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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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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몸부림스<11>-처녀성을 포기하며...


BY eheng 2001-03-07


녹아 내린다.
겨우 내내 그리도 내리던 눈덩이들이 하루 낮 쪽빛에 어쩔 수 없이 뚝뚝 녹아 내린다. 처마 끝의 고드름도 덩덩 녹아 내린다.
녹아 내린 눈물, 빗물 모여모여 작은 웅덩이 만든다. 참방참방 동네 꼬마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을 튕긴다. 그 꼴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락스 냄새 지독했던 학교 수영장이 떠오른다. 콧물 질질 흘리고 다니던 대학 신입생, 교양 체육 필수로 해야만 했던 수영!

부모 잘 만난 몸부림스 사립학교 다니며 특기적성훈련(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발레, 태권도, 미술…) 받아 수영은 생활의 에티켓 정도로 알고 있을 적에 저 서울 변두리, 지방에서 나고 자란 몸부림스, 태어나 수영장에 처음 가 봤다. 동네 목욕탕에나 가 봤던 촌뜨기 몸부림스, 그때 그 수영장 보고 허벌나게 놀랐다. 와! 대따 크다! 끝이 안 보인다.

그때도 경옥이 물개 같은 미끈한 솜씨로 수영했고, 이테리 수영복 챙겨 입고 폼 잡던 미경이 수영 후엔 꼭 이테리 타올로 때 밀었다. 경옥이 지금도 어머니 수영대회서 일등 먹었다고 지X떤다.
한 귀퉁이서 읍파 읍파 호흡 고를 적에, 찰박찰박 발차기 할 적에, 경옥이, 미경이, 영선이 인어같이 헤엄쳤다. 자유영은 물론이고 배영에, 접영에, 수중 발레까지 했다. 인어들이 떼로 몰려 다니며 훼방을 했다. 수영장서 그대로 출신 성분 나왔다. 옷 벗고도 그대로 나왔다.
나랑 제일 친한 재희, 안간힘 쓰며 물에 안 빠지려고 버둥대는 나를 째리며 저 쪽에 가서 하라고 나무랐다. 자기 코에 물 다 들어간다며. 물에 안 뜨는 것도 서러운데 친한 친구마저 날 저버린다. 그렇게 째리더니 결국 코 세우고 왔더라.

경은이, 애자 배영하면 왕왕거리던 수영장 삽시간에 고요하다. 물살을 가르는 그녀들의 몸짓, 아니 출렁이는 가슴은 우리 마음까지 뒤흔든다. 그때 경옥이 그 꼴을 보고 결심했단다. 오냐, 나도 가슴으로 승부하리라. 젖 먹여 쳐진 가슴 지금까지 툴툴거리며 오늘도 이곳 저곳 견적 뽑으러 다닌다. 경옥아, 너 가슴 만들러 갈 적에 옥자, 원주, 영선이 꼭 델꼬 가라. 너보다 더 급하다. 걔네들 사실, 나바론의 건포도다.
수영시간 만으론 턱없이 연습이 모자라 공강 시간을 이용하여 잠실의 실내 수영장으로 원정연습을 갔다. 식대위(식사 대책 위원회)4인방이 같이 갔다. 거기서 국가대표 접영 선수인 육모 군을 만났다. 멍게 앞에서 여드름 짠다고 우릴 앞에 놓고 별별 묘기 다 보인다. 오빠,오빠하며 레슨을 부탁하자 옳타구나! 흥쾌히 허락한다. 운동 선수면 달까? 허리 두께만한 허벅지에 가로 세로 구분이 안가는 몽땅짜리한 골격. 얼굴엔 틈 하나 없이 덕지덕지 여드름 났어도 그런 거 눈에 안 들어 온다. 오직 수영하는 실체만 있을 뿐.
됐다! 이제 우린 그냥 인어 되는 거다. 레슨을 받았다.
근데! 그런데! 우린 형식적으로 한번씩 잡아주고 개인적으로 연습하라더니... 애자만 잡고 늘어진다. 밀어주고 땡겨 주고 돌려 주고... 눈꼴이 시다. 애자가, 우리보다 좀 다리가 길고. 가슴이 되기로서니 우찌 그럴 수가! 생긴 걸로 차별 받기 난생 처음이요, 다리 짧아 버림받기 처음이라. 롱 다리에 한 맺히고, 빵빵한 가슴에 적개심이 생긴 것도 그때였다. 쭉쭉이 안되면 빵빵이라도 되야 하는데 왜 둘 다 안 되는 것이란 말인가!!!
운동 선수 페어 플레이 안 한다. 절대 안 한다.
수영하러 갔다가 의욕마저 상실한 채 학교에 돌아오면 허기진 뱃가죽 채우느라 식당으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주린 배 채우면 오후 수업엔 엎디어 자기 일쑤구나.

