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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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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갈 유감


BY ps 2001-06-07


1989 년 여름.
장모님의 환갑을 맞아, 마침 여름방학이 시작된 세 아이를 이끌고
아내와 함께 고국방문 길에 올랐다.

7 월 초의 습기 많은 날씨가, 남가주의 건조한 기후에 익숙해진 몸에는
별로였으나, 항상 그렇듯이, 고향을 방문하는 마음은 그저 좋을 뿐이었다.

양가의 가까운 친척분들 찾아뵈어 인사드리고,

"이민생활 힘들지 않느냐 ?"
"애들 이쁘게 잘 키웠구나 !"
"날씨가 무더워 힘들지 ?"

그리고 그립던 친구들도 만나보았다.

"야~~ 반갑다."
"하나도 안 늙었네 !" (같이 늙어가니까 안 보임)
"언제 시간 내 ! 좋은 구경(?) 시켜줄께."
(아~~ 다음엔 마누라 두고 혼자 가야쥐 ! 히히히)

잔칫날 까지 며칠 여유가 있다고 장인 장모 께서 아이들 떼어놓고
여행이나 다녀오라 하시기에, 아내와 둘이 신혼여행을 다시 한번 하기로
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신혼부부들 사이에 나이 제법 먹은 (30 대 중반) 아줌마 아저씨가
끼어들어 조금 어색했으나, 오랫만에 둘만의 여행은 마냥 좋기만 했다.
(혹시 우리를 불륜의 커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제주에서 2 박 하고, 나의 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가 1 박 한뒤
외숙모 께서 경주 구경을 시켜주신다고하여, 석굴암을 돌아보고,
(아쉽게도 짧은 시간 때문에 불국사는 생략)
갈증을 달래려고 "무궁화"가 다섯개나 붙어있는 K 호텔에 들렸다.

여행하는 동안 "물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주로 콜라나 병물들을
마셔왔는데. 메뉴판을 보니 많은 종류의 과일쥬스들이 유혹하고 있었다.

'외숙모님, 저는 쥬스가 마시고 싶은데, 이곳 물이 괜찮을까요 ?'
'하모. 고급 호텔이라 게 안을끼다. 아무끼나 시키무라 !'

아내는 그래도 조심하겠다고 그 더운 날에 커피를 시키고,
나는 "키위" 쥬스를 시켰다.
멋진 글라스에 예쁜 색갈의 쥬스가 고급스러운 호텔 로비와 잘 어울렸다.
그런데 그 쥬스가 너무 달아서 같이 딸려온 물 한컵을 다 마신 것이
탈이 났다.

부산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고생하다, 환갑잔치에 맏사위가 빠질수없어
간신히 비행기를 타고 처가집으로 돌아왔지만, 난생 제일 심하게 겪는
설사는 조금도 멈추질 않고, 몸은 그로기 상태가 되어 이불을 깔고
누웠다.

비몽사몽(여기가 미국이냐? 한국이냐?)에 화장실이 툭하면 불러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작은 처제가 조그만 알약 두개와 물 한컵을 들고 들어왔다.

'형부, 아버지가 이거 드시래요'
'뭔데 ?'
'지사제요'
'그 물, 끓인 물 ?'
'네, 맞아요. 호호호'

약을 먹고 깜빡 잠이 들었나본데, 아내가 들어와서 깨운다.

'자기야, 내려가서 손님들께 인사드리고 사진도 찍어야하니 일어나 !'
'응, 그래'

그러나 생각만 있지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큰 처남 마저 들어와 도왔으나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진 나의 몸은 조금도
협조하지 않았다.

'누나, 아무래도 자형 빼고 해야겠어.'
'그래도 맏사위인데'
'이 몸에 내려가봤자, 인사도 제대로 못할꺼야. 눈도 잘 못 뜨는데'
(그래서 그 때 찍은 가족사진에 아내의 옆자리가 비어있습니다. 흑흑흑)

두 사람이 나가고 나는 다시 꿈나라로 돌아갔는데,
아내가 귀찮게 또 깨운다.

'왜 ? 인사하러 내려가 ?'
'아니. 잔치는 벌써 끝나고, 손님들도 다 가셨어. 이거나 먹어 !'
'뭔데 ?'
'지사제 !'
'지사제 ? 아까 처제가 준 것은 청색이었는데, 왜 이건 녹색이지 ?
내 눈이 잘못 보는가 ?'

아내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주던 약을 도로 움켜쥔체 밖으로 나간다.

아내의 얘기를 들은 장인께서 작은 처제를 부르셨다.

'얘야, 아까 네 형부 무슨 약 갖다주었냐 ?'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약요. 안방 장롱서랍에 하얀 뚜껑이 덮힌
반투명의 갈색 병이 두개 있을텐데, 영어로 써 있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중에서 푸른색 약이 지사제이니 두알만 갖다주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걸 갖다줬어요.'

그러면서 청색 약을 가리켰다.

'어 ! 그건 수면제인데.'
'아버지가 "푸른색"이라고 하셨지요 ?'
'그래. 근데 너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하는
노래 모르냐 ? 남 진이 불러서 유행한 노랜데. 그 "푸른색" !'
'아버지. 저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노래 생각하며
하늘색 약을 골랐는데요'

'하 하 ㅎ ㅎ ~~...' (다음날 이 얘기 들은 ps가 힘없이 웃는 소리)

부녀간에 색갈통일이 안되는 바람에 미국서 온 애꿎은 사위만
지사제 대신 수면제 먹고 고생한 셈인데, 미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는가?
나는 아직도 "파란색" 과 "푸른색"이 헷갈린다.

요즈음 고국에서 떠들썩한 드라마 "푸른 안개" 시작 부분을 보면
"푸른"= Blue 가 확실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