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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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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의 상자-(줏어 들은 이야기)


BY tunseel 2001-05-26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상습적인 바람둥이가 있었다.
그의 아내 역시 보통의 아내들처럼, 처음에는 울고 불고 바가지도 긁고 손톱으로 할퀴고 뭐 그랬겠지만, 워낙 천부적인 바람둥이인지라 인력으로 안되는 줄 깨달은 다음부터는 바가지 따위 긁을 엄두도 안 내고 긴 세월 묵묵히 참아 주었다.
이윽고 홧병이 도졌는가?
이 가련한 여인 결국 죽음을 목전에 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그놈의 끈질긴 바람끼를 잠재우고(? 잠시 쉬고) 곁에 머무르는 남편을, 아내가 조용히 불렀다.
"여보, 내가 죽기 전에 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요."
"음, 어서 말을 해봐요. 당신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 줄테니."
남편은 바람둥이 특유의 느끼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잡았다.
"아, 망설이지 말고 말을 해봐요. 그동안 나 혼자 인생을 마음껏 즐긴 걸 사과하는 뜻에서, 음 그러니까, 앞으로 바람 다시는 피우지 말라는 따위의 어렵디 어려운 요구라도 가능하면(가능할까?) 들어주리다."
"아니예요, 여보. 당신은 영원한 자유인이예요. 실은, 고백하건대, 나도 당신 몰래 바람을 쬐끔 피웠더랍니다."
"뭐,뭐, 뭣이라고라?.."
바람둥이라 해서 배신감도 못 느끼란 법 있나? 아니, 바람둥이일수록 배신감은 더 크게 느낀다. 왜냐면, 바람이 뭔가를 너무 잘 알기에.
그리하여 남편은 혼절하기 일보 직전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아이구,믿은 도끼에 발등 찍혔네! 아니, 믿은 마누라에 바람둥이 가슴 찍혔네! 대체 어떤 놈하고? 몇 번이나?"
아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윗목에 고이 모셔져있는 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다른 남자와 한 번 잘때마다 저 상자속에 콩 한 알씩을 넣어 두었더랬어요."
바람둥이가 부랴부랴 상자를 뜯어보니, 상자속에는 콩 세알과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있었다.
바람둥이, 그래도 콩이 딱 세 알인 데에 쬐끔은 위안을 받았다. 자기가 콩을 상자에 넣기로 했을 것 같으면 그 몇 십 배는 족히 될테니 그나마 다행이랄 수밖에. 그래서 마지막 가는 아내를 맘 편히 보내주기로 했다.
"이까짓 세 번쯤,내 다 용서하고 이해하리다. 그런데, 만원짜리는 웬거요?"
아내는 이제야말로 저승 문턱을 마악 넘어서려는 찰나였다. 그녀가 안간힘쓰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그, 그것은,,, 모은 콩을 시장에 내다 판 돈...."

*흠흠, Quiz: 만 원이면 콩을 얼마나 살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