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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두 손에 놓아드리고 싶은 그런 아침


BY allbaro 2001-08-22

당신의 두 손에 놓아드리고 싶은 그런 아침

푸르름이 깊어진 대지가 불어낸 한숨같이, 옅은 운무가 물안
개처럼 피어 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숲은 정적에 가려 있었
고, 어쩐지 매미와 풀벌레 마저도 검게 침묵하였습니다. 들녘
의 끝에 보이는 지평선과 산아래는, 그 회색 빛 꿈으로 가려
져, 안개의 위쪽도 안개의 아래쪽도 모두 비현실적이었습니
다. 아마 이 행성도 때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스스로 우
수에 젖어 버리는 그런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어깨죽지는 뽀송한 가을 바람이 드나들었고, 잠시 걷는
숲 아래는 가을이 발끝에 채이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몇 번
더, 여름과 가을이 아침을 교대로 점령하곤 하겠지만, 오늘
아침은 가볍게 살짝 들어서 당신의 두 손에 놓아드리고 싶은
그런 아침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을 가볍게 안아들
고, 구름같은 이 안개의 속을 잠시 걷고 싶은, 그런 깃털같은
고요의 시간입니다. 나는 12도가량 고개를 숙여 발아래 나무
가지와 낙엽들을 바라보며 아침안개의 귀퉁이를 조금 떼어 호
흡하였고, 새로운 작은 한숨을 담배연기와 함께 다시 채워 넣
습니다. 갑자기 당신의 미소가 떠올랐고, 이 아침을 닮은 어
떤 아침을 기억해 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처음 가본곳인데
분명하게 경험의 안쪽에 남아 있음으로, 기억의 내부를 어리
둥절하게 만들곤 하는 묘한 현실처럼, 그렇게 쌍둥이처럼 닮
아낸 광활한 안개바다의 아침이요...

아마도 금요일의 저녁이었다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다른 금
요일처럼 청담동 Rock & Roll의 창가 바깥자리에 앉아 있었습
니다. 금요일엔 늘 그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
의 웃음과 돌고래들처럼 유유하고 느릿하게 골목을 지나는 자
동차들의 행렬을 보고 있었습니다. 알어? 뭔데요? 금요일 저
녁이면 서울시내의 외제차 30%가 이곳을 지나친대. 정말이요?
정말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럴 법도 해. Ikarus 찬묵이가
그러더군! 저 원피스 Donna karan 것인가 보다. 흐음~. 이이
구 정말 지나가는 여자들 자꾸 바라보기예요? 아니 아니, 난
지금 예술, 그러니까 작품감상 중이라고, 미술관에가서 인물
화를 보는 것이나, 이곳에서 살아있는 인물을 보는 것이나,
사람의 미를 사랑하는 것이 어째서 당신에겐 죄가 되는 것이
지? 아야야 꼬집기 없이!, 여기 버드하나 더 주세요. 그리고
이젠 좀 느린 노래로 부탁해!, blues있잖아 사람 축축 처지게
하는 것. 네! 다음곡에 올려 놓을께요. 그렇게 돌고래처럼 지
나가는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골목길을 메우는 자동차들과 전
갱이떼같이 지나치는 아름다운 미소와, 아름다운 시간속의 사
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Neon Blue의 공간에는 바삭한 가을 바람이었고, 당신의 어깨
와 팔은 바싹 다가와 있었습니다. 피부끼리 닿아 있어도 전혀
끈적이지 않는, 깔끔한 크리스탈 잔과 같은 저녁입니다. 당신
의 긴 Blue Black의 생머리가 내 어깨에 올려졌고, 이내 당신
의 머리가 어깨에 느껴 집니다. 이렇게 아무일 없었으면 좋겠
어요. 이 저녁이 이렇게 영원했으면 좋겠구요. 당신이 팔을
안아 감았으므로, 나는 당신의 어깨를 감싸안았습니다. 그리
고 조금 고개를 숙여 나의 왼쪽볼을 당신의 볼에 대었고, 당
신의 귀밑에서 조금씩 흘러 나오는 여인의 내음을 맡았습니
다. 향수향기와는 전혀 다른 분명한 당신의 내음, 여인의 향
기입니다. 나는 천천히 얼굴을 왼쪽으로 돌렸고, 당신은 이가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오른쪽으로 따라서 천천히 얼굴을 돌렸
습니다. 따듯하면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탄력
이 느껴지는 당신의 아랫입술을 이빨로 가볍게 물었습니다.

