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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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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탄 아침


BY 인연 2001-09-19

십리 신작로를 걸어서 통학을 했던 청소년 시절 내내 나는 많은 싸움을 하였고
싸움의 상대도 다 기억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였다.
싸움이라고 해서 친구나 낯선 아이들과 치고 패며 싸웠다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 나는 나이에 비해 체구도 작고 힘도 세지 않아 아이들과 싸움을 할 만한
용기도 없었다.

따라서 나의 싸움 상대는 아침이면 새벽잠과 게으름이었고 낮이면 산만한 마음이었으며
밤이면 숙제와 피곤함이었다.
그리고 봄에는 동면에서 깨어난 질펀한 황토길이였고 여름에는 잦은 장마 비였으며
가을은 풍성하게 익어 가는 과일 등 각종 곡식들의 유혹이었으며 겨울에는 눈보라와
코를 베어갈 듯한 추위였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통학을 위해 마을 사내아이들이 대부분 타고 다니는 자전거에 대한 부러움도 사시사철
나의 싸움 상대였다.
이렇게 많은 상대들과 나는 날이면 날마다 힘든 싸움을 하였지만 정작 힘든 상대는
내 자신이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겨울, 읍내에 5일장이 열리는 아침이었다.
평소 같으면 마을 선후배의 자전거 짐받이를 얻어 타고 학교를 갔을 텐데 그날은
운이 좋게도 마을 경운기를 타게 되었다.
읍내 장이 열리면 마을 어른의 경운기는 새벽밥을 먹고 장으로 가는 사람들과 봇짐을
실어 날랐는데 그 중에 나도 승객이 되었다.
그날은 자전거를 얻어 탄 보답으로 고개마다 내려서 자전거를 밀어야 하는 수고도
없었고 면도날 같은 추위에도 그다지 두렵지가 않았다.
경운기가 마을길을 빠져 나와 신작로에 접어들자 나는 하얀 입김을 내 뿜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과 얼어붙은 신작로를 힘들게 걸어가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자가용을
탄 사람처럼 거드름을 피우기도 하였다.

나는 경운기가 달리는 동안 매일 읍내 장이 열리기를 소원하였고 자전거에 대한 부러움과
추위와의 싸움에서 든든한 경운기 덕분에 일방적인 판정승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가 얼마 남지 않은 닥재라는 고개에서 그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책가방을 가슴에 안고 도시락 보자기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경운기가 패인 신작로를
달리느라 요동을 치는 바람에 그만 도시락 보자기를 놓쳐 경운기 뒷바퀴에 도시락이
깔려버렸다.
도시락은 형태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고 꽁보리밥은 떡처럼 변했으며 길바닥에
흩어진 김장 김치의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도시락이 바퀴에 깔렸다는 소리에 경운기를 운전하던 마을 어른은 급히 정차를 하였지만
신작로를 지나던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여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자전거를 세우고 사건 현장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에 나의
절망감과 창피함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것 같았다.
점심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걱정보다는 구겨진 도시락을 수습하려 허리를 굽혔을 때
나는 보슬비가 되어 땅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송곳처럼 찔러 대는 칼바람에도 온몸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으며 나는 나의
창피함과 처절한 사투를 벌어야 했다.
구겨진 도시락을 버리고 현장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도시락에 떡처럼 붙어버린 밥과 반찬들을 떼어 내고 찢어진 보자기에 도시락을 감추었다.

길을 지나는 아이들의 동정어린 눈빛과 웃음이 관중이 된 아침의 사투, 창피함에 나는
힘겨운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도시락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지금도 나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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