 돌아간 아지매였다.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고 있었다.

차는 이제 가파른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강원도 진고개었다.
험하기로 유명한
꼬불 꼬불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친구J는 능숙한 운전 솜씨로
자유자재로 핸들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뒤에서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 중에 우릴 향해 경적을 울려대는
차가 있었다.

"야 제네들 왜 저러냐?"

"우리 한테 그러는거 아냐?"

"짜식들,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우리도 아직은 봐 줄만 하지 헤헤..."

우린 저마다 한 마디씩 던졌다

그런데 경적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울려댔다.
우린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고마해라 짜쓱들아"
이렇게 말하려는데
다른 차들도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기분이 찝찝한 마음이 들려는 순간
아뿔사...우리 차의 어딘가에서
요상한 냄새와 함께 뿌연 연기가 풀풀 올라오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 경적 소리는 차에서 연기가 나니 차 세우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야 ~ 이게 뭐야 ,빨리 차 세워봐"

친구J는 얼른 길 한쪽으로 차를 세웠다
J는 항상 그렇듯 트렁크에서 빨간 목장갑을 꺼내들었다.
차에 무슨 이상이 생기기만 하면
언제나 빨간 목장갑을 끼고 본네트를 꼭 열어
오일을 체크하고 ,냉각수를 확인하곤 하는 것이 친구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쪽이 아니었다.
바퀴 부근에서 연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차의 기어를 놓지않고
계속 브레이크를 밟으며 고갯길을 내려와
브레이크와 타이어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하필이면 비상정차 한 바로 앞에 팻말이 떡허니 서 있는건
또 뭔 조화인지...

'브레이크 파열 조심'

우린 차안에서 마시려고 준비한 물을 바퀴에 다 부어 바퀴를
진정시켰다
어차피 차도 바로 운행 할수가 없었기에 우린 그늘에서 더위를
피할겸 한 숨 돌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소심한 친구J는 차 옆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안절 부절이었다
급기야 J는 콜라, 사이다, 이프로 등등의 음료를
바퀴에 붇고 있었다.
물로는 열을 식히기가 부족하다며 각종 음료수를
들이부었다
"J야 뭐 그렇게 까지 하냐,쫌 기다리면 괜찮다 잖아"
"그래도 불안해서 안되겠어"
차에 있던 음료수를 다 붇고 난 후
다시 차는 목적지인 동해를 향했다.

친구J는 아까와는 다르게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우린 긴장하는 J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온갖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웃긴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주고......

J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니 원래의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얘들아, 이젠 ?I찮아, 나 운전 잘 하지?"
말을 내 뱉음과
동시에 이번엔 연기가 아니라
달콤한 냄새가 코 끝으로 전해왔다.

"야, 무슨 냄새 안나냐?"

"그래 냄새 난다,달고나 냄새 같지 않냐?"

그것은 바로 또 우리차에서 나는 냄새였다.
바퀴의 열을 식힌다고 들이부은 각종 음료수가
바퀴와의 마찰에서 일으킨 냄새 였던 것이다.
그 후에 우리는 또 한번 J의 빨간 목장갑을 봐야했다.
역시 또 본네트 열고 이것 저것 체크하고....
본네트와 상관 없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후 어찌어찌해서 무사히 목적지 까지 도착은 했지만
여행 내내 우린 J를 여왕대접 해 줘야 했다.
순전히 신경 안 건드리느라고 말이다.

벌써 두해가 지난 일이지만 지금 생각 해 봐도
입가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건 아닌 사건 이다.
여행 다녀와서도
한동안 화제에 올라 우릴 즐겁게 만들었던
여자 사인방의 여행....


이번 가을이 다 가기전에
단풍 놀이나 다녀 올까나...이번엔 또 어떤 사건이
우릴 기다릴지 ...
벌써 부터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