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각연사가 못내 그리워 이른 아침 괴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막상 집 밖을 나서면 어디로 갈까? 한참을 서성거리는 내게 가을 산사는 깊고 그윽한 곳에서 손짓한다.
그래도 지친 마음자락 쉴 곳이 있음에 나는 외롭지 않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긴 그림자 벗삼아 유유히 걷는 나는 지금 들녁을 가르는 가을 바람처럼 정처없이 나부낀다. 편편한 돌부리에 잠시 걸터 앉아 이름 모를 꽂을 유심히 쳐다보기도 하고 노란 산국의 향기를 코끝에 맡아 보기도 하고 그리고 산마루 넘어 흘러가는 흰구름에게 그리움의 눈길을 하염없이 건네 주기도 한다.
"탁~탁" 산골 깊이 파고든 따비밭에서 농부 아저씨의 콩 터는 소리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산모퉁이를 돌고 또 돌아 끝이 없을 것 같은 먼길 어딘가에 내가 찾아 나선 산사는 조용하게 자리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스라히 절집 기왓골이 한잎 두잎 흩날리는 낙엽에 춤을 추듯 다가온다.
사람의 흔적은 없고 텅빈 절마당에는 가을 햇살만이 가득하다.
바람도 비껴간 듯 처마 밑 풍경은 미동조차 않고 혼신을 다해 곱게 물드는 잎새들만이 머지 않아 퇴락할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잠시 접어 둔 채,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층계에 몸을 맡기고 산사의 깊은 고요를 함께 나누고 싶다.
마당 한곁에 흘러 넘치는 석간수는 늘 그랬듯이 부처님의 감로수 되어 찌든 몸속을 정하게 만든다.
청정함과 고요속에 세워진 대웅전은 측면 네군데 평방 머리위에 각각 한마리씩의 용이 새겨져 있고 정면 가운데에도 용머리를 길게 빼어 장식한 점이 특이한 눈길을 끈다.
측문을 당겨보니 열리지 않고 삼성각 댓돌 위 한스님의 신발만이 한낮의 나른함에 오수를 즐기는 듯하다.
각연사 전설이 담긴 곳 비로전은 법흥왕 2년(515년) 유일화상이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칠보산 너머 절말에서 유일화상이 절을 짓는데 자고 일어나면 대팻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밤에 지켜보니 까치가 대팻밥을 물고 산너머 연못에다 대팻밥을 떨어뜨려 연못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속에는 이상한 광채가 나 대팻밥을 헤쳐보니 돌부처님이 못 가운데 묻혀 있어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알고 이곳으로 옮겨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지은 다음 못에서 나온 부처님을 절안에 모셨다.
연못이 바로 절터임을 깨닫게 해준 절이라 하여 "각연사" 라하고 지금 비로전 자리가 연못자리이며 비로전에 계신 석조 비로자나불이 연못에서 꺼낸 돌부처라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어둔 비로전 안에는 연로하신 보살님이 소신공양하듯 흐르는 전설을 이어준다.
속내를 훤히 꿰뚫은 듯 오직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보살님의 말씀은 부처님의 현신인 듯 내개 생불처럼 다가왔다.
오체투지, 온몸과 마음을 가장 낮은 곳에 두고 부처님전에 삼배 올리는 예를 태어나 처음으로 보살님으로부터 배웠다.
정말 인연이 닿아서 여기까지 온 걸까...
비로전을 나서며 부처님께 귀의한 보살님의 평화로운 노년이 부럽게 느껴??다.
유서는 깊으나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산사이기에 마음이 더끌린다.
이 작은 마음들이 쌓여 훗날 진정 그리움의 불심이 싹튼다면
아! 나는 흔들림없이 남은 길을 걸어서 가리라.
작은 불씨를 안은 영혼은 서서히 나로부터 일탈한다.
육신이 그곳에 닿을때면 내 영혼은 얼마나 비어 있을까...
그러나...
사하촌 허름한 판잣집 마당에서
벙어리 엄마의 뜻 모를 고함소리는
잠시 세속을 등진 내게
"우~우" 들녁에 이는 바람이 되어 또 다시 슬픔에 젖게 했다.