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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호스 아줌마의 신문읽기 30 - 황동규 시인, 아버지 황순원 추모시 발표


BY 닭호스 2001-01-06

‘다음날 아침/ 옆에 아버님 추억이 누워 있었다/ 왜 계속 한창 때 모습이 아니고/ 마지막 무렵 초췌한 모습인지,/…’(황동규,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이니’ 부분)

황동규(63) 시인이 지난 가을 부친인 소설가 황순원 옹을 여읜 뒤, “하늘이 무너진” 슬픔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가 불현듯 백령도엘 다녀왔고, 거기서 얻은 두 편의 사부곡을 이번 현대문학 1월호에 실었다. ‘추억의 힘줄은 불수의근이니’와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등 추모시들에는 당시 상주였던 그가 “마지막 한 말씀이라도 하고 가시지…”라며 끝말을 잇지 못하고 애닯아 했던 부자유친의 정이 진하게 스며 있다.

황옹은 ‘독짓는 늙은이’ ‘소나기’ ‘카인의 후예’ 등 현대 소설사에 우뚝 솟을 명편들과 세속에 한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삶의 태도로 “문단의 사표”라는 존경을 받아왔다. 황시인(서울대 영문과 교수)은 부친의 삶을 한없이 닮고 싶은 큰아들이었고, 우리 시단을 이끌고 있는 중견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이 문인 집안은 지난 연말엔 조용히 혼사(황옹의 손녀)를 치렀다.

그러나 황옹이 아들 손녀에게 남긴 것은 “웃으시는 사진 한 장”이었을 뿐이다. ‘부동산은 없고/ 아버님이 유산으로 주신 동산 상자 한 달만에 풀어보니/ 마주앙 백포도주 5병,/ 호주산 적포도주 1병,/ 안동소주 400㏄ 1병,/ 짐빔(Jim Beam) 반 병,/ 통 좁은 가을꽃 무늬 셔츠 하나,/ 잿빛 양말 4켤레./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장.’(‘홀로움…’ 부분)

“아버님이 실제로 저에게 상자를 하나 남겨 주셨지요. 한달 반 정도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가 혼자 열어보니 술 몇 병과 양말 두 켤레와 꽃무늬 셔츠 그리고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황시인이 백령도엘 다녀 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제나 지금이나 부친의 모습은 ‘꼿꼿해진 생각처럼 꽃 위에’ 앉을 것이고, 아마도 “눈 높이로 나무 줄기 사이를 헤집는 저녁 햇빛” 처럼 아들의 외로운 마음을 환하게 할 것이다(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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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가장 많이 들은 소리중 하나는
"니가 애 낳아서 키워 보니 엄마 아빠 고생한 줄 알겠지?"
라는 소리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우리 두남매를 그런 시각으로 키우지 않으셨다. 철저히 모든것을 주셨으되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런 부모의 삶을 사셨다.

두 분은 언제나 나에게 그리고 나의 오빠에게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치사랑은 없다.너희가 우리에게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너희 아랫대로 물처럼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하셨다.

어제 나는 다된 저녁에 시집간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시집간지 얼마되지 않은 친구였는데, 늦게 자식을보신 친구의 보모님은 올해 벌써 칠순을 맞으신다고 했다. 얼마 안 있어 친구 아버지의 생신이 다가온다며 친구는 걱정을 하였다.

엄마한테
"아빠 뭐 필요한 거 없어? 내가 요번 생신때 해 드릴게.."
하고 물었더니 엄마가 대뜸
"너희 아빠 바바리 한 벌 해 드려라..입던게 많이 낡았더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백화점을 찾은 그 친구는 백만원을 상회하는 그 엄청난 가격에 질려 그냥 돌아와서는..

"엄마,나 돈 없어.. "
했다고 한다..그러자 엄마가..

"딸자식 키워놔봤자 소용없다.지 아빠 칠순인데 백오십만원이 아까워서..."
했다고 한다...

내가 전화를 끊고 그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에게 하자..엄마와 아빠는 내심 걱정이 되는 내색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3월에 돌아오는 아빠의 생일이 환갑이기 때문이다. 자칫 시집간지 얼마안되어 자리가 안 잡힌 어린딸이 이를 부담스러워 할까 걱정인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얼마전 내게
"아빠 환갑은 전혀 신경쓰지 말아라.. 그리고 환갑은 하는게 좋지 않다고들 하더라..친구는 아버지 칠순이시니 좀 무리가 되더라도 하나 해드려야겠지만 우리는 아직 시간이 많지 않으냐.. 우리도 나중에 칠순에 보자.."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신 적이 있었다.


자식을 키우는게 바로 보험이고 예금이 아니냐.. 먼 훗날 우리가 몸을 의탁할 곳이니.. 공들여 키우고 그 값을 받는것이 인생사지.. 하고 말씀하셨다는 한 친구의 부모님 얘기를 듣고 놀랐던 기억....

초등학교 5학년된 딸이 비 오느날, 비를 쫄딱 맞고 들어서며
"엄마,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비오는날 우산 가지고 데릴러 안 와?"
하자..
"그럼 너는 열 두살 되도록 날 위해 무엇을 했는데?"
하고 되물었다는 한 선배의 엄마이야기를 들었을 때.. 흥분되다 못해 화가 나기까지 하던 기억들의 사이 사이로 엄마와 아빠가 내가 준 그 깊은 사랑의 추억들이 녹아있다...

두 분이 이만큼 키워줬으니.. 나도 이제는 자식들 효도받으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지 않으셨던 것처럼.. 나도 내 자식을 키움에 있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조심할 생각이다...


남편이 미워질 때, 옛날 사진이 가득든 앨범과 연애시절 주고받던 편지들을 보며 옛추억을 떠올리면 용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것처럼.. 먼 훗날.. 두 분이 늙으셔서 엄마와 아빠가 의도하지 않은.. 하는 수없는 의무가 내게 주어진다면 그 때, 나는 이 글을 꺼내 읽어보려 한다. 그러면 내게 주어진 그 힘든 시간들을 견뎌나갈 용기와 힘이 내게 솟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