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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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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27) *떠나지 못하는 이유*


BY 쟈스민 2001-09-24

너무도 좋은 것들 .....
하늘과, 바람과, 햇빛의 살랑거림으로 온몸에 이는 전율이
가을을 말해 준다.

모처럼의 일요일을 모든 것 다 버리고 떠나리라 마음먹었는데....

남편은 또 바쁘다 한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나 혼자라도 어디론가 가야할 것만 같은
생각으로 오전을 부지런히 집안일로 보냈다.

그런데 ....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또 무얼 의미하는 건지

아무리 바람이 좋아도, 햇볕이 눈부셔도 내 두팔로만 안아보기엔
어쩐지 좀 쓸쓸함이 일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그저 내 옆에 있어만 주는 것도 안된다고
하는 남편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나 혼자만의 감상에 취하여 하루를 보내자니
그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애써 접어 두고 만다.

일할 생각으로 머리속이 가득한 남편에게 나의 가을타령은
고개조차 디밀지 못한채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리고
만다.

가을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남편이 함께 하지 못하는 가을나들이는 왜 그리도
쓸쓸함이 느껴지던지 떠나지 못하는 발걸음은 그저
축축 걸음을 늘이길 거듭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마음에 아쉬움을 담아두고 싶지 않은
정녕 가을은 충만하고픈 계절이며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헤메이는 계절일진대.....
나의 이런 마음을 남편은 아는지 모르는지 온통 일생각만 가득한
그에게 난 투정 한마디 하질 못하고 출장 떠나는 그를 배웅한다.

아주 가까이에서 가을을 느껴보기 위한 떠남은 또 이렇게 마음처럼
되어지질 않고 나는 일상의 자리를 맴돌고 마는데
나를 위하여 그의 시간을 쪼개어 달라고 이럴때는 하소연이라도
하여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것마저도 내겐 어렵다.
그렇다고 혼자 떠나지도 못하고 .....

집안에서 남편의 자리가 비어있음을 느끼는 일도 문득 문득
참 싫어지는데 밖에 나가서 까지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게
가을을 담아오지 못하는 나는 참 어쩌면 참 재미라고는 없는
사람인 걸까.

이 계절에는
그냥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마음을 붙들어 줄 이가 필요한 건데
어느 호젓한 벤치에라도 앉아보고 싶은 시간엔 어깨를 기대어 보고
싶은이가 곁에 있었으면 하는 계절인데 .....
그는 늘 거기에 있질 못하고 그리 산다.

내가 살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내 안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고
살고 있는 느낌.....
나는 그랬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살고 싶은데로 살아지진 않겠지만
왜 그런지 이즈음 같은 계절엔 더욱더 그런 욕구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건 내가 여자라서일까?

떠나가 버리기 전에 마지막 한가닥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으로
저물어 가는 가을 하루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저물고 말았다.
내 손길은 예전처럼 바쁘지만 마음은 한없이 황량하기만 한
나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이고 싶지 않는 나만 거기서 덩그라니
남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쓸쓸함 보다
나는 또 집으로 돌아와 피곤에 지친 그의 모습에 위안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힘들어 하겠지.....
서로의 생활리듬이 다르다는 건
참으로 함께할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것만 같아
흐르는 시간이 아깝고 그렇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저렇게 푸르고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마는 나의 마음은 한 없이
여행을 떠나고 있건만
나는 어찌하여 오늘도 이런 나의 모습을 하고
살고 있는 걸까?

그릇 안에 채워진 한 그릇의 물이 되어 언제나 처럼 그자리에
놓여져 있는 나는 내 안의 침전물로 무엇인가를 남겨둔다.
아무 색깔도 맛도 없는 그것들로 인하여
나는 내 안의 슬픈 늪에 나를 빠뜨린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
함께 노래를 듣고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날에 대한 긴긴 기다림은
나에게 나만의 슬픔으로 스며들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지독한 외로움과의 싸움이며
긴긴 기다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살아갈 날이 더 많다고 .....
우리에겐 아직도 좋은 날이 더 많이 남아 있다고
나를 위로해야 하는 것도 나의 몫임을 알고는 있다.

그런데도 한없이 마음이 허허로운 건
마지막까지 애써 가을 탓으로만 돌려야 할까?

떠나지는 못하여도
떠나지 못하는 나의 이런 마음을
그에게 이야기는 해 주어야 하겠지

가족이란 의미는
함께 하고 있을 때
가장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걸

그도 알아야 할테니까.....
알고는 있어야 하는 걸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