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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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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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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가는 부부


BY 나예 2001-03-24

어제저녁
10시쯤 퇴근한 남편이 피곤하다며 막걸리 생각이 난다고 했다.
딱히 안주거리가 없어 냉장고를 뒤져보니 두부반모 신김치 지난번 남편없을때 구워먹고 남은 삼겹살 몇개
꺼내놓은 재료의 전부였다.
그걸로 할수있는건 하나 두부김치
고추장 양념을해서 후라이팬에 넣고 볶다가 안주를 다해놓고 막걸리를 사러가면 슈퍼가 문을 닫을것같아 남편을 불렀다.
"막걸리 사올께 이것좀 볶구 있어요"
갔다오는길 아는분을 만나 안부 물어보구 이것저것 이야기좀하다보니 한 5분 지났을까
기다리고 있을 남편생각에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가득 메쾌한 타는 냄새
남편은 음식태운냄새를 무척 싫어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건 사람이 죽어갈때 찰나의 시간동안 살아온 인생이 떠오른다고 했던가 문을 열고 닫고 신을 벗는 그 시간동안 나는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으리나곤 예전엔 미쳐몰랐다.그상황에서 발생할수 있는 모든 사고가 떠올랐으니 말이다.
떨리는 가슴과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으로 부엌을 향했다. 발걸음이 왜그리 무거운지 바닥이 꼭 늪이라도 되는듯이 한걸음한걸음에 몸의 모든 기운이 떨어져 나가는것 같았다.
그렇게 두려운마음으로 돌아서 내가 본건
어이없게도 열심히 후라이팬을 뒤적이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 어찌나 빨리 뒤적이는지 후라이팬 밖으로 김치가 튀어나가는것이 보였다.
순간 말려드는 안도감
매순간마다 평소와 다른 일이 생기면 불안함부터 갖게되는 나이가 되어버린 탓에 관세음보살 소리가 절로나왔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바라본 남편은 분명 무언가 엄청 많이 당황해 하고 있었다.이마엔 땀까지 송글송글 해가면서
"당신 지금 뭐하는거야"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이 일순 안도의 빛으로 변하면서 하는말
"왜 이제와 이거 타잖아"
후라이팬안의 김치와 고기는 고추장 양념을 한 덕분으로 바닥이 온통 새까맣게 타 있었다.
"그래서?...."
어이없어 묻는내게
"시켜놓고 나갔으면 빨리들어와야지 이것봐라 타니까 빨리 젖다가 다 흘린거 이거 어떻게 먹냐"
한다.
나는 조용히 가스불을 끄며 말했다.
"타면 가스불 끄면 되잖아 그거 몰랐어?"
"..............."
"자취생활 6년이라며"
"난 라면만 끓여먹었다. 이런건 안먹어봐서 몰라 그래도 뒤져보면 먹을만한거 나올꺼야'
한발 물러선 태도로보아 스스로도 충격이었나보다.
방금전의 불안함은 어디가고 난 남편 놀려줄 생각부터 한다.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감사하며
우리남편 무지 아는것이 많은체 한다.
언젠가 밥솥이 고장나 냄비에 밥을 하게 되었을때 설익은 밥을 해온 나를 보고 밥을 할때의 불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며 한번끓으면 불을 줄여서 은근하게 끓여주어야 된다고 자취생활6년의 노하우를 전수해주기위해 일장연설을 했던 남자다.
결혼 6년 그랬던 남자가 후라이팬 불조절을 못해서 아내만 기다리면서 다 태우고 있었으니 그마음 얼마나 초조했을까ㅎㅎㅎㅎ
비록 탄 두부김치지만 하얗게 ?K아지는 막걸리의 그 걸죽함과의 조화는 그런데로 괜찮았다.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지는 내게 남편은 가끔 핀잔을 주곤 한다. 자신은 그모습 그대로 영원할줄 아는양 그런 남편도 별반 다를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되었을 것이다.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아내나 남편모두 그자리에 있을수는 없다는것을....
그렇게 부부는 조금씩 닮아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