이내 조금 텁텁한, 그리고 매끄러운 립스틱의 맛이 느껴집니
다. 정확하게 2도씩 머리를 좌우로 천천히, 그러니까 billie
holiday 의 A Foggy Day 보다 조금 더 느리게, 그렇게 당신의
입술과 좌우로 교차되게 조금씩 움직이며 당신의 향기, 당신
의 작은 떨림, 당신의 숨결, 당신의 사랑을 작은 분수의 반짝
이는 물머리에 입술을 대듯, 마시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높은
테이블 의자위에 나란히 앉아 밀착되었고, 천천히 느린 나무
늘보처럼 움직였고, 당신은 두 손으로 나의 어깨를 감았고,
나는 어쩌면, 이라고 늘 생각하는 당신의 가녀린 허리를 감아
안았습니다. 네글리제 스타일의 광택이 나는 소재로 만들어
진, Dark grey ARMANI원피스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당신의 허
리라인을 그려내고 있었고, 손가락 끝에는 허리를 약간 돌렸
기 때문에 느껴지는, 옷감의 조그만 주름이 만져졌습니다. 당
신의 호흡에 따라 작게작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허리였
고, 늘 조금만 힘을 주어야 되는 취급주의!의 아름다움 이었
습니다. 이윽고 지구는 우리를 중심으로 떠올랐고, 길건너의
도로가 점점 검고 붉은 빛으로 뭉그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신의 향기는 점점 짙어졌고, 두 사람의 심장은 천천히 천천
히 계속하여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이 행성은 정지의 순간으
로 다가가고 있었고, 나는 그런 것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 형! 그만해! 그만해요.

핑그르르르 제자리를 잡으며 내려다 보니, 길건너 지하 Bar
Ikarus의 주인입니다. 잘 지냈냐? 그렇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
습니다. 형! 저어기 일 마레 앞에서부터 보면서 걸어 왔는데
계속 그러구 있데, 숨 안차? 하하하... 이따가 놀러 올거지?
음 그럴게. 이따가 가지머.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
습니다. 오늘은 어디 조금 먼곳으로 가고 싶어요. 우리 떠나
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이요. 그렇게 당신이 말하였으므
로 우리는, 어? 벌써 가시게요? 음 그렇게 되었어. 라고 카운
터에 빌지를 주고, 발렛파킹 표를 주었습니다. 잠시 후 Bar의
정문에 미등만 켠 차가 미끄러 지듯이 조용히 다가와 멈추었
고, 주차원에게 팁을 주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 당신을 앉힙니
다. 당신은 아찔한 라인을 가진 힙을 먼저 넣고, 길고 아름다
운 두 다리를 가지런히 접어, 왼쪽으로 돌리며 비행기의 랜딩
기어를 접어 넣듯이 시트 앞으로, 그 곧고 빛나는 두 개의 대
리석 기둥을 놓아 둡니다. 두줄이 겹쳐진 발찌를 찰랑이며 날
카로운 하이힐의 궤적이 시트 아래의 어둠으로 들어가고, 앞
시트에 깊이 앉아서 한층 짧아진 당신의 원피스 아래엔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우유빛의 뽀얀 욕망이 숨쉬고 있습니다. 이
런 순간들이 남자를, 아니 나를 부글거리게 하는 것이라는 것
을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그런것은 당신의 자연스러운 본능
인 것인가요? 수 많은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몰려 오며 가슴이
지나치게 두근! 거리기에 나는 팡! 소리가 나도록 차문을 닫
고 운전석으로 갑니다. 그리고 천천히 양평으로 차머리를 돌
립니다.

