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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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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40


BY 녹차향기 2001-01-07

30여년만에 쏟아지는 폭설이라고 하더니 과연 대단하더군요.
아침나절부터 내리던 눈이 죙일 그칠 줄 모르고 펑펑 내리더니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울음을 그쳤어요.
창 밖에 흩날리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마치 참새떼들 같더군요.
한 쪽으로 한 마리가 날아가면며 나머지 새들이 쪼르륵... 달려가는,
그리고 마치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 연인처럼 창 밖에 서성이고 있다가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푹 돌아서는 그 모습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요...

하얗게 변한 세상만큼이나 가끔은 우리 마음도 그렇게 하얗게 다시 지울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얼룩졌던 마음, 괴로움과 시련으로 힘들었던 마음, 남을 미워하고 시기했던 마음, 내 자신을 스스로 괴롭혔던 마음....
하얀 눈을 쓰고 있는 지붕들이 어찌나 다정해 뵈는지 마치 도화지위에 그려진 동심을 옮겨다 놓은 것만 같았어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은 창 밖 좀 내다봐라... 하는 엄마말에 환호성을 질렀지요.
"와!!!! 눈이 엄청 온다...!!!"
하지만 옛날에 우리들처럼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가지는 않더라구여.

엊저녁은 늦게 어머님께서 집에서 돼지족발을 고아 주셨어요.
큰 들통에 돼지족발을 넣고 소금,간장,생강,파등을 넣어 푹푹 1시간 30분 정도를 끓이는 거예요.
전, 큰애 임신 했을 때 이렇게 어머님께서 직접 집에서 만들어 주신 족발을 많이 먹었어요.
미끌미끌한 그것 땜시 아이가 쑥 잘 나온다고 하시며 어머님께서 해 주신 족발은 시중에서 파는 그 어떤 족발 보담도 맛이 특별났어요.

근데, 어제서야 어머님께서 불쑥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니 지금까지 내가 족발장사했던 거 몰랐지?"
"예?"
"히히히... 몰랐구나.."
'그럼요, 말씀을 안 하시니 알 수 없었잖아요.'
어머님께서 조그만 식당을 하실 때 거기에 그 메뉴도 있었던 거래요.

'어머님....'
혼자 종종 거리며 하루종일 움직이는 그 손바닥만한 작은 가게, 어머님께서 족발을 아주 맛있게 하시는 솜씨가 있으시다 했더니...
독산동 우시장에 가서 4만원어치 사오니 족발이 자그마치 7개에다, 작은 발목부분이 8개나 되었어요.
그걸 몇시간이나 고아서는 어머님 드시라고 김치며 감을 갖다준 현신이네 하나, 오리고기 사다준 은비네 집에 하나, 모과차를 통째로 들고 온 웅식이네 하나 이렇게 여러집에 나눠주시곤 오늘은 마포사시는 이모님댁에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시는 분들을 위해 기꺼이 발걸음을 함께 해 주셨지요.
4만원의 위력이 이렇게 클 수 있어요?

어머님께서 나눠주신 족발은 40만원, 400만원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좁디좁은 식당에서 혼자 장 봐오시고, 혼자 음식 장만하시고, 혼자 밑반찬을 만들며, 족발을 앉히고, 쌀을 씻고 하시는 의지할 데라곤 아들밖에 없는 그 젊은 아낙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찡했어요.
중학생,고등학생 시절을 그런 엄마를 위해 시간 나는 틈틈이 배달을 하고, 손님이 어지럽히며 먹고 나간 식탁을 닦아다는 우리 남편의 모습이 연속극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더라구여...

사실, 전 어머님께서 다른 여늬분들과 달리 지식정도가 좀 떨어지고 이해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말귀를 얼른 못 알아들으신다던지,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지금까지 저런 것을 어떻게 모르셨을까... 하며 귀찮은 듯 설명을 해 올린 적도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족발을 일일이 손질하고, 그 뜨거운 족발을 조심스레 꺼내 찬물에 끼얹어 기름기를 뺀 다음 예쁘고 깔끔하게 썰어서 그간 신세진 집에 하나씩 빨리 갖다 주라고 하실 때,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라요.

어머님....

죄송해요...

십이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는데 이제서야 고백하듯 부끄러운 표정으로어머님께서 족발을 판 적도 있고, 누가 부탁하면 돼지머리도 삶아 팔곤 하셨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푸짐하게 족발을 새우젖에 콕콕 찍어서 김장김치와 한 입씩 싸먹으니 겨울밤이 푸근하기만 했어요.
편두통이 있었는데 먹는동안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 같았구요.
사실 그런 감추고 싶은 과거이야기 며느리 앞에서 하는 거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감사하고요.
잘해드린다고 했다가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픽' 삐쳐서는 금방 돌아서는 못난 며느리를 얼마나 예쁘게 보아주시는지..

덕분에 내일은 이집저집에서 치사를 많이 들을거예요.
마음에도 하얀 눈이 온통 쌓인 듯...

이제서야 종일 오던 눈은 진눈깨비로 바뀌었다고 하는군요.
축복처럼 흰 눈이 내렸으니 올 해엔 우리나라에 좋은 일만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나눌 수 있는 마음들이 되고,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누다 보면 지금의 현실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믿어요.
족발이 조금 남아 있는데.....
먹으면서 전 또 친정부모님이나 막내동생,그리고 제부도 생각났어요.
담에 제가 어머님의 요리를 전수받아 여러분께 맛있는 족발을 선보일 수 있기를 바래요.


모두들 평안한 밤 되세여.

흰 눈과 함께 좋은 추억들이 많이 쌓이셨기를 바라며.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