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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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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왜 그렇게 살았나 몰라.


BY sara 2001-09-23

내가 뭐 안나오려고 한 건 아니다.
울남편 들어오는 소리 들었지만
조카가 그때 막 실연당한 얘길 하면서 찔끔거리는데
어떻게 야멸차게 듣다말고 나온단 말인가.
조금만 더..조금만 더...들어주다가
저녁식사 끝내고 과일 들여가는 기미가 보여
어렵게 조카를 달래놓고 거실로 나왔는데...
나를 쳐다보는 남편 눈길이 심상치 않은거라.
"미안해요.저녁 잡수셨죠?"
"......"
옆으로 흘겨본다.
에고,무시라.
울남편 한번 화나면 쉽게 풀어지지 않는데 큰일났네.
"저기,있잖아..."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미안해요."
"나가."
"미안해요."
"나가."
얼떨결에 맨발로 ?겨났다.

남들 안보게시리 풀섶에 숨어앉아서(맨발이니깐)
곱씹고 되씹어봐도
아니,내가 뭘 잘못했어?
내 조칸가?지 조카지...
말을 들어봐야 할 거 아니냐구.
들어보지도 않고 화부터 내고 난리야...
궁시렁궁시렁.

울남편 화나면 뒤게 무섭다.
내가 오빠가 셋인데
그 중에서도 젤 큰오빠 친구랑 결혼했더니
이건 남편이 아니라 선생과 제자 같은거라.
툭하면 반성문 쓰라고 하질 않나,
잘못했다고 해도 뭘 잘못했는지 대라질 않나.
사실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도 부지기수다.

한시간 쯤 지났나?
맨발로 쭈그리고 앉았는 내가 우습기도 하고 처량맞기도 하고....
젤루 모기가 물어서 못견디겠다.
살금살금 집으로 올라가 보니
현관문이 슬쩍 열려 있는거라.
이것봐라,내편이 얼마나 많다고.
살그머니 들어갔는데
그냥 안방으로 들어가서 쥐 죽은듯 있을거지
뭐라고 남편 서재방은 열어봤는지..나도 참 주책이다.
내가 뭐 닫겨있으면 무서워서 열어 볼 꿈이나 꿨겠냐만서도
그 방문도 살며시 열려있길래
혹시 울남편 잠들었는가해서 빠꼼히 열고 들여다 본 건데
아이고 놀래라,
울남편 눈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나가."
"왜애~.잘못했어요."
"나가."
막무가내로 밀어낸다.
별꼴이야.
이번엔 나도 참지 않았다.
밀어내는 손길을 세차게 뿌리치고
"가만있어.신발 좀 신고."
아깐 맨발이라 누가 볼까봐 신경쓰였거든.

신발신고 ?겨났는데도 아까보다 더 처량맞다.
한참을 별을 보다가...달을 보다가....
아버지 생각을 하니 눈물이 죽 흐른다.
울아버지가 나 이렇게 사는거 보면 넌 죽었다.
아니,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뭐 아들 둘 난 얘기는 안할란다.
아들은 낳아서 준게 아니고 내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나보다 두살 많은 시동생에
나보다 한살 적은 시조카,그리고 그 여동생까지..
이런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별것도 아닌일로 사람을....
웃기고 있어,진짜루...

울다가 혼자 화를 내다가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것 같아서 올라가니까
조카가 현관앞에 있었는지
얼른 문을 열어준다.
이번엔 서재쪽엔 눈길도 안주고
재빨리 안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잤다.

아침,
조카에게 작은아버지 아침 차려드리라 하고
조용히 숨어있었다.

저녁,
조카에게 작은아버지 저녁 차려드리라 하고
조용히 숨어있었다.

또 아침,또 저녁,또 아침,또 저녁...

이젠 화 좀 풀렸겠지 하고
퇴근한 울남편 앞에 3일만에 나타나
옷벗는 시중을 들려고
넥타이 받으니 탁 뿌리치고
웃저고리 받으니 탁 뿌리치고..
더러바라.
그래도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조용히 읍하고 옆에 섰는데
작은아버지가 무서운 조카가
작은아버지한텐 차마 말 못하고
내게만 자꾸 눈짓으로 진지잡수셨는가고 묻는거라.
그래서 내가 조심스럽게
"진지....잡수셨어요?"
"...."
"진지...잡수셨어요?"
"말 시키지 마."
"아니...내가 아니고....쟤가..."
어라?
얼핏보니 웃음을 참는 것 같다.

저녁먹은 후 서재로 들어간 울남편에게
과일을 가지고 들어갔다.
화 좀 풀린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빌어야지 하고.
울남편,베개도 안 베고 신문보고 누웠다.
"미안해요,내가 잘못했어요."
틀려 먹었단다.
여자의 본분이 뭔지도 모르는 여자라고...
아이고,말씀을 하시다니..황송해라.
울남편 일단 말을 하면 화가 풀린 증거다.
맘이 놓이면서
"다신 안그럴께요."
"뭘?"
"응?....으응...앞으론 잘한다고."
과일을 하나 집어 먹는다.
고마와라.
내가 준 것 먹으면 용서했다는 증거다.

베개도 안 베고 누운 자세가 불편해 보여
얼른 일어나
머리밑에 베개를 넣어주니
"왜그래?"탁 뿌리친다.
"아니,여자의 본분을 다 하려고...."
웃기려고 한 소리 아닌데
울남편 파편까지 튀기며 팍 웃는다.
아이고,살았다.

여러분,흥분하지 마시라.
나 젊었을 때의 얘기니까.

나....정말 왜 그렇게 살았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