그뿐인가. 두 번 이상 빠지면 점수를 깍는 데서 열심히 출석하는데 아뿔사! 걸릴 것이 걸린 것이다. 마술에 걸린 것이다. 그것도 희경이와 애자가 쌍으로 걸린 것이다. 처음으로 학교 앞 약국에서 탐폰을 사서 다 같이 수영장 화장실로 향했다. (그땐 그렇게 단체 생활이 익숙했다. 고등학교 때 워낙 길들여 져서.)
먼저 희경이가 들어간다. 으흠~ 으흠~ 수상한 신음 소리만 들린다.

“워찌 됐냐?”
“몰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애자가 자신 있게 들어간다. 10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는다.
“워찌 됐냐? 성공했냐?”
“출입구를 모르겠다.”
둘은 땀을 질질 흘리며 나왔다. 옆에서 안타까이 보던 재희 얼른 가방에서 그리도 끼고 다니던 쪽거울을 건넨다.

“보고 넣어라.”

다시 희경이가 들어간다.

“워찌 됐냐?”
"......”
“말 해라.”
“미로다.”

다시 애자가 교대한다. 들어가면 말이 없다.

“워찌 됐냐? 성공이냐?”
“아아악~ 너무 아파. 이러다 처녀막 터지겠다.”
그때 초조히 기다리던 희경이 빽하고 소리지른다.

“임마! 너 지금 그게 문제야? 빨리 넣어!”
그렇게 무섭게 불호령하던 희경이 자기도 못 넣었다. 출입구 어딘지 몰라서 못 넣었다.
결국 그날 생리대 두 개 차고 들어가 엉거주춤 수영하고 수영장 물 엄청 오염시켰다.
우린 그렇게 처녀성 걸고 목숨 걸고 수영했다.

드디어, 중간 시험 보는 날.
우린 온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시험 못 볼까 봐서. 오, 노우! 죽을까 봐서다.
아직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데 다이빙으로 출발하여 갈 데는 자유영, 올 데는 배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일단은 배치기로 들어가 창자 끊어지는 아픔을 참으며 호흡 안 돼 절대 숨 안 쉬고 수영장에 폭풍, 해일, 범람 다 일으키며 허부적 댄다. 어찌 어찌 가서 턴을 한 뒤에 홀라당 뒤비져서 배영을 하는데 방향 감각 없어 벽에 머리를 자꾸 부딪힌다. 신경질 난 수영강사 호루라기 삑삑 불어댄다. 어쩌란 말이냐? 나도 내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을! 호루라기 분들 제대로 될꺼나. 하지만 빠져죽지 않고 건너 온 것만으로 얼마나 신기한 노릇인가! 너흰 비웃지만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결국에 수영장에 빠져서 생사를 무릎 쓴 몸부림스 있었으니 미혜와 정희 아니든가? 기다란 장대 잡고 구사일생 구조 됐다. 그날 나는 너무나 배 불러 저녁밥도 못 먹었다. 수영하며 마신 물로 목욕을 해도 두 번은 했을 것이다.
그렇게 배운 수영실력 해마다 여름이면 온갖 물보라 다 일으키며 그 솜씨 뽐낸다.
수영하고 나와서 같이 샤워하며 등 밀어주고 머리 말려 주고 니 빤스 내 빤스 다 보여주며 쌓았던 그 찐한 우정들...
그때 처녀성 걸고 수영 배우던 희경이 졸업 후에 뜬금 없이 군대 가서 교관이 되었다고 한다. 화장실 앞에서 거품물고 불호령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무서운 몸부림스 늘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데서 무슨 불호령을 하고 사는지 이렇게 눈이 녹아 내리는 긴긴 밤이면 너무나도 그립구나! 황당한 몸부림스여!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