아니요? 미안합니다. 예약은 하지 않았습니다. 알구 있어요.
저기 지배인님을 좀 부탁합니다. 네, 아 네 저예요. 미안 합
니다. 갑자기 그쪽으로 움직였어요. 물론 알고 있어요. 강쪽
으로요. 할 수 없지요. 좀 커도 상관없어요. 고맙습니다. 이
복수는 꼭 해드릴께요. 뭐래요? 10시 이후에 Check-in 하래는
군. 다행이네요. 처음 그곳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던 우리
에게, 참 멋지게도 어울리는 한쌍이시네요. 라며 친근한 인사
를 건네어 알게 된, 마음 넉넉한 지배인님의 무리한 협조로,
남한강변의 구불거리는 도로를 달리면서 바쁜 예약을 하였고,
퇴촌을 지나 다시 나타난 강물위에는, 얌전하니 푸르른 달 빛
이 지그재그로 길게 길게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깔끔
한 illustration 을 보는 듯한 차장밖이었고, 달빛이 따라 흐
르는 당신의 콧날은 하얀 실루엣으로, 나의 오른쪽에서 가볍
게 차의 진동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몸이 빠
져들 것같이 푹신한 소파에서 당신을 안고, 함께 조그만 삼각
형의 청동 페치카에 장작불이 타오르던 것을 바라보던, 벽면
전체가 커다란 유리창인 배 모양의 한 작은 카페가 천천히 수
면을 따라 흐릅니다. 당신이 갑자기 킥! 하면서 작은 웃음을
공간에 띄웁니다. 나는 당신이 웃는 이유를 알고 있기에, 따
라서 작은 웃음을 운전대위에 내려 놓습니다. 당신과 함께 들
렀던 도자기가 잔뜩 진열되어 있던 카페가 방금 오른쪽으로
스르륵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유약이 어떻고, 광택이 어떻고,
둘이서 서로 아는 체를 하다가 툭! 하는 작은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우리의 테이블위엔 정적이 한 발을 턱! 하
니 올려놓았고, 우리는 잠시 서로의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았
고, 고양이 발걸음을 닮은 발자국으로, 어쩐지 오그라드는 어
깨를 일부러 펴면서 부자연스럽게,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계산
을 하고 재빨리 그림자 보다도 빨리 빠져나왔던 바로 그 카페
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도착한, 주차장이 넓은 그 곳의 저녁은 아름다운 달
빛과 가로등이 친근하게 툭 트인 공간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금 걸을까? 신비로운 저녁이었고, 아름다운 당신이었
고, 쏟아질 듯한 별 빛이었으므로 우리는 작은 정원을 걸었습
니다. 예쁘게 작은 곡선으로 구불거리는, 연한 Dusty Rose 빛
으로 희끄므레하게 놓여, 봄이면 장미향기로 가득한 그 정원
의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작은 연못엔 비단잉어들이 아직 잠
들지 않고, 우리의 발길을 따라 보글거리며 몰려 들었고, 우
리는 다시 차로 돌아가 빨간 껍질의 비스킷을 가져왔습니다.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작게 조각내어, 비스킷 보다도 작게 부
서져 출렁이는 연못의 수면으로, 찰박 거리며 강아지 같이 따
르는 비단잉어 무리의 허기진 야식으로 둥근 궤적을 만들며
날려 보내었습니다. 나는 그저 바라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현실같지 않은 그 밤에, 아름다운 당신과 함께, 이곳 예쁜 정
원의 연못가에 서서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저 당신을 뇌리 깊
숙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 넣고 있었습니다. 이런 순
간은 삶의 노정에서 그리 쉬운 시간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꿈을 꾸는 듯한 순간은 둔탁한 남자의 삶
에 어쩌면 단 한번, 어쩌면 한정된 순간이므로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까부터 머리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
기 때문입니다.

눈을 떴을 때, 5센티 정도 열어두었던, 윗부분은 둥글고 아래
로는 길다랗게 교회의 그것처럼 격자로 된 창살이, 두터운 맑
은 유리를 품고 있는 하얀창틈으로, 부드러운 커어튼을 조금
씩 우아한 춤을 추게 만들면서, 한 줄기 바람이 찾아와 얼굴
을 스치웠습니다. 조금 더 정신이 들자, 완만한 유럽의 들판
을 닮은, 편안한 곡선으로 당신이 엷은 시트에 몸을 가린 채,
나의 턱 아래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고, 새벽은 창밖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찰라의 순간으로 다가온 현실은 웬일인
지 잠을 멀리 쫏아 내버렸고, 나는 잠시 그대로 누워 당신몸
의 매끄러운 라인을 따라 손바닥을 천천히 움직여 당신의 허
리를 깊이 안았습니다. 당신은 조금 더 깊이 코끝을 나의 왼
쪽 목언저리에 묻었고, 두 손을 나비처럼 접어 곱게 안겨왔습
니다. 굉장히 진한 당신의 향기가 코 끝에 머물렀고, 그리하
여 나는 새로운 또 하나의 아침을 맞게 되었습니다. 정글 아
래를 포폭하는 게릴라처럼 나는 살그머니 담요의 끄트머리를
침대위에 두고 당신의 곁을 벗어났습니다. 당신이 크게 출렁
이며 몸을 돌아 눕는 것을 보며 창을 열었습니다. 짙은 회색
의 구름이 천천이 당신과 내가 있는 공간으로 밀려 들어왔고,
그것은 차갑고도 상쾌한 안개였습니다. 마침내 창밖과 창안의
대기가 균일한 밀도를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더 시야
가 깔끔하게 깨어났으므로, 창밖 바로 아래의 강물위에서 홋
카이도의 겨울 온천에서 피어나는 수증기같이, 아니 그보다는
21배쯤 옅게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안개를 보았습니다. 잠시
그렇게 정지된 부조가 되어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등뒤에
서 가벼운, 공기보다도 더 가벼워서 무게를 전혀 감지할 수
없는 투명한 스침이 느껴졌고, 이내 당신의 두손이 내 허리에
따듯하게 머물렀습니다. 기분좋게 조여드는 당신의 두팔이었
고, 조금은 차가운 당신의 머리카락이 어깨위에 놓였습니다.
그렇게 활짝 열린 아침으로 들어오는 여명속에 우리는 멈추어
있었고, 방금 창으로 들어온 연회색 물안개만이 부드럽게 일
렁이며 우리의 주위를 자꾸만 가득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
니다. 그저 안개의 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 당신과 나를 어디
에선가 조용히 내려다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아직도 안개가 깔끔한 이런 아침엔, 이 아침을 가볍게 살짝
들어서 당신의 두 손에 놓아드리고 싶어서 가슴이 두근 거리
는 척박한 눈동자의 사나이가 있답니다.

알구 있어요.
당신은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는 것 쯤은...


세 그루의 소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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