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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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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밥 점심


BY 雪里 2001-10-16


"점심 먹어야지, 영규엄마!"
"배달음식 질려서 싫어요. 아직 밥 생각도 없고."

별생각 없다는데도 부득부득 점심을 먹잔다.
"짬뽕" 짜장면" 백반"...
배달이 되는 음식들을 주섬주섬 섬기지만 아무것도 먹을만한게 없다.
"그래도 먹어야지! 우리 순대국밥 한번 먹어볼까?"

"순대국밥"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는,
먹어본지가 하도 오래되어 맛조차 잊었을것 같은 순대국밥을 시켰다.

투박한 용기에 순대몇개, 내장 삶은것 몇점 그리도 굵게 썬 파와
고추가루가 듬성듬성.
밥까지 미리 넣은채로 넓은 쟁반에 무김치와 배추김치 아주조금의 새우젖까지 얹혀 배달된 순대국밥은,
배달하는 아줌마의 손이 음식과 너무 어울린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 해 준다.
맛있게 드시라며 덮어온 신문지 헌것과 넓은 비닐을 한켠으로 접어 두는 배달 아줌마를 쳐다보며, 우리네 엄마들의 삶이 그대로 보여지는 것 같아 수저를 든손이 그대로 멈춰,
한참을 멀거니 뚝배기와 얼굴을 번갈아본다.

"어이 먹어봐유, 이집 순대가 최고여.""서울놈들 먹는 비니루순대랑 비교도 안뎌. 순대 좋아하지? 자~"
이십년이 다되도록 같이 알고 지낸 사이라 허물없어 말을 놓아가며 친근함을 보이는 남자들이 정 스럽다.
또 혼자라도 있는듯하면 끼 넘길가봐 끼니때 들러 이렇게 챙기는 그네들이 한없이 고맙다.

뿌옇게 우러난 국물이 시원하다.
냄새가 날것같아 꺼렸었는데 구수한 냄새가,
나를 보며 골라준 점심이 괜찮느냐고 묻는듯한 눈길에게, 수저를 입에 문채로 고개를 끄덕여 맛있다는 대답을 대신한다.

아주어렸을적 ,
엄마따라 시장엘 갔었지.
좁은나무 긴의자에 죽 늘어앉아 국밥을 먹는 아저씨들 옆을 지나며
하얀 김을 엄청히도 올려대던 국밥집 큰 솥과 소쿠리에 얹혀있는 고깃덩어릴 보며, 앞서는 엄마 치맛자락끝이 더이상 늘어질게 없이 늘어져 엄마의 걸음을 멈추도록 해 놓고는
먹고싶냐는 엄마의 물음엔 옆으로 고개를 저으며,
발만 앞으로가고 눈은 그곳을 여전히 주시하다가 늦는다고 한소리 들었었는데...
어린 내 맘에도 그때 엄마는 돈이 없는걸 알았기에 먹고 싶다고 못 했던 거였어.
"왜, 난 그리 일찍 철이 들었었는지,원!"

순대국밥이 정말 맛있다.
빼빼마른 단발머리 어린 계집아이가
유난히도 까만 눈망울로 쳐다 보았던 김 무럭무럭나는 큰솥단지속의 국밥 맛이 이랬을 성싶다.

커가면서의 순대국밥집은 막걸리 냄새를 가득담은, 영 기분이 안 당기는 분위기라서 싫었는데,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며 오랫만에 먹는 순대국밥은,
나를 추억으로 데려다까지 앉혀 놓으며 한끼를 해결해 주고 있다.

묵직한 툭배기를 들어 한방울의 국물까지 모두 들이 마셨다.
"맛있쥬?"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모처럼, 정말 오랫만에 먹어본 순대국밥 점심으로 마음속까지
포만감을 가뜩 채워 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