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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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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이야기(1)-'늙은 존'


BY pluto 2001-09-18

아주 어릴적이라 정확히 몇살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아뭏든 초등학교 입학전이엇고 살던 동네가 용두동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다섯살쯤 무렵인듯싶다.

아침에 아무것도 바쁘지 않았던 나이였으므로 온 식구중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었던 나는, 그날 아침에도 마음껏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개소리???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내 눈에 맨처음 보인것은 처음보는 낯선개의 누런 꼬리...
내 코를 자극하던 큼큼한 체취...-.-

"엄마 저게 뭐야?"
"아침에 집에 들어왔어.."

우리집에는 뭔 동물이 그리도 자주 들어오는지.. 크면서도 우리집에는 내내 동물이 끊임없이 자기발로 들어왔던 기억이 많다
개, 고양이는 수도 없었고, 심지어 십자매와 앵무새를 비롯 참새새끼까지 방으로 쳐들어(?)왔었으니...

존...그날 아침에 우리집에 걸어들어온 늙은 개의 이름이다...은 그 무리중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개였다.

본능적...심하게 표현하면 나는 본능적으로 동물을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변함없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존은 내가 처음으로 직접 접해본 개였고 늙은이답게(?) 다정했다

매일매일 아이들과 뛰어놀아도 아무도 제재를 가하지 않던 그시절이라 밥먹는 시간외에는 늘 밖에서 살던 나였지만 존이 들어온 그 이후로는 집마당이 내 놀이터였고 존이 내 놀이친구였다.

존은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고, 엄마에게서 받아온 개밥그릇을 내밀면 혀를 내밀고 헉헉대며 나를 ?아댔다.

나는 그런 존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모양은 그냥 누렁이였고 체구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정도, 길고 뾰족하던 주둥이,위로 뾰족하게 솟았던 귀...

내가 처음으로 정을 듬뿍 쏟았던 단짝친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시절.. 말 그대로 개는 개일뿐이었다

아무거나 먹다 남은 걸 줘도 배탈한번 나지 않고, 신경질난 식구들의 발차기에도 반항하지 못하고, 365일 자기가 묶여있는 줄의 길이가 최대 행동반경이었고, 산책따위는 꿈도 못꾸던 시절...

그래도 존은 항상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어줬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사촌오빠가 놀러와서는 (오빠는 아주 자주 놀러왔었다) 가게에 가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그 당시에는 내게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을 손바닥에 꼭 쥐어주었다

10원짜리를 들고 가게로 달려가면서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때는 그게 존의 몸값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가게에 다녀와서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빠진듯한 느낌..

존이 없었다. 줄을 매달던 마당의 수도관에는 존의 흔적자체가 없었다.

개란 동물이 인간의 뱃속을 채울 수도 있다는 사실자체를 몰랐던 어린나이의 나는 영문도 모르고 존을 찾았고 엄마는 존이 내가 없는 사이 집을 나갔다고만 하셨다

그냥...울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존은 내 곁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조금더 나이를 먹고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때..존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다른 강아지를 키우고 있던 때가 되어서야 사촌오빠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옛날에 키우던 존이란 개 생각나냐고 물었고, 오빠의 웃음을 보면서, 어렴풋이 존이 단순히 집을 나간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오빠는 한마디를 더 곁들였다.

"늙어서 맛도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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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시절 다정한 친구가 되어줬던 존에게 눈물한방울과 사